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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un 26. 2018

뒷산 노을에 담긴 과거의 진심

-변산(2018)


브런치 무비패스로 먼저 관람한 영화입니다.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준익 감독이 들고온 또다른 이야기


 이준익 감독은 심각한 영화든 코믹한 영화든 그 속에 진심을 담는 힘이 있다  소소한 듯한 이야기를 하면서 묵직하고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 꾼이다. 왕의 남자, 동주, 박열, 사도 같은 묵직하고 심각한 영화들로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고, 황산벌, 라디오 스타 같이 코믹한 설정 속에서도 소소하게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은 재미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그가 오랜만에 변산 이라는 현대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최근 현대가 아닌 과거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다시 돌아온 현대 시점의 이야기에도 소소한 감동과 웃음이 있다.


지긋지긋한 고향에 대한 이야기


 누구나 자신이 자라온 고향이 있다. 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특정 장소에는 자신 만의 추억이 있다. 누구나 자라온 고향을 떠나고 싶은 순간이 생긴다. 자라면서 좋지 않은 일을 경험하거나 가정 사가 어렵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도 고향을 벗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 고향의 무엇인가는 남아서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다. 영화 브루클린(2015)의 주인공인 에일리스(샤얼사 로넌)도 안좋은 일 때문에 고향을 등지듯 떠나지만 혼자 브루클린에서 외롭게 지내면서 남은 가족들과 고향 아일랜드를 그리워 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아일랜드 고향이 어릴 때와 똑같다는 생각에 다시 브루클린행 배에 오른다. 영화 변산의 주인공 학수(박정민)도 지긋지긋한 추억이 있는 변산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변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변산은 그가 고향에 다시 내려가서 맞이하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누구나 아버지에 대한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다. 한편으로는 싫어하는 감정도 있고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때가 많다. 많은 아들들이 아버지와 그런 관계에 있을 것이다. 학수도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다. 아버지(장항선)는 과거 건달로 학수가 어렸을 적 건달 일로 감옥에 가거나 도박으로 돈을 잃고 경찰에 쫒겨 다녔다. 학수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오지 못한 아버지를 학수는 용서하지 못했으리라. 이미 이준익 감독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영화 사도에서 다룬 적이 있다. 사도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렇게 좋지 않다. 그들은 결국 원수가 되어 사로 아껴주는 말도 못한채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변산에서의 학수 부자도 사이가 좋지는 않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는 아주 단순하지만 어떤 회한과 용서의 정서가 있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 랩퍼를 꿈꾼다. 자신의 어렸을 때 힘들었던 감정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 랩을 만들어 대회에 출전한다.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고 소질이 있었지만 그는 그 소질을 랩 가사를 쓰는 힘으로 전환하여 분출한다. 하지만 늘 실패한다 랩퍼들의 공개 오디션에 6번이나 도전해서 떨어진다. 그때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선미(김고은)의 연락을 받고 고향 변산으로 내려간다. 영화는 학수가 고향에 가서 맞닥뜨리는 과거들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담은 일종의 소동극이다. 학수와 그 동창들이 벌이는 소동극은 팝콘을 입에 넣으며 낄낄 거리며 보기에 적합하다. 학수는 여러 가지 소동을 벌이며 과거의 감정이나 분노, 잘못들을 다시 생각하며 그 고향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뒷산 노을을 보며 분노의 얼음을 녹이다


 학수의 분노는 무엇보다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다. 선미의 전화로 결국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 오게 되었지만 영화 내내 냉랭함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주변에 머무르던 선미를 본다.  노을을 좋아하는 그는 노을에 관련한 소설책으로 등단에 성공했으며 학수의 주변에서 그의 분노를 달래려 애쓴다. 학수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소에서 음악을 들으며 늘 보던 그 노을. 그 노을 속에 담긴 고향의 아련한 감정들을 결국 학수에게 전한다. 그 노을의 담긴 진심은 결국 학수를 변화 시킨다. 마지막 학수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아버지의 사과도 아니고, 아버지의 아픔도 아니다. 그 노을 속에 담긴 자신의 과거의 모습과 현재 모습에 대한 반성이 학수의 분노를 눈녹듯 사라지게 했다. 무엇보다 여러 동창들과 재회하고 과거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동창과 싸움을 통해 서로에게 가진 증오를 없애고 다시 동등한 관계로 돌아갔기 때문에 영화의 말미에 그는 진정한 랩의 가사를 쓸 수가 있었을 것이다.

랩의 스웩이 영화 전반에 녹아있는 영화


 전반적으로 랩의 스웩이 느껴지는 영화다. 학수가 랩퍼이기도 하지만 그가 그의 마음이 담긴 랩을 할 때 우리 마음도 움직인다. 특히나 랩을 시를 읽듯이 자막으로 표시한 부분에선 학수의 마음이 더 느껴진다. 그 마음을 느끼며 우리의 몸도 같이 움직인다. 이 영화를 보고 난다면 그 랩들을 다시 듣고 싶어진다. 어딘가 노을이 있는 곳에서 그 랩을 듣는다면 영화 속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일반 노래의 가사 처럼 랩의 가사도 시와 비슷한 운율을 가지고 있으니까.


관계의 풀림에 대한 설득은 약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이야기


 영화 변산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다. 하지만 아주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변산이 작은 동네라지만 예전의 동창들이 그대로 그 지역에 머무르고 우연히 학수와 만나는 장면은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과거에 학수가 괴롭히던 용대(고준)가 그 지역의 조폭이 되었다는 설정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 왕따를 당하던 용대가 결국 지역에서 불법적인 일이나 하는 깡패라니. 그가 어른이 되어서 다른 어른들에게 일종의 이지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를 영화의 설정 때문에 파괴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하는 모습은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학수와 아버지 사이에 여러가지 교류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미안함을 주면 분노로 응답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용서하는 마음일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학수가 용서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단지 학수의 마음을 변하게 한 것이 결국 선미의 행동과 노을 때문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그런 학수의 변화가 이해는 간다.

 배우 박정민은 동주에 이어 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애초에 랩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었으나 많은 노력 끝에 영화 속의 학수처럼 멋지게 랩을 해낼 수 있었다. 선미를 연기한 김고은도 그에 딱 맞는 배역을 위해 8kg나 몸무게를 찌웠다고 한다. 그렇게 살을 찌운 모습에서 글 쟁이의 느낌이 느껴진다. 다른 조연 배우들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학수의 친구로 나오는 고준의 연기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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