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벨:집으로>(2019)
부모님의 직업은 아이에게 꽤 많은 영향을 준다. 육체노동자 거나, 환경미화원인인 부모님을 친구와 우연히 길가에서 만났을 때, 모른 척 외면하고 걸어갔다는 등의 일화는 자녀의 심리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는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물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그 직업을 미성숙한 자녀의 시선으로 볼 때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때가 있다. 사실 부모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감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자녀의 진로에도 영향을 준다. 많은 자녀들은 부모가 가진 기질을 전달받는다. 육체적인 특징뿐 아니라 같이 살아가면서 직접 보게 되는 성격과 일하는 성격도 닮아간다. 특히나 부모의 직업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같은 특수한 경우라면 더욱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기는 하다.
영화 <애나벨:집으로>는 <컨저링> 유니버스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워렌 부부의 딸 주디(맥케나 그레이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워렌 부부, 특히 부인 로레인(베라 파미가)의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주디는 죽은 혼령을 보거나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그가 자신의 능력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일 수도 있다.
<애나벨> 시리즈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사실 애나벨의 존재는 비중이 크지 않다. 웨렌 부부가 집 창고에 봉인하고 있는 나쁜 존재가 깃들어진 물품들이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데 많은 영적 존재가 깨어나지만 일어나는 일들은 작기만 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히려 딸 주디가 겪는 심리적 혼란과 공포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들보다 더 무섭게 느껴진다.
영화 제목이 <애나벨>이지만 애나벨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이 영화의 정체성도 약해졌다. 3부작을 완성하면서 더 이상 애나벨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보다는 워렌 부부의 다른 이야기인 <컨저링 3> 편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컨저링> 유니버스에 속한 공포영화들이 하나씩 등장하고 있지만 점점 더 이야기의 재미 측면에서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 공포 영화 특유의 스릴과 긴장이 포함되어 있지만 점점 비슷한 유형의 공포를 다루다 보니 그런 경향을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컨저링> 유니버스의 공포 영화들은 가족의 아픔을 중심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번 <애나벨:집으로> 역시 가정 내의 아이에 집중하고 있다. 이 유니버스 영화들의 공포를 만드는 요소들은 어쨌든 가족사에서 끌어온다. 어쩌면 이번 영화에서 등장한 모든 영적인 물건들은 가족에 대한 어떤 사연들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제작사가 그것들에 대한 영화들을 제작할 계획이 있는 것 같다. 영화 내용 자체보다 제작사의 계획 자체가 더 무섭게 다가온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워렌 부부의 딸 주디는 영매로서 성장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워렌 부부도 알게 되면서, 아마도 다음 <컨저링> 시리즈에는 가족 3명이 모두 등장하여 악령과 대결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주디는 부모의 뒤를 따라 부모의 길을 간다. 어쩌면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어떤 숙명처럼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애나벨:집으로>는 주디의 성장에 대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