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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Oct 24. 2019

우리 모두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가족과 친구와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가는 삶은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 주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잘해주어도, 자신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사회의 통념과 고착화된 관념과 제도는 깨뜨리기 어렵다. 그 사회적인 장애물들은 개인의 삶에 가속을 줘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삶을 더 나아갈 수 없게 벽을 쌓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게 의지하지만 각각의 가족들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상처를 주기도 한다.


누군가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결혼의 주체가 되는 두 사람은 각자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쩌면 그것은 개인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의미 일수도 있다. 한국이라는 국가 시스템 안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이라는 작은  테두리를 만들어  삶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면서 어떤 부분은 바뀌고 어떤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그 안에서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판단하며 조언한다. 하나의 가족 안에서도 각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다르다.


육아에 지쳐있는 주부 김지영의 고민이 담긴 영화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주인공 김지영(정유미)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각자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남편 대현(공유)과 아이 한 명을 낳아 기르면서 아이 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지영의 모습은 그저 평범해 보인다.  아이를 깨워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잠시 다른 아이 엄마들과 차를 마시는 등, 현재 주부로서 생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왠지 지쳐 보인다.  영화는 그가 베란다에서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 뒷모습과 아내가 걱정되어 정신과를 찾아가 아내와 관련해 상담받는 남편 대현의 모습을 교차로 그린다.



지영이 자라온 집안 풍경은 막내 남동생이 귀하게 자라온 남아선호가 뿌리 박힌 집이었다. 지영의 엄마 미숙(김미경)은 젊은 시절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시켜 지금까지 살아온 전통적인 어머니의 삶을 살았다. 집에서 아들은 친가에 대접받지만, 딸들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사실 영화 속 지영의 아버지가 결코 지영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과거에 해오던 관습과 생각대로 지내온 것이다. 몇십 년을 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지냈던 아버지는 습관처럼 아들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딸이 잘되길 바라면서도 몸은 어느새 아들을 향해있다.  그렇게 뿌리 박힌 습관은 무섭게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영화는 그렇게 지영의 현재 삶과 과거 삶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과거의 문제가 여전히 현재에도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으로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한다는 것은 현재에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여성들에게 육아휴직은 쓴다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이는 힘든 일이면서 휴직 후 다시 복직을 하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를 맡길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마저도 찾지 못하면 복직을 포기해야 한다. 여전히 지금도 남편이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에는 경력 상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따른다. 출산 후  남편들은  최대한 아내와 육아를 같이 하려 하고 도우려고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장벽 앞에 도움의 손길은 희미해진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거 여성에 대한 시각


출산을 결심하기 전, 남편 대현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많이 도와준다고 하며  지영을 설득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니 대현은 끊임없이 아내를 도우려 부단히도 노력하지만 그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 가만히 앉아 아내를 바라보는 대현의 얼굴도 근심과 걱정, 그리고 미안함이 가득하다. 도와주고 싶어 아무리 노력해도 대현의 도움은 아내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그것을 가로막는다. 대현과 지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 후 육아를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지금 현재 겪고 있는 고민들이다. 이런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또한 남편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본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상처로 돌아가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 반복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 직장인들은 부모님 세대에 비해 늘어났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다. 하지만 출산 후 여성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여전히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영화 내 등장하는 성공한 김 팀장(박성연)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여성들의 동경을 받지만, 가정 내에서 좋은 엄마의 아이덴티티를 얻지 못했다. 직장 내에서는 끊임없이 여성 비하 발언 등을 무시하거나 싸워나가야 했다. 그래서 남는 건 센 이미지뿐이다. 육아라는 산을 넘지 못한 여성들은 경력단절로 그저 주부로 남거나 직장에 남아 센 여자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그런 시선은 남성들에게 던져지지 않는다. 성공한 남성 직장인에게 센 남자라는 딱지를 붙이지도 않으며, 남성 직장인들이 육아 때문에 휴직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 육아휴직 등 제도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여성들이 겪는 이상한 변태들의 행동으로 인한 피해, 즉 성추행이나 몰카 같은 것들을 보는 시각도 여전히 구시대적으로 머물러있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속 지영이 고교시절 버스에서 따라오던 이상한 남학생 때문에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을 때, 지영을 데리러 온 아빠는 이야기한다.


"너 행동 조심해. 치마가 너무 짧잖아. 돌이 굴러오면 잘 피해야 되는 거야. 보고도 못 피한 사람이 잘못한 거야. 알겠어?"


현재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이용할 때 먼저 살펴봐야 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인 여성들이다. 사람들은 몰카범이 당연히 잘못했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결국 당하는 사람들이 더 조심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해결방법을 찾는다. 아마도 피해자가 더 조심해야 한다는 그 인식은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울 때 더욱 쉽게 빠질 수 있는 사회적 오류 일 것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전투 속에 빠진 82년생 김지영


그런 모든 상황들은 지영을 전투로 몰아넣는다. 육아 전투, 경력 단절과의 전투, 변태와의 전투 그리고 가족과의 전투. 본인이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는 그런 전투 상황으로 몰아넣은 건 사회 제도와 사회 통념이다.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끔 정신을 잃는 지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은 동정심과 안타까움이다. 그나마도 영화 속 시어머니는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서 줄곧 그의 곁에 있는 건 남편 대현이다. 그는 본의 아니게 혼자 전투를 하고 있는 지영의 옆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갑자기 지영을 안아주고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지금 아내를 걱정하는 무수한 남편들의 모습이 보인다. 대현이 아내의 경력을 살릴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의 경력이 희생됨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쓰려고 하는 모습은 아마도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희망인지도 모른다.



영화 내내 대현은 아내 지영에게 반복해서 묻는다. "자기 괜찮아?" "괜찮겠어?" 그리고  지영에게 경력을 살릴 기회가 생겼을 때 이야기한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해". 어쩌면 현재의 모든 남편들은 아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주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지영과 같은 상황에 처한 수많은 현재의 김지영들을 구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던히 노력하다 그저 눈물을 보이는 남편 앞에 그 수많은 김지영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자기 많이 힘들었겠다. 그동안 말도 못 하고 많이 힘들었지?"


오히려 남편의 손을 잡고 상대방을 위로하는 모습은 꽤 감동적이다. 그렇게 가만히 서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지영과 대현의 모습에서 수많은 현재의 지영과 대현을 본다. 영화가 내내 제시하는 지영이 여성으로서 겪는 경험들과 대현이 남편의 시선에서 겪는 고민들은 현재를 살고 있고 육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많은 부부들이 공감하게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일들 중 적어도 한 두 가지는 그들이 이미 경험했거나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특히나 중심이 되는 육아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면 직장에 갈 수가 없다. 영화 속 상황처럼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을 향하는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들이 겹쳐지면 결국 경력 포기라는 선택으로 자꾸만 발걸음이 옮겨진다. 영화는 그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왜 젊은 층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를 아주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사회 통념의 변화다. 그것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시대의 김지영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결국 사회 제도와 통념이 변해야 한다고 섬세하게 설득하는 영화


이 문제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여성들이 전담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육아는 이제는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진 결과다. 여전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꽤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회의 선에 서야 한다.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들은 지금까지 그 기회를 보이지 않게 제한당해 왔다. 이제 여성은 단순히 피해자 또는 약자가 아니다. 그들도 자신의 목표와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제도와 사회적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배우 정유미와 공유의 얼굴로 우리 시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정 내 문제를 오롯이 드러내 보인다. 그들이 영화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과 대화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충분하다. 왜 원작 소설이 그토록 사랑을 받았고, 또 논쟁이 되었는지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보여준다. 현재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아내와 남편들은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며 위로를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들의 고민과 감정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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