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빗구미입니다.
상은 언제나 구조 속에서 움직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 안에 있습니다. 이름, 가족, 사회, 계급, 그리고 시간. 그 안에서 방향을 찾으려 애쓰고, 때로는 탈출을 꿈꾸지만, 이상하게도 끝은 늘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하루는 반복되고,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계단은 끝없이 위아래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달라지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같은 구조를 조금씩 다른 마음으로 통과할 뿐입니다.
〈8번 출구〉에서는 사람이 끝없이 같은 지하철을 탑니다. 〈큐브〉에서는 이유 모를 방을 떠돌며 출구를 찾습니다. 〈더 플랫폼〉에서는 위와 아래로 흔들리는 계급의 사다리 속에서 먹고 살아갑니다. 세 영화는 장르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자리에 닿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구조 안에 있다.” 그 구조가 일상이든, 사회든, 혹은 인간 자신이든 말입니다.
이 글은 그 세 개의 구조를 따라 걷는 기록입니다. 반복의 공포, 무지의 미로, 질서의 잔혹함.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고, 또 어떻게 변하는가. 어쩌면 출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걸음은 계속됩니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삶, 그 안의 미세한 차이를 사랑하려는 마음.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출구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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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첫번째
-<8번 출구>, <큐브>, <더 플랫폼>
반복되는 인생을 보는것처럼 — 〈8번 출구〉
요즘은 하루가 하루를 베껴 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을 뜨면 어제와 똑같은 알람이 울리고, 창밖의 하늘은 늘 같은 색으로 빛난다. 같은 역에서 같은 사람들을 보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로 향한다. 가끔 다른 노선을 타볼까 하다가도, 몸은 이미 익숙한 방향으로 기운다. 이상하지? 변화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 있는데, 몸과 삶은 늘 같은 선로를 따라간다. 그 반복이 나를 안전하게 해주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문득 무섭다. 이대로 계속 돌고만 있다면, 언젠가 내 삶은 한 바퀴를 다 돌아 같은 지점에 멈추지 않을까 하는 생각.
〈8번 출구〉는 그 두려움을 아주 조용히 보여준다. 영화는 거대한 사건도, 소리 높인 절규도 없다. 대신 평범한 하루가 조금씩 기울고 뒤틀린다. 주인공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향하지만, 그 ‘어딘가’는 결국 다시 시작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퇴근길 같던 풍경이 점점 이상해진다. 낯익은 얼굴이 낯설어지고, 같은 풍경이 미묘하게 어긋난다. 마치 현실이 미세하게 오조준된 것처럼. 영화는 그 불일치를 통해 묻는다. 우리가 믿는 ‘일상’이라는 구조가 정말 현실일까, 아니면 단지 우리가 반복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안정의 환상일까.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참 묘하다. 어디론가 향하지만 동시에 닫혀 있고, 움직이지만 사실상 선로 위에서만 맴돈다. 〈8번 출구〉의 주인공은 바로 그 닫힌 세계의 순환 안에 갇혀 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터널 속의 어둠,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그 모든 게 하나의 거대한 루프처럼 돌아간다. 영화는 그 루프 안에서 ‘변화’라는 단어를 의심한다. 사람들은 매일 똑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오늘은 다를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다를까? 아니면 어제의 반복에 조금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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