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빗구미 Jun 02. 2019

자본가와 노동자에 대한 현실적인 은유

-<기생충>(2019)




이 리뷰는 영화의 내용 일부와 해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려면 고개를 높이 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자 하는 목표나 지향점을 현재 보다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만들어 나간다. 낮은 곳을 바라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워서 현재의 상황을 딛고 올라서려 노력한다. 취업이라는 큰 문은 성인이 된 이후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올가미처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것이 현재의 상황을 타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취업이라는 큰 문을 뚫고 들어간다는 것은 자본가와 일하고 그 댓가를 받아 개인의 삶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가는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사업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래서 취업한 대부분의 사람들과 자본가들은 도움을 주고 받으며 공생하는 삶을 살면서 각자의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 되면서 어두운 구석이 생기기 시작한다. 몇몇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공생의 대상이 아닌, 그저 기생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많은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서로 협력하에 공생하고 있지만 그 밝은 구석은 어두운 구성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서로의 공생을 주장하고 실현하자고 목소리를 내지만 사실 공생으로의 길이 먼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에게 찾아온 작은 희망


영화 <기생충> 은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의 가족 이야기를 보여준다. 같이 거주하고 있는 장남 기우(최우식), 딸 기정(박소담), 아내 충숙(장혜진)은 모두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백수다. 그들이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에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 고개를 들어야 겨우 보이는 밖의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밝은 빛은커녕 취객이 지나가다 오줌 누는 장면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 집에서 삶을 연명해 가는 가족들을 보는 기택에게는 그 상황을 타계할 아무 계획이 사실상 없어 보인다. 반면 그의 아들인 기우는 친구의 소개로 고액과외를 소개받고는 여러 가지 계획을 품기 시작한다. 그건 그와 그의 가족이 반지하를 벗어날 수 있는 작은 희망이다.



희망이 생겼다는 건, 앞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실제로 반지하에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꿉꿉한 냄새 속에서 사는 것일지 모른다. 없어지지 않는 곰팡이와 환기가 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 환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인지된다. 아무 의욕 없이 살던 사람들이 한줄기 빛을 봤을 때, 그들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 빛을 따라가게 된다. 기우의 과외로 얻어진 기회는 그와 그의 가족을 무노동 층에서 노동자 층으로 편입시킨다. 그들은 높은 곳을 향해 한 걸음 내딛지만 그건 거짓된 증명서 하나로 시작된 기회다. 기우의 고액과외는 점점 상황을 확대해가며 박사장(이선균)과 그의 아내 연교(조여정)에게 많은 월급을 받아내기 시작한다.



사실 자본가 계급들은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그 주변의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 중에는 자본가들의 돈을 보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구하고 해결책을 찾기를 희망한다. 소개받은 사람에 대한 판단은 본인 스스로 내리게 되는데, 눈앞에 보여지는 사실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검증이 약해져 버린다. 영화 속 두 아이의 엄마인 연교가 딱 그런 타입이다. 쉽게 사람을 믿지만, 감언이설에 속아 쉽게 주변 사람을 버린다. 남편인 박사장 역시 단편적인 정보만을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린다. 그들은 언뜻 굉장히 선해 보이고 인심을 베푸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그들은 주변에 고용된 모든 사람을 적당한 선까지만 믿는다. 그만큼 불안한 징조가 보이면 쉽게 사람을 자르고 교체해 버린다.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관계를 파고드는 영화


영화는 모든 장면에서 기택의 가족들이 계단을 올라가거나, 박사장의 집에 올라가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내내 기택의 가족들이 거짓말을 통해 얻어 일하는 모습이 공생하는 관계라고 착각하게 한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중반까지 그 모습은 긍정적으로 작동되는 공생구조로 그려진다. 많은 노동자가 그렇듯 자신이 고용주인 자본가에게 꼭 맞고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는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적정한 선에서 유지되던 공생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상황과 구조에 의해 기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이는 현실로 치닫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자본가가 주는 자금, 월급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만약 자본가가 제시하는 적정한 선을 지키지 못한다면 노동자의 지위를 잃게 되고 금방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 영화 속 박사장의 운전사나, 가정부였던 국문광(이정은)이 그렇게도 쉽게 잘려나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모습은 현실 속의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노동자 좋은 자본가를 만나 같이 성장하고 또다른 자본가로 상승할 수 있겠지만, 나쁜 자본가를 만나는 많은 노동자들은 결코 그 기회를 얻지 못한다. 현실에서 그 상황은 점점더 확대되고 있다. 즉, 이제 누군가의 좋은 관계없이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영화 속 박사장의 운전사나, 가정부였던 국문광(이정은)이 그렇게도 쉽게 잘려나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모습은 현실 속의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저 모든 상황을 인내하던 노동자 중 몇몇은 자본가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 투쟁은 자본가를 때때로 궁지에 몰게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그들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 중간 어딘가에서 또 다른 형태로 기생한다. 이들은 자본가의 시선에서도, 노동자의 시선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꾸준히 세밀하게 관찰해야만 그들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기택의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냄새는 박사장의 가족들에게 인지되어 그들의 자존심을 흔든다. 끝없이 계단을 내려가 집에 도달한 기택은 아들 기우에게 말한다. "계획을 세워도 소용이 없어. 모든 건 계획대로 안되거든". 어쩌면 기택은 반지하를 벗어나 위로 올라가기 위해 수많은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고 더 이상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어딘가 걸려버린 노동자 계층은 걸린 발을 빼지 못하고 아래 동네에서 배회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어쩌면 취업이라는 큰 문에 들어선 순간 발에 걸려 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목표나 지향점을 잃어간다.


노동자와 다른 노동자 간의 갈등, 노노갈등에 대한 은유


영화 속 또 다른 노동자 인 가정부 국문광과 그의 남편 근세(박명훈)는 특별한 형태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도 박사장 가족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기택의 가족들과 동등한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근세와 그의 아내는 박사장을 이상하리만큼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이 두 가족은 결국 충돌하는데, 이들의 충돌은 노동자 계층의 분열로 볼 수 있다. 현실의 정규직과 계약직 간의 충돌과 같이 그들 간의 싸움은 매우 치열하지만 자본가에게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다. 그들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며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자본가가 가진 자본을 독점하여 기생하려는 그들의 싸움은 처절하다 못해 슬퍼 보인다. 



박사장 저택의 구조도 인상적이다. 수많은 계단을 통해 여러 층을 갈 수 있고, 뫼비우스 띠처럼 현관으로 나갔다가도 차고로 다시 집안 내부로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지하 창고로 내려가면 또다시 지하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지하가 나온다. 결국 사회에서 복잡하게 얽힌 계급 간의 위치를 드러내는 한 편, 영화 속 인물들이 얽힌 관계와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기생충>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각자 보이는 점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는 결국 계급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런 계급 구도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의 모습을 이상한 소동극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의 자본가들의 태도와 노동자 또는 무노동자 계층이 서로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고 살아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나 영화 속 자본가가 무의식 중에 드러내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혐오 또는 무시는 냄새라는 것을 통해 드러낸다.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자본과 신분 상승에 대한 의지도 인물들의 진지한 거짓말과 그들 간의 투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결국 노동자들은 공생할 자본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누구도 자본가의 계급에 올라서지 못한다. 그저 멀어만 보이는 목표를 잡고 다짐 하는 방법밖에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치 기생충이 숙주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특히 기택을 연기한 송강호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흔들리고, 조금씩 변해가는 상황을 수습하려 하는 가장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우를 연기한 최우식, 기정을 연기한 박소담, 충숙 역의 장혜진도 극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있으며, 국문광의 남편 근세를 연기한 박명훈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듯한 괴상한 인물을 인상 깊게 보여준다. 심각하지만 유머러스한 상황들이 있고, 화나거나 가슴 아픈 장면들도 있는 영화 <기생충>은 이상한 영화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이야기 자체로 빠져들게 하는 재미가 있다.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은 아주 재미있게 관람하고 나서, 조금은 쌉싸름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게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변화된 시대 상이 반영된 디즈니 실사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