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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tgumi Mar 14. 2019

고난을 이겨내며 만들어지는 진정한 가족

-<로마>(2018)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대부분 힘들지만, 물이 흘러가듯 시간은 서서히 흘러간다. 그 순간순간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바로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족일 것이다. 외부의 사회 분위기가 어떠하든 가족 안의 상황들이 어떠하든 결국 우리는 다시 가족에게 돌아와 서로를 위로하게 된다. 살아가며 접하는 고통의 순간을 잊게 하는 건 손에 금방 닿을 것만 같은 어떤 희망과 위로다. 그 희망과 위로는 꼭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어도 그 가족의 일원이라면 같이 나눌 수 있다.


영화 <로마>은 한 집안의 가정부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간다. 가정부로 일하는 클레오는 그 사회, 그 집안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클레오가 현관 안쪽을 물로 청소하는 것을 보여준다. 서서히 흐르는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하늘의 비행기를 비춘다. 클레오는 그 집안에서 숙식을 하며 그 가족을 보필한다. 아이를 깨우고, 밥을 챙겨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넓은 집안의 방과 침구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가 지나간다.



멕시코의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사회에서 가장 낮은 구조인 한 가정을 비추면서 그 가정 내에서도 가장 지위가 낮아 보이는 가정부의 삶에 집중한다. 그는 가정 내에서 그 가족의 일원인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저 일하는 노동자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 속 가족들은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있는 클레오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어떤 순간은 가족처럼 대하고, 어떤 순간에는 일을 시키게 되는데 그들 간의 경계는 굉장히 모호하다.


클레오는 가정에 상주하는 노동자이지만, 자유시간엔 시내에 나가 친구와 시간도 보내고 이성과 데이트도 하는 젊은 여성이다. 일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가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었던 그들도 그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클레오는 무술을 배우는 한 남성과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그는 클레오가 임신한 사실을 이야기한 직후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영화엔 클레오의 진짜 가족이나 친지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어느 시골에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가족들과 놀러 갔을 때 그곳의 냄새가 예전 고향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고향에 대한 향수는 있지만 갈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영화는 클레오의 현재에 보다 집중한다.


클레오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비록 한 집안이 가정부이긴 하지만 그는 그가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고, 가정 내의 아이들을 꼼꼼히 챙긴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클레오를 좋아하며, 가족 행사가 있으면 늘 클레오와 함께 가고 싶어 한다. 말이 없는 클레오는 늘 마지못해 따르지만 같이 간 여러 행사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클레오가 아이의 아빠에게 버려졌을 때부터 그의 표정은 무표정해진다. 고민이 가득한 그를 챙기는 건 그 집안의 소피아뿐이다. 사실 영화 <로마>에서 클레오와 그 집안사람들과의 연계는 클레오의 임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피아와 남편의 이혼이 기정 사실화되는 시점인데, 클레오와 소피아는 똑같이 남자에게 버림받거나 이혼되었다는 공통점이 생긴다. 결국 이 공통점은 그들이 가진 계급적 차이를 정서적 차원에서 없애버린다.


클레오가 아이의 침대를 사러 간 가구점이 우연히 대정부 시위 개 한참 벌어지는 때였고, 그 와중에 정부 쪽에서 일하며 시위자들을 처단하고 있는 아이의 아빠를 만난다. 클레오가 생명을 위한 물건을 살 때, 아이의 아빠는 다른 생명을 제거하고 다닌다. 아이의 아빠라는 존재는 정부를 대변하며, 그 시대 멕시코 사회가 자신이 보호해야 할 국민들을 폭력적으로 대하고 버렸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아이의 아빠가 클레오에게 총을 겨누었던 그 찰나의 순간, 클레오는 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화의 말미에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클레오는 먼저 아이들에게 자신이 아빠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소피아를 보고 마음을 다르게 먹었던 것 같다. 자신이 살리지 못한 생명 대신 소피아의 딸을 구함으로서 자신이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모두에게 털어놓는다. 그때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서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렇게 진정한 고백으로 하나의 가족이 다시 뭉쳐진다.


영화에서 간간히 하늘에 천천히 이동하는 비행기를 보여준다. 특히나 영화의 맨 마지막, 클레오가 옥상으로 올라가기 전,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고 그 뒤를 따라 클레오가 올라간다. 클레오는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꿈을 따라 위로 이동한다. 꿈, 즉 영화 내의 비행기는 클레오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지만 그 꿈을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간다. 그 꿈이 실제로 닿을 수 없을지라도.



삶은 어쩌면 계속된 고통일지도 모른다. 감독 알폰소 쿠아론은 실제 자신의 가정 내 동고동락했던 가정부를 기리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 당시 어려웠던 시대 상과 가정 내 불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이야기를 하며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났다. 그들을 그렇게 고통을 이겨냈다. 계속된 고통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어떤 꿈을 향해 나아가 그 비행기를 결국 이루어냈다. 그 비행기를 탄 알폰소 쿠아론은 한 가족과 가정부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는지를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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