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기 위해 불법의 운전대를 잡은 노인
-<라스트 미션>(2019)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아주 천천히 흘러가 많은 시간이 남은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찰나의 순간이다. 이건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돈이 많다고 해서, 체격이 좋다고 해서, 계급이 높다고 해서 시간을 더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주어진 시간 안에서 좀 더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각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것들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한 번 정해진 우선순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 80이나 90세가 되었을 때, 자신이 살아온 삶을 뒤돌아 보았을 때, 자신이 자신 있게 해왔던 것보다는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시간을 후회하게 된다. 어느 정도 삶의 끝이 보일 때야 비로소 자신이 놓쳤던 시간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나이 든 과거의 세대들은 사회의 발전기에 일에 좀 더 집중하며 살아왔다. 그들은 외부 활동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던 70-80년대를 관통해 온 세대들은 더욱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노인이 된 그들은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고, 사회에서는 점점 잊히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채로 가족과의 시간을 점점 놓아왔다.
90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노인에 관한 이야기
영화 <라스트 미션>은 이미 나이가 들어 87세가 된 노인 얼 스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시절 꽃을 재배해 팔고 각종 관련 모임이나 시상에서 상을 받으며 외부에서 인정받았던 그는 여러 곳에 출장을 다녀야 했고, 외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삶을 살기 위해 가족의 중요한 일을 모두 잊거나 알고도 빠졌다. 그는 아내의 생일, 결혼기념일, 딸의 생일, 딸의 결혼식 등 중요한 대부분의 가족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외부 활동에 시간을 더 투자했던 인물이다.
시간이 흘러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방법이 등장할 때, 인터넷을 무시하던 그는 결국 인터넷 세대에 밀려 고전 방식으로 꽃을 재배해 파는 농장을 파산시키고 만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삶과 시간을 다시 뒤돌아보기 시작한다. 그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다시 그가 찾은 건 바로 가족이다. 이제는 손녀(테이사 파미가)가 결혼할 시기였기 때문에 그는 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하지만, 그를 맞는 딸(알리슨 이스트우드)과 아내(다이앤 위스트)는 그를 본 순간 욕을 하며 돌아선다. 그때 각 가족들의 반응을 살피는 영화의 카메라는 그들이 얼마나 얼이라는 사람에 대해 분노하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그에 반해 얼의 표정은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비치며, 혼자 불만을 중얼거리는 힘없는 모습을 그린다.
가족과의 시간을 잃어버린 주인공 얼
한국전 참전 용사였던 얼은 쉽게 겁먹는 성격이 아니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 내내 그는 약간 구부정하고 힘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대범함이 보이고 따뜻한 인간미도 보인다. 파산했다는 개인적 상황 때문에 그는 가족의 행사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화재가 난 참전용사의 집을 도와주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가 물건을 싣고 운전만 하면 용돈을 벌 수 있다며 명함을 주고 그는 그 기회를 잡아 그 일을 한다.
그가 운반하는 건 마약이다. 운반을 성공적으로 완료할 때마다 큰 목돈을 받고, 그만큼 그가 운반해야 하는 마약의 양도 늘어난다. 사실 그가 이렇게 아무 문제없이 마약을 여러 번에 걸쳐 성공적으로 운반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노인이기 때문이다. 87세인 노인은 사회에서 주목받는 위치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이 위험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사회는 관심이 없다. 사회뿐만 아니라 일반 개개인들도 노인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는다. 노인에 대해 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명백하다. 힘이 없고, 고집이 세고, 말이 통하지 않으며, 일을 하지 못한다는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리고 노인들이 무엇을 하며 삶을 즐기는지에 대해서도 대부분 무지하다.
영화 속 얼이라는 인물은 갱단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농담을 던지며 친숙함을 끌어올릴 줄 아는 인물이다. 또한 영화 내내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즐거운 일들을 한다. 파티에 가서 여성과 춤도 추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한다.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돕고, 그것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를 즐긴다. 그가 노인이라는 사실만 빼면, 젊은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똑같이 놀고, 일하고, 베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얼과 같은 노인들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자신이 일하며 쏟아부었던 회사에서 은퇴하고, 자식들을 위해 많은 것을 내놓고 나면 그들 자신을 위해 남은 것이라고는 죽음 직전까지 이어지는 빈곤뿐이다.
노인이지만 젊은 사람과 똑같이 놀고 일하다
여느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영화 속 여러 인물들에게 충고를 한다. 그런데 그 충고의 잔소리를 하기 전에 늘 한 번 망설인다.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뱉고 나면 그는 항상 상대방에게 사과한다. 상대방이 그 말을 불편해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세월을 보낸 노인들은 사실 젊은 세대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이 많을 것이다. 감정적인 부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부분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쁜 방향을 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종의 측은지심이 그런 잔소리를 하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그 잔소리에는 상대방은 자신의 실수를 똑같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이 포함되어 있다. 얼은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FBI 수사관 콜린(브래들리 쿠퍼)을 만나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족을 놓치는 실수를 하지 말게. 나는 일 하느라 가족과의 시간을 다 잃어버렸어”.
그가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얼은 돈을 벌어 가족들의 행사에 보태기 시작한다.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에 시작한 그것은 얼을 가족의 일원으로 남게 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결국 그는 열 번이 넘게 마약을 운반하고 돈을 번다. 그리고 그 마약 조직에서 최고의 운반책이라는 지위에 까지 오른다. 그 자신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불법인걸 알면서도 그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그저 힘없는 노인인 그가 돈을 벌만한 일자리 자체가 사회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무관심만큼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그 일을 하면서 얼은 자신에 대한 인정과 칭찬을 즐긴다. 그리고 가족과의 시간도 같이 벌었다.
그의 행동은 분명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영화 내내 일이 끝나고 차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돈뭉치를 볼 때마다 얼은 초조 해하며 시동을 건다. 그를 그것에서 견디게 하는 건, 가족의 받아들임이다. 그렇게 나마 가족들, 특히 이혼한 아내와 대화를 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사실 얼이 좀 더 젊었을 때 그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자신도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얼의 얼굴은 실제 90세인 클린트의 주름진 얼굴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의 얼굴에는 가족에 대한 특유의 회한이 그대로 담겨있다.
사회 그리고 가족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 하는 불법적인 일
어쩌면 그가 했던 마약 운반책이라는 일은 잊혀지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을지 모른다. 우리 주변에도 무수한 노인들은 이미 사회에서 잊혀졌다. 젊은 사람들은 각자 사느라 바쁘고 노인들에 대한 반감도 크다. 특히 정치적인 의견 차이가 큰 세대 간의 갈등은 폭발하기 직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런 갈등들 덕분에 서로 대화를 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을 서로 적대심에 가득 찬 채 시간을 보내다가 누군가가 죽음에 가까워지면 그제야 서로에 대한 마음의 빗장을 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잊혀진 그 사람을 조금씩 받아들이려 애쓴다.
사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얼이 무엇보다 다시 되찾고 싶은 것은 가족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도 잃어버린 그것을 찾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운전대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완전히 등을 진 사람이 가족이라면 마음 한 켠에는 용서라는 작은 싹을 숨기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가 불법적인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 가족을 위해 쓰는 건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는데, 그가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갔을 때, 아내의 말이 인상 깊다.
당신이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도 나는 당신을 다시 받아들였을 거예요.
이 영화는 90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여전히 감독으로서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고, 배우로서도 훌륭한 배우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 영화 <라스트 미션>은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고 열정이 없고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강력하게 깨버리는 묵직한 드라마다. 노인들의 시간도 젊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흐른다. 결국 모두 같은 시간의 현재를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