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바꾼 건 참 뜬금없었다.
며칠 전 제주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원래 차에 아무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은 그렇게,
조용한 파도처럼 마음 깊은 곳을 먼저 흔들어놓고 나중에야 표면으로 올라온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아이와 차 지붕을 열고 달리던 순간이 있다.
바람이 아이의 머리칼을 뒤흔들고,
아이는 두 손을 허공에 뻗어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인데,
나는 그 순간을 계속 반복해 재생했다.
여행 내내 아이와 함께 보냈던 그 장면들 속에
차를 타고 이동하던 그 순간이 아주 선명하게 남았다.
나는 곧장 생각했다.
왜일까. 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내 감정보다도 더 진하게 박히는 걸까.
아이가 좋아한 그 짧은 순간이,
내 마음의 방향을 바꿀 만큼 큰 의미였을까.
어쩌면 늘 그랬던 것 같다.
내 수많은 기억 속에는 그 당시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함께 있다.
그들이 웃고, 울고, 화냈던 그 모든 모습이 같이 기억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들을 간직하게 된 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나보다 타인이 먼저 있다.
상대방이 웃으면, 나도 덩달아 좋고.
상대방이 기뻐하면, 그게 내 기호가 되어버린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나의 선택보다 다른 사람의 선택에 더 신경을 썼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 주장이나 기호보단 상대방에 맞추려했던 그런 성향.
어떨 땐 내가 싫어하는 방향의 선택을 하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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