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빗구미 Nov 03. 2019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세 여자의 모험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2019)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매일, 매 순간 맞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한쪽을 택하고, 정말 원하는 길이 있다면 기꺼이 어려운 길로 가기 위해 싸움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 선택이 끝났다고 해도 여전히 미래는 암흑 속이다. 어떤 결말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그 선택 이후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면, 또는 세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면 다시 똑같은 갈림길에 서더라도 계속 같은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미래는 현재의 내 선택에 달렸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적인 시각이 강했지만 현대로 오면서 그 미래를 현재가 만든다는 시각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특히나 80년대 여성을 중심으로 운명론에 반하는 선택을 했던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의 이야기는 그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주인공인 사라 코너는 수동적으로 남자의 보호를 받는 캐릭터로 시작하여 궁극에는 자신의 힘으로 아들을 지키고 세계의  미래마저 바꾸는 주체적인 여성의 캐릭터로 변모한다. 그 시기의 이 캐릭터를 이끌어가는 힘은 강력한 모성이었다. 그 모성이 바탕에 깔린 힘은 그를 세상을 지키고 미래를 바꾸는 동력이 된다. 사라 코너가 이 영화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터미네이터 2>(1991)는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고, 쟁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과거 시리즈를 이어가는 진정한 속편


사실 그렇게 그 이야기는 종결되었다. 2편 이후 세 편의 터미네이터 영화가 나왔지만 과거 시리즈와 동등한 시각을 보여준다거나 특별히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아예 시리즈의 중요한 메시지가 빠지거나 캐릭터 서사가 빠져있어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었을 후속편들이었다. 과거 사라 코너의 결정으로 바뀌어 버린 세계의 운명은 후속 편에서는  다시 운명론으로 바뀌어 이야기된다. 즉, 운명은 정해져 있고 결국 그건 바꿀 수 없다는 식의 서사를 가져온 후속편들은 과거 시리즈의 지향점과는 반대되는 논리를 가져오면서 아류작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는 기존 사라 코너의 <터미네이터> 서사를 이어받고 있다. 사라 코너와 함께 새로운 등장인물인 다니(나탈리아 레예스),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를 등장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려 하며, 새로운 터미네이터인 Rev-9(가브리엘 루나)를 등장시켜 긴장감을 높인다. 기존의 정통을 이어받는 후속 편이 정말 필요했을까라는 물음에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와 캐릭터로 답하고 있다.


운명 개척론자인 사라 코너는 여전히 카리스마 있게 자신과 세계의 위기에 등장해 맞서 싸운다. 이미 환갑이 넘은 영웅은 첫 등장부터 압도적이고 힘이 넘친다. 그에 반해 새롭게 등장하는 다니와 그레이스는 과거의 사라 코너를 떠올리게 한다. 아직 맞서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서툰 두 사람은 대부분의 상황에 큰 두려움을 느끼지만 최선을 다해 닥친 위기를 벗어나려 애쓴다. 이렇게 세 여성이 만나게 되면서 관록 있는 과거의 영웅과 힘이 넘치는 새로운 영웅이 함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간다.


과거 후속 시리즈와는 다르게 남성은 철저히 보조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빌런으로 등장하는 Rev-9과 T800(아널드 슈워제네거)은 신구 터미네이터 대결을 벌이며 여성들의 주변에 위치한다. 세 여성 캐릭터가 힘을 합쳐 강력한 터미네이터에 대항하는 액션 장면은 각 캐릭터에 맞게 구현됨으로써 박진감이 넘친다. 그레이스는 기계가 이식된 인간으로서 맨몸으로 하는 액션을 훌륭히 처리하고, 위압적인 분위기인 사라 코너는 엄청난 화력으로 기선을 제압한다. 주로 보호당하는 역할을 맡은 다니는 지난 시리즈 중 존 코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세 여성 캐릭터가 이끄는 영웅 서사


이들이 같이 앉아 대화하는 장면들에서는 사라 코너와 신 캐릭터들 간의 성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과거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라는 그레이스가 다니를 보호하는 이유가 다니가 낳을 아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사라 코너 입장에서 다니는 자신과 같은 신성한 모성, 또는 신성한 자궁이기 때문에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니는 이미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었으며 영웅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30년 전에 선보였던 기존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그 당시에는 혁신적인 진보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었지만 현재의 시점에는 이미 낡은 시각이다. 하여 새롭게 서사를 이끌어가는 그레이스와 다니는 다시 현재의 시점에서 보다 혁신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며, 그 흐름 안에 과거의 여성 영웅이 그 상황과 인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영화 안에 담겨있다. 


현재 시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여성상이 담겨있지는 않지만, 과거 시리즈의 여성상에서 한 단계 진보된 시선을 보여주고 서사의 중심을 완전히 여성 위주로 바꾸면서도 이야기의 힘과 액션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나 영화에서 다니와 그레이스의 이야기 이외에 같이 포함되어 있는 사라 코너와 T800의 이야기는 마치 <터미네이터 2>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사라 코너가 가장 믿을 수 없는 인물이면서, 믿을 수밖에 없는 인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도 이 영화의 볼거리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확실이 과거의 시리즈를 이어간다. 운명은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기본적인 시리즈의 전제를 분명히 유지하면서 다양한 액션 장면을 포함하여 긴장감을 높인다. 차량 추격전, 육탄전, 수중 액션, 공중 액션 등 다양하고 빠른 액션들은 과거에 보아왔던 시리즈의 액션에 비해 잘 짜여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시리즈의 핵심 캐릭터, 운명 개척론자 사라 코너


영화 속 사라 코너가 등장할 때, 기존 팬들의 가슴은 빠르게 뛸 것이다. 이제 할머니 나이가 된 그가 느릿하고 분명한 말투로 이야기를 할 때, 30년 전의 영웅이 그대로 나이가 들었고 과거의 모습 그대로 현재 시점에 돌아왔다는 것은 이 영화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다. 이 영화는 결국 사라 코너의 이야기다. 그가 자신의 운명을 어떤 식으로 개척해 나가고, 시대에 적응해 나가는 사람인지를 이번 시리즈에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라 코너는 린다 해밀턴이 아니라면 어떤 배우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영화로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터미네이터 T800도 반가움을 느끼게 하며, 아마도 진짜 마지막이 될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터미네이터> 출연은 이 시리즈에서 그의 진정한 은퇴를 스스로 기리는 것 같다. 


영화 <데드풀>을 만들었던 팀 밀러 감독이 그 자신의 스타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에는 유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과거 시리즈의 팬이고, 팀 밀러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했다면 이 영화를 아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모두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