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임씨를 부탁해>(2022)
개봉전 시사회 참석휴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간다. 젊은 성인기를 거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바쁘게 삶을 이어가던 부모들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을 시작할 시기가 되면, 문득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때부터 아이가 독립하여 잘 지내는지 멀리서 지켜보면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애쓴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부모 세대들에게는 성인기 부모로부터 독립된 이후 맞는 두 번째 독립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자녀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도 강해지고 실제로 자녀들에게 도움받는 일들도 맞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건강 문제도 신경 쓰이게 되고, 과거에 가뿐히 했던 집안일들과 외부활동이 조금 더 힘들게 느껴지면 의존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 세대는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일을 느리기만 하나씩 해결해가고 가능하면 자녀들이 자신에게 너무 신경 쓰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사는 집이 조금 좁아도, 몸이 조금 불편해도 먼저 자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부탁하지 않는다. 그렇게 노년기에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의 모습은 비록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은 보잘것없어 보여도 자신에게는 그래도 꽤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노년기의 독립은 소소한 온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노년기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말임의 이야기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정말임 여사(김영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 종욱(김영민)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큰 문제없이 생활하고 있다. 아들의 전화에 퉁명스럽게 받고, 집에 내려온다는 아들의 말에 내려오지 말라며 전화를 툭 끊어버린다. 그렇게 몇 번의 통화를 반복하다가 결국 내려와서 인사드린다는 아들의 마지막 말에 알았다며 전화를 끊고는 천천히 일어나 집안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비록 말임이 자신의 아들에게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더라도 그의 속마음엔 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에서 말임과 종욱은 말임의 생활을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에 대한 논쟁으로 계속 부딪힌다.
말임의 모습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이제 노인이 된 부모 세대의 모습이 비친다. 말임은 자신의 문제로 아들과 며느리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들 종욱은 혼자 있는 자신의 엄마가 무척 신경 쓰인다. 영화 내내 종욱은 엄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제시하고 실제로 반강제로 도움을 주려고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번번이 엄마와 부딪힌다. 영화는 어떤 것이 효도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의 편함을 생각해서 무언가를 해주려고 하지만 그건 진정으로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 말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냥 아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몸까지 다쳐 불편한 모습은 더욱 아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겉으로 보기엔 엄마를 생각해 효도하는 자식으로 생각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건 엄마 말임이 원하는 효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같이 지내자는 아들과 며느리의 설득에도 말임은 거절한다. 계단에서 넘어져 팔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생활을 이어나가려 애쓴다. 하지만 결국 아들과 며느리가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에서 말임과 미선은 아들 내외와는 다른 긴장감이 느껴진다. 아들과 며느리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오해로 인해 자주 다투게 되는데, 미선은 완전한 타인으로서 그들을 바라본다. 미선 역시 자신의 엄마를 병원에서 직접 요양하고 있는데 여러모로 말임과 종욱의 상황보다는 좋지 않아 보인다. 경제적인 점과 미선 엄마의 건강문제가 좋지 않은 미선은 영화 내내,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정확히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영화 말미까지 긴장을 만들게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공감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다. 아들의 입장에서 엄마에 대한 걱정을 하는 종욱이 여러모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챙기려고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며느리 유진(김혜나)도 종욱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말임을 챙기는 것을 막지 않지만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힘들어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문제를 혼자 감당하고 있는 요양보호사 미선에게도 안타까움과 공감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영화의 중심 캐릭터인 말임은 영화에서 가장 독립적이고 용감한 인물이다. 아들 내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아들을 밀어내는 그 모습에는 우리 부모세대의 마음과 진심이 가득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여러 입장의 세대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조금은 색다른 가족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가족의 입장을 보여주며 온기를 전달하는 영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말임이라는 인물이 주변의 도움을 밀어내다가 우연히 주변에 있던 따뜻한 온기를 발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스스로 일어나 독립할 수 있는 그 온기는 어찌 보면 말임이 가진 의지가 발견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아들 내외와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여러 번의 다툼과 대화의 과정은 그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것 같다. 말임의 가족들이 겪는 모든 과정이 따뜻하게 영화에 담겼다.
말임 역을 맡은 배우 김영옥은 이번 영화에서 65년 연기 인생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신사와 아가씨]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그는 스크린 현역 최고령 주연배우로 당당히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엄마 연기로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아들 종욱 역을 맡은 배우 김영민은 과거 드라마 [부부의 세계], [나의 아저씨]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번 영화에서도 엄마 역할의 배우 김영옥과 좋은 모자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종욱의 부인 유진 역할의 배우 김혜나도 모자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며느리 역할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82년생 김지영>, [마인]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박성연도 요양보호사 역할로 영화의 긴장감을 높였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를 연출한 박경목 감독은 밴쿠버 국제영화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나 <써니>, <부산행>이나 [오징어 게임]의 촬영감독이었던 이형덕 촬영감독과 여기에 모두 출연했던 김영옥 배우와 같이 작업하면서 보다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영상으로 담담히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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