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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Apr 06. 2019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들의 마음을 느끼다

-<생일>(2019)




가족이 세상을 떠난다는 건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미 많이 예상하는 것처럼 남은 가족들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슬퍼할 것이다. 나이 든 부모님이나 친지를 떠나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자신의 자식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 슬픔에 대해서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보통은 남은 가족들이 어떤 감정과 기분으로 생활하는지, 실제 그들의 삶의 어떤 부분들이 그들을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그저 아픈 마음을 공유하며 짐작만 할 뿐이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중에서 325명, 꽤 많은 수를 차지했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었다. 아침에 발생한 사고의 뉴스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구조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결코 그들의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희망들이 절망이 되면서 죽음의 이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별이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파고들었다. 단 몇 시간 만에 그 비극은 수많은 사람의 이별로 이어졌다.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구조를 응원했지만 실제로 구조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일은 5주기가 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픈 못으로 깊이 박혀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유가족의 삶을 다루는 영화 <생일>


영화 <생일>은 단원고 학생으로 세월호에서 희생된 수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에는 세월호 당시의 장면이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현재의 시점으로 해외에서 귀국하는 수호의 아버지 정일(설경구)과 한국에서 살고 있는 수호의 어머니 순남(전도연)의 뒷모습을 천천히 비춘다. 특히 정일은 이 영화에서 세월호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유일한 가족이다. 그는 사건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해외에 묶여 그 사건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뒤를 따라가는 시선은 외부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했던 외부인의 관점을 반영한다.



그가 다시 한국으로 와 딸 예솔이(김보민)를 처음 봤을 때, 예솔이의 첫 반응으로 그가 가족에게 어떤 위치인지를 알 수 있다. 예솔이는 오랜만에 보는 아빠에게 다가가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집에 들어갈 때도 도어락 번호를 누를 때 아빠가 보지 못하도록 가린다. 고모 뒤에 숨어 빤히 아빠를 바라보던 예솔이는 그런 어색함으로 아빠를 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정일은 조심스럽게 천천히 딸에게 다가간다.


외부인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정일


정일은 가족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직접 보고서야 알게 된다.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로 치더라도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사건으로 인해 여전히 순남과 예솔이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걸 그 자신도 알기 때문에 아내인 순남에게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하지만 순남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무시와 원망 만이 정일에게 전달될 뿐이다. 정일은 안산의 집에 드나들면서 여동생에게 이야기한다.


순남이 좀 이상하지 않아? 좀 이상한 것 같애  


거기에 여동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오빠가 더 이상해. 수호 그렇게 가고 이제야 들어왔는데, 그렇게 멀쩡할 수가 있어?



영화 속 외부인의 시선은 정일과 다른 가족들에 의해 세세하게 전달된다. 순남의 행동과 밀어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정일의 캐릭터는 세월호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외부인의 관점을 대변한다. 정일에게는 오랜만에 본 아내가 이상하게만 보인다. 순남은 희생자 가족들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다른 사람과 교류를 꺼린다. 애써 밝게 웃고 이야기하는 다른 희생자 가족들의 태도에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리를 외면하는 순남을 그 안으로 끌어 들어가려는 정일은 더욱더 아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거리감을 느끼며 절망한다.



그런 정일이 순남의 위치로 이동하게 되는 계기는 정부 보상금에 대한 타인의 시각이다. 정일이 한국에 온 건 보상금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내와 크게 다툰 후 맞은 가족 제사에서 순남과 나란히 앉아 밥을 먹던 정일은 다른 가족으로부터 보상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두둑하게 받았으니 사업에 투자하라는 그 가족의 이야기에 크게 분노한 정일은 그 자리로 가족들을 다 집 밖으로 내보낸다.


유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외부인의 시선


어쩌면 많은 외부 사람들의 시선은 그럴 것이다. 그저 신문, 방송 등의 대중매체로만 그 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생각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대부분 많은 보상금을 받고 위로를 받았고 삶의 형편이 나아졌을 것이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런 오해를 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가족이 죽어서 슬프지만 보상금 두둑하게 받았으면 괜찮지 않아? 정부에서 꽤 많이 챙겨줄 텐데. 


이 말속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어있다. 그들의 가족은 이미 망자가 되었다. 수억 만금이 그들의 손에 쥐어진다고 해도 그들은 죽어간 자식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들은 아직 원인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그 사건을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로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는 그런 편견의 말들로 그들의 삶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이제 그만하라고.



순남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가끔씩 혼자 켜지는 센서등을 볼 때마다 그의 아들이 왔다는 생각에 혼자 아들에게 말하며 펑펑 울음을 터뜨린다. 그걸 보는 정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약을 챙겨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밖에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느 단체에서 수호의 생일 파티를 하자고 할 때, 순남은 거부하지만 정일은 그걸 받아들이고 준비에 도움을 보탠다.


결국 관객들을 내부자의 감정으로 이끌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생일은 매년 돌아온다. 그때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자녀들의 생일을 챙기며 그들을 추억한다. 그리고 같이 모인 서로를 위로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하는 수호의 생일 파티는 각자가 기억하는 수호를 이야기한다. 뒤늦게 그 자리에 참석하기로 한 순남도 그 자리에서 타인들이 가진 수호에 대한 추억과 슬픔을 나누며 비로소 진정한 위로를 받는다. 영화는 관객을 외국에서 귀국한 정일의 시선을 천천히 따라가게 하다, 결국에는 우리를 그들의 감정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간다. 즉 외부의 시선으로 시작한 영화는 영화의 말미에 관객을 세월호 유가족 내부자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모든 행사가 끝났을 때, 마지막 시를 듣고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정일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지막 감정이 크게 터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관객 또한 온전히 그들이 되었다.


여전히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는 아직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실을 갈구한다. 영화 <생일>은 유가족들이 지난 5년간 살아온 삶과 태도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겼다. 그들의 지난 삶은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들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끝까지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진정으로 자식들을 마음에 담는 것이다. 



순남을 연기하는 전도연은 유가족으로서의 삶을 무표정한 얼굴을 통해 전달한다. 그리고 감정이 북받쳐 큰 울음을 터뜨리는 연기도 어떤 한이 느껴진다. 그는 영화 내내 유가족이 되어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힘들었다고, 여전히 아프다고. 정일을 연기한 설경구의 연기도 훌륭하다. 영화 말미 계속 우는 순남을 위로하던 그의 얼굴은 진정으로 수호를 만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순남보다 더 큰 울음을 터뜨린다. 그도 결국 유가족의 한 사람이고, 위로받아야 마땅한 위치에 있다. 설경구는 그렇게 우리를 내부인 속으로 초대한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건 이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이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게 유가족들을 다루고 있다. 비록 아주 극적인 요소가 많지 않지만, 그들의 삶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이 고이게 만들고, 결국에는 같이 울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이 영화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외부인으로 그 사건을 바라본 우리들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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