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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Nov 10. 2019

전작과 원작을 더욱 빛나게 하는 <샤이닝>의 후속 편

-<닥터 슬립>(2019)





누구나 자신이 가진 잠재력이 있다.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잠재력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더 크게 자리잡기도 한다. 그 잠재력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데에는 집안 환경도 중요하고, 사회적인 인식도 중요하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마음껏 표출하지 못했다. 그것이 좋은 의미의 능력이든, 나쁜 의미의 능력이든 어쨌거나 세상에 표출되려면 꽤 오랜 시간과 어려운 과정이 필요했다. 부모, 특히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감추고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잠재력은 집안의 존재에 의해 증발되어 버린다.


현재는 과거보다 그런 능력의 표출에 관대하다. 여러 아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마음껏 뽐낸다. 잠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숨으려 하면 부모, 또는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세상 밖으로 그것을 표출하도록 도움을 준다. 과거에 자신의 잠재력을 표출하지 못한 인물들은 현재의 아이들이 그들의 재능을 더 이상 묻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 주변에는 그들의 능력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암적인 존재들이 아이들의 능력을 이용한 이후엔 아이들에겐 예전의 그 잠재력은 사라지며, 삶 자체가 무너진다.


영화 <샤이닝> 이후 꼬마 대니의 이야기


<샤이닝>(1980)은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심리 스릴러 장으로 끌고 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 대니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즉 영화 속에서 ‘샤이닝’이라고 불리는 그 능력과 그것을 빼앗아 버리려는 존재들은 결국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미쳐버리게 만든다.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1980년의 영화 <샤이닝>은 아이가 가진 특별한 능력에 집중하기보다는 알코올에 의지하는 아버지의 심리 상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공포스러운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기괴하게 그린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아이였던 대니(이완 맥그리거)가 성장한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닥터 슬립>은 과거 오버룩 호텔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 이후 대니의 성장과정을 초반에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대니가 가진 특수한 잠재능력인 샤이닝을 빼앗으려는 기괴한 존재들은 대니의 마음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은 상자들에 가두어 두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대니는 전국을 유랑하며 망가진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대니 자신도 마음을 위로한다는 이유로 알코올에 의지하며 괴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술에 취해 싸움을 하고,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치는 그의 얼굴과 어깨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망가지던 그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대니가 그렇게 삶을 망가뜨리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세상에 보일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아버지와의 겪은 끔찍한 사건 이후 입을 닫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했고 결국 노숙자로 전국을 방랑한다. 결국 어떤 마을에서 빌리(클리프 커티스)를 만나 일자리도 구하고 정착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그 자신의 능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며 조심스러운 삶을 이어나간다. 그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은 노인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 직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숨을 내쉴 때다. 그는 마지막 삶의 순간을 맞은 그들을 앞에서 과거 가장 아름 다웠던 기억을 그들에게 상기시키며 편안하게 죽음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그 병원에서 대니는 닥터 슬립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방황하고 있는  대니가 만난 특별한 아이 아브라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대니는 굉장히 따뜻하고 인간적인 인물이다. 아버지의 비극을 경험했음에도 사랑으로 그를 아껴준 어머니의 존재는 그가 그런 심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영화 내내 그런 따뜻한 감성이 대니 자신과 함께 그의 편에 서있는 모든 인물들을 어루만지고 보호한다. 결국에 술을 끊고 중독 치료를 받던 그는 영화 중반 이후 어떤 괴로운 상황에도, 달콤한 유혹에도 술을 입에 넣지 않는다. 힘들고 당황스러울 때마다 술을 입안으로 들이켰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그는 자신의 의지력으로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 그는 마음속에 가두어두었던 응어리를 터뜨리고, 자신의 능력을 쏟아낸다. 



대니는 영화 내내 샤이닝 능력을 최소한으로 이용하지만, 조금 떨어져 있는 아이 아브라(카일리 커란)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한다. 영화에서 대니와 만나기 전까지 그는 적극적으로 그 능력을 활용해 대니와 텔레파시 대화를 나누고,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의 샤이닝을 먹고사는 로즈(레베카 퍼거슨) 일행의 살인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그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추격전과 함께, 샤이닝을 이용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추격전이 같이 진행되면서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아브라의 모습은 과거의 대니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줄 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런 모습은 확실히 세상을 향해 소극적인 삶을 살았던 대니와는 대비된다. 


영화 <닥터 슬립>의 제목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노인들의 죽음 직전 조용히 잠들게 한다는 의미에서 그 노인들이 붙여준 대니의 별명이다. 그 별명처럼 이 영화 속에서 수많은 노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존재들을 잠들게 한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목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단지 한 사람, 아브라에게만큼은 세상 속에 마음껏, 솔직하게 뛰어들라는 이야기를 한다. 과거의 굴레에 갇혀있던 대니 자신의 경험을 뒤로하고 자신과 같이 샤이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다음 세대인 아브라는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샤이닝에 대해 세상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특별한 능력 '샤이닝'을 빼앗아가는 탈사회적 존재들


과거 시점에서는 정적인 성향을 가진 호텔이 한 장소에서 샤이닝을 빼앗아 흡수하는 존재였다면, 현재 시점에서는  돌아다니며 샤이닝을 찾는 로즈 일행이 등장해 매우 동적인 집단으로 묘사된다. 현재에 아이들의 잠재력을 빼앗는 존재들은 현재 시점에 맞게 과거와 다르게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다음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영화는 줄곧 이야기한다. 그래서 영화 속 아브라는 초반에는 주변에 그 사실을 숨기지만 후반에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드러낸 그는 아주 당당하게 로즈 일행에 맞선다. 그런 과정에서 대니는 자신의 과거를 청산할 기회를 얻고 아브라는 자신의 잠재력을 세상에 숨기지 않을 기회를 얻게 된다. 



아이들의 샤이닝을 뽑아 먹는 로즈 일행의 모습은 탈사회적 존재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오랜 시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납치해 고통을 주고, 서서히 죽여가면서 그들이 공포를 느낄 때 연기처럼 배출되는 '샤이닝'을 입으로 삼킨다. 그렇게 다른 이를 희생시켜 얻은 생명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유지하며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그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존재들이다. 마치 그들에게 빨대를 꼽고 살아가고 있는 연예 기획사나, 매니저 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빨아먹고 있다. 아이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들은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며, 그저 아이의 능력을 빨아먹고는 더 이상 먹을 것이 남아있지 않은 아이의 몸은 땅바닥에 버려둔다. 영화에서 로즈 일행은 한 편으론 무척 자유로운 존재로 그려지지만 그들도  결국엔 <샤이닝>의 알코올 중독자 대니 아빠와 같이 무언가에 중독된 중독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과거 <샤이닝>은 원작 소설을 충실이 옮긴 영화는 아니었다. 다시 새로 쓴 영화라고 할 만큼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의 시선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닥터 슬립>은 조금 더 원작 소설에 가까운 설정으로 그려진다. 전작 영화가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면, 이번 <닥터 슬립>은 특별한 아이들이 가진 샤이닝이라는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엑스맨, 또는 히어로 영화의 스릴러 버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는 원작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가 된다. 그렇게 원작 소설 방향으로 머리를 틀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편인 <샤이닝>과의 연결을 꽤 많은 부분에서 하고 있다. 전편에 나왔던 기괴한 존재들과 과거 방문했던 호텔을 그대로 등장시키고 음악과 화면 구성도 비슷하게 촬영하여 전편의 팬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원작 소설과 전작 영화의 설정을 적절히 활용하여  만들어낸 영화


그렇다고 영화적 완성도를 심각하게 낮추지도 않았다. 기타 히어로 영화와 겹치지는 하지만 ‘샤이닝’이라는 능력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능력자들이 서로 꿈에서 대결하는 장면은 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전편에 등장했던 오버룩 호텔과 그곳에 등장했던 다양한 존재들이 재등장하고, 젊은 아버지의 모습도 등장시켜 이 영화가 원작 소설뿐만 아니라 전작 영화 <샤이닝>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주인공 대니를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는 성장하여 여전히 과거에 갇혀 괴로워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섬세하고 연약한 인물에 대한 묘사를 탁월하게 해내면서 영화에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특히나 그는 영화 초반 알코올 중동자의 모습을 그리지만, 후반부 그 상황을 극복한 이후 주변 모든 인물이 술을 권해도 거절한다. 그런 단호한 모습을 연기하는 이완 맥그리거의 연기는 대니와 딱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인 로즈를 연기하는 레베카 퍼거슨도 미스터리 한 인물로  딱  맞는 캐스팅이다. 그가 가진 특유의 얼굴은 중독자의 이미지와 함께 약탈자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어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게 해 준다.  그들의 연기는 원작 소설과 전작 영화 모두를 훌륭히 계승하게 만든다. 


영화 <닥터 슬립>은 소설과 전작 영화의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각각의 시선에서 모두를 이어가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전작 영화의 팬도, 원작 소설의 팬도 모두가 만족할만한 영화가 공포영화 전문 감독인 마이크 플래니건 감독의 손에 의해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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