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지 못하는 사회

-한공주(2014)

by 레빗구미


팍팍한 현대의 삶, 그리고 실현되지 않는 정의


현대의 삶은 팍팍하다. 개개인은 여유가 없고, 다른 개인에게 신경 쓰기 어렵다. 하지만, 각자 생각하는 정의는 다르고, 자기가 믿는 정의대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타인에게 그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한공주는 그런 정의에 대한 영화다. 한공주라는 아이가 처한 상황을 간결한 선생님과의 대화로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며 현재 공주가 처한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공주의 삶과 개개인의 정의에 대해 판단하게 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정의는 영화 속에서 실현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정의는 틀린 것일 수 있다. 내가 판단하는 정의는 내가 사는 그 지역의 정의 일수도 있고, 내가 사는 나라의 정의 일 수도 있다. 다른 지역의 사람 눈에서 볼 때, 그것은 틀린 것이지만, 지역의 색에 물들어 그 정의가 올바르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판단이 미숙한 청소년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영화 속의 사건들은 2004년에 일어났던 밀양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밀양이라는 독특한 지역 특성 때문에,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고,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가해자들은 피해자처럼 그 지역 어른들의 보호를 받았다. 그 당시 밀양의 분위기로는 피해자를 올바른 피해자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의와 멀어져 있는 사람들


한공주에서 보이는 어른들과 학생들의 모습은 정의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주인공 공주의 무표정한 모습은 그 정의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호소할 사람이 없는 듯 외롭게 보인다. 그 모습은 새로 전학 간 학교의 다른 친구들과 단연 대조적인 모습이다. 밝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이내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없어 어두워지고 만다.


영화 속 어른에서 그나마 공주의 정의를 지켜주는 사람은 이전 학교의 선생님이다. 하지만 그는 힘이 없어 공주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한다. 그저 숙식할 장소를 제공해주는 역할만 한다. 공주에게 도와줄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성폭행이라는 특수성은 타인에게의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성폭행은 자신의 몸에 타인이 강제로 침입한 것과 다름없다. 엄청난 칩입과 폭력을 겪고 공주는 타인의 접근을 어려워한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본인의 잘못인양 사람들일 피해 다닌다.

비난 속에도 삶을 살아가려는 분투


혼자 수영을 다니며 혼자 숨을 쉬고 50미터 트랙을 건너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잘못된 정의 속에서 혼자 살아가기 위해,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공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 어머니는 유부남과 바람피우고,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잘못을 하고 지내지만, 자신이 믿는 정의와 다르다고 판단되면, 해당되는 사람을 비난한다. 어찌 보면 그런 비난을 받고 있는 선생님 어머니는 어쩌면 공주를 더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어른들은 공주를 멀리한다. 성폭행이라는 것이 왜 피해자에게 부끄러운 것이어야 할까? 이런 잘못된 정의를 왜 우리는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는 걸까. 공주의 아버지는 돈에 눈이 멀어 합의를 하고, 어머니는 자신이 딸을 부끄러워하고 멀리한다. 공주는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이런 잘못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방어적인 공주의 모습을 보고 나면, 당장 개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수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여전히 그들의 모습을 감추고, 사람들을 피하며 살아가고 있다. 반면,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를 가해자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여전히 그들의 정의대로 믿고 멀쩡히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영화 속 끔찍한 일이 벌어진 그 장면에서의 선풍기처럼 세상은 돌아가지만 삐끄덕댄다. 아무도 이걸 고치려고 하지 않고, 멀리서 그 바람을 쐬고만 있다. 누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그 정의는 그대로 그냥 흘러간다.

우리 사회 속의 모든 공주를 살펴보는 시선


결국 영화는 그런 사회 속에 삶을 살고 있는 공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배우 천우희의 얼굴에는 그 끔찍한 일을 당했던 고통보다는 안아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외로움이 잘 담겨있다. 그녀의 뛰어난 연기는 영화의 공감을 높이고, 결국에는 분노하게 만든다. 영화의 연출은 초반에는 공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고, 중간중간 조금씩 과거의 일을 보여면서, 현재의 밝은 친구들과 대비해서 보여준다. 중반 이후에 공주의 삶이 과연 현재에 받아들여질 것인지 궁금해지고, 결국 끝까지 공주의 일에 몰입해서 지켜보고 분노하게 만든다.


전학 간 학교의 친구들과 노래를 하고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영화는 무척 밝은 시선으로 이들을 묘사하고, 밝은 노래를 들려주지만, 결국 어른들의 잘못된 정의는 그 밝음을 파괴하고, 어쩌면 공주를 죽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배웠던 수영실력을 발휘하여, 삶을 다시 새롭게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끝까지 고른 감정선으로 공주의 희망과 절망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있을 또 다른 공주를 이제는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한공주는 마음을 울리는 좋은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같이 분노하고, 사회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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