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2025)
누가 쏘았는지도 모르는 미사일이 우리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온다면,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 국가의 경계가 흔들리고, 시스템의 명령이 인간의 이성을 압도하는 그 순간, 정치와 도덕, 생존과 책임의 경계는 무너진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바로 그 경계의 균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미지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한 발, 그러나 발사한 나라는 불분명하다 정치인들은 '누가 쏘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무력해지고, 세계는 단 한 번의 오판으로 파국에 닿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떤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 스릴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적, 알 수 없는 명분, 그리고 정당화할 수 없는 선택의 무게를 버티는 인간들의 심리극이다. 총을 들지 않은 자들이 총보다 무거운 결정을 내리는 세계, 그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이성적일 수 있을까? 혹은, 두려움은 언제부터 인간의 판단을 대신해왔을까? 영화는 그 질문을 정치가 아닌 감정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두려움에서 시작되고, 인간의 후회로 끝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한다.
[첫번째 감정] 올리비아 워커 대령의 두려움
올리비아 워커 대령(레베카 퍼거슨)은 영화의 첫 장면부터 냉철하다. 그녀는 매뉴얼을 통제하고, 시스템을 점검하며, 명령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철두철미함의 이면에는 불안이 있다. 미사일 경보가 울리던 그 순간, 워커는 자신의 화면을 보며 속으로 되뇐다. '이건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 알람인가?'. 그의 그런 긴장이 영화의 모든 긴장을 압축한다. 그녀는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명령의 결과가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전쟁의 그림자 아래에서 워커는 자신이 인간임을 잊으려 한다. 그러나 감정은 언제나 균열을 찾아온다. 진짜 미사일이 미국 도시에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때, 그녀는 핸드폰을 찾아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최대한 멀리 이동하라는 말을 하고 끊는다. 관객은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 전장의 냉기가 아닌, 일상의 온기를 본다. 그리고 그 온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찢는다. 워커의 두려움은 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인간으로 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결국, 그녀는 무너진다.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듯한 긴장 속에서, 워커는 잠시 모니터를 벗어나 창문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명령의 실패가 아니라, 감정의 복귀다. 냉정함으로 감추려 했던 두려움이 마침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두려움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두번째 감정] 리드베이커 국방장관의 두려움
리드베이커 국방장관(자레드 해리스)은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그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미사일 발사 버튼을 둘러싼 정치적 전장을 지휘한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피로가, 그의 눈엔 슬픔이 있다. 그는 단 한 번도 '우리가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게 끝일 수도 있다'는 문장을 반복한다. 그 문장은 세계의 종말보다도, 자신의 가족과의 단절을 떠올리며 내뱉는 고백처럼 들린다.
리드베이커의 두려움은 공적 책임과 사적 후회의 교차점에서 자라난다. 그는 한때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딸과의 관계, 이미 무너진 가정은 그가 통제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다. 그가 지휘실 안에서 딸의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정적이면서도 잔인한 순간이다. 그는 딸에게 전화를 여러번 시도하고 결국 통화한다. 약간은 어색한 대화가 오가고, 전화가 끊기기 직전,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긴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리드베이커의 최종 선택은 충격적이다. 그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아마도 미사일 하나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전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 두려움이 그를 잠식했고,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건 매우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과연 어느 누가 미사일이 떨어진 이후를 견뎌낼 수 있을까. 그래서 국방장관의 선택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번째 감정] 대통령의 두려움
영화 속 대통령은 흑인이다. 그는 젠틀하고, 이성적이며,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 보고를 받는 순간, 그의 얼굴엔 완벽한 인간의 혼란이 스친다. 지도자로서의 이성, 인간으로서의 공포가 동시에 끓어오르는 지점이 보인다. 그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이 좋은 선택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이 전쟁은 그런 계산으로 막을 수 없다.
그는 계속 괴로운 고민을 이어간다. '정말 이런 선택밖에 없나' 그 생각이 어떤 정치적 고민보다 더 무겁다. 스크린에선 그가 손에 쥔 커피잔이 흔들린다. 그 미세한 떨림이 인간의 본능을 대변한다. 세계의 운명을 짊어진 자도, 결국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 대통령의 두려움은 그가 가진 권력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그는 모든 버튼을 누를 수 있지만, 어떤 버튼도 눌러서는 안 된다. 그 역설이 그를 갉아먹는다.
영화 후반부, 그는 결단을 망설인다. 여러 참모들이 러시아르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에의 동향과 의견을 받았지만, 어떤 국가에서도 확답을 받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결국 결단을 해야한다. 그 결단을 하는 대통령의 눈이 흔들린다.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아무 선택도 하지 않으면, 어쩌면 세상은 더 큰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을 맞이할지 모른다. 그는 결국 선택했고, 그가 가진 카드 중에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지는 없었다.
두려움으로 세운 집, 그 집의 균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제목처럼, 이미 불붙은 세계의 은유다.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전쟁을 보여주는 대신, 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내면을 정밀하게 촬영한다는 점이다. 전투 장면은 없다. 대신 무수한 모니터, 조용한 긴장, 숨조차 들리지 않는 회의실의 공기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정적 속에서 터지는 감정의 파편은 어떤 폭발보다 강렬하다.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는 냉철한 리얼리즘의 대가답게, 감정의 과열 대신 침묵을 택한다. 그녀의 카메라는 흔들리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표정, 손끝, 숨결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불안의 리듬이 흐른다. 관객은 스스로를 감시당하는 듯한 긴장 속에서 ‘현실감’의 공포를 체험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탁월하다. 올리비아 워커 역의 레베카 퍼거슨은 차가움과 인간미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단 한 번의 눈물로 모든 서사를 압축한다. 리드베이커 장관 역의 자레드 해리스는 흔들림 없는 카리스마 속에 노년의 고독을 담았다. 그리고 대통령 역의 이드리스 엘바는 이성의 얼굴을 한 두려움 그 자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전쟁의 윤리를 묻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버튼 앞에 서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그 질문은 영화를 본 뒤에도 오래 남는다. 전쟁의 시작은 언제나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끝 역시, 인간의 두려움이 멈추는 곳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그렇게 말한다. 두려움은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인간이라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