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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an 29. 2020

몰락하는 조직 내 경쟁의 최후

-<남산의 부장들>(2020)





소멸해 가는 조직 속의 개인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최고 리더 아래 비슷한 계층의 여러 리더들은 서로가 큰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견제한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그 경쟁은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들고,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그런 건강한 조직 안의 개인들은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조직의 탄생과 몰락의 과정은 사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일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에서 우리는 이미 무수한 국가와 사회 집단의 흥망성쇠를 접해왔다.


가장 쉽게 우리는 그 모습을 스포츠 팀에서 볼 수 있다. 잘 짜인 팀은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점점 더 높은 위치를 향해 간다. 최고 리더는 그 팀을 하나로 만드는데 자신의 능력을 쏟아부어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최고의 조건 아래 운영되는 팀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우승 트로피를 얻는다. 반대로 잘되지 않는 팀은 각자의 능력을 뽐내기 바쁘다. 당연히 팀은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최고 리더의 말로도 팀을 정리하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는 잘못된 리더로 인해 길을 잃고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몰락하고 있는 국가 통치 집단의 이야기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몰락해가는 국가 통치 집단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습들과 함께 생각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중앙정보부장인 김규평(이병헌)이다. 그는 권력의 핵심인 박통(이성민)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지만, 자신을 경계하며 박통 옆을 지키는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에게 서서히 밀려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과거 중앙정보부장이었던 박용각(곽도원)은 미국에 박통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며 박통의 분노를 이끌어낸다. 영화는 중심에 김규평을 놓고 각 인물들에 반응하는 그의 모습을 세심하게 담는다. 



박통 주변에 위치한 인물들은 군 출신으로 박통이 쿠데타 당시 도움을 주거나 그 이후 정권 유지에 힘이 되어줬던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가 박통의 신뢰를 받는 위치에 서길 원했다는 점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각기 다른 위치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그 길을 걸었던 박용각은 배신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김규평은 자신의 위치를 내내 의심한다. 곽상천은 자신이 박통의 믿음을 샀다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다. 김규평은 위로 올라가는 곽상천과 나락으로 떨어진 박용각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그가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을 가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때론 박통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고, 때론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자체가 김규평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통이 모든 인물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듣는 입장에서 어떠한 결정도 막아주는 방패가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 말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박통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18년 넘게 국가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차지했지만, 주변 인물들을 지키진 못했다. 그저 장기의 말처럼 상대방을 이용해 자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자신은 한 발 떨어져 일을 벌인 상대방 탓을 한다.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이 말에는 굉장한 힘이 있다. 상대방을 이름이나 직급이 아닌 '임자'로 호칭함으로써, 국가 권력 상 조직 내에서 자신의 배우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이라는 기묘한 힘을 준다. 이 말의 힘으로 일을 벌인 박용각과 김규평은 결국 그 화살을 자신들이 받는다. 이 말을 이용해 박통은 조직 내의 불순물이라 여겨지는 존재들을 하나 둘 제거해나가기 시작한다. 그 대상이 어떤 공로를 세웠든 상관없이 그것은 실행되고, 그 실행의 책임자는 하나 같이 파면당한다. 



박통 주변에 위치한 과거와 현재의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의 살아남기


각 인물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두는 박통의 배후에 누군가 있다고 의심한다. 영화 속 곽상천이 유일하게 의심을 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도 결국 나머지와 같은 처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죽어가는 조직 내 인물들은 외부 요인과 전혀 상관없이 서로에게 칼 끝을 겨눈다. 특히 김규평은 그 칼을 직접적으로 맞는다. 


영화 속 김규평이 박통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다. 옆방에서 도청기로 박통의 전화를 듣는 그 순간, 배우 이병헌의 눈빛으로 버려진 자의 처참함이 그대로 표현된다. 그의 눈빛은 처참함에서 분노로 바뀌어 마지막 장면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김규평은 박통에게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라며 경고를 하지만 그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지, 권력자들의 위한 정치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는 관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 속 김규평의 위치는 꽤 균형 있게 그려진다. 특정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묘사가 가능했던 건 아마도 배우 이병헌의 연기가 있기게 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실화와 실존인물에서 영감을 받아 각색되었다는 점에서 꽤 많은 관객의 시선을 끌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 영화적으로 다소 심심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야기 전개 상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일 것이다. 실제 박통의 걸음걸이까지 연구한 배우 이성민은 낮은 목소리와 어두운 얼굴로 주변 인물을 휘어잡고, 때론 밉상으로 그려지는 주변의 권력자들인 박용각과 곽상천은 배우 곽도원과 이희준에 의해 딱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로비스트 데보라 심 역할로 등장하는 배우 김소진의 연기도 인상 깊다. 과거와 현재의 부장들 사이에서 그는 어느 편에 설 수도 없지만 결국 현재의 권력에 서야만 하는 로비스트의 연기를 실감 나게 연기하고 있다. 이 캐릭터 역시 과거나 현재 권력,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에 다리를 걸쳐있다.  



캐릭터의 힘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끝까지 나아가는 영화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그것을 최대한 영화적인 객관적 시선으로 보려 노력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야기 자체의 힘을 빼면서 캐릭터로 그 중립적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김규평이 정말 국가를 위한 생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몰락해가는 시스템 안에서 꽤 혼란스러워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박통의 시스템은 중단되었다. 그 중심에 있던 과거 혹은 당시의 권력자들은 그것을 이어가지 못하고 또 다른 권력자 전두혁(서현우)에게 그 자리를 넘긴다. 몰락하는 집단에서 싸워서 살아남은 자는 결국 없다.  그 집단에서 기회를 엿보던 다른 포식자에게 모든 권력이 넘어갔다. 그 새로운 권력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국 좋은 리더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몰락해 가는 조직 내의 권력자들이 추구하던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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