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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되는 삶, 흔들리는 자아

by 레빗구미

레빗구미 입니다.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살아가는 이 모습이 정말 ‘제가 선택한 나’인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조금씩 조정되고 만들어진 얼굴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를 스스로 만든다고 믿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한마디, 기대, 표정, 판단이 너무 자연스럽게 내 성향의 일부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밝아 보인다는 말에 더 밝아지려 하고, 조용한 사람이라는 말에 스스로를 더 조용한 사람처럼 다루게 되는 순간들처럼요.


영화 <세계의 주인>, <트루먼 쇼>, <소셜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결의 이야기이지만, 모두 ‘타인의 시선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관찰되는 아이, 시청자의 욕망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 이미지로 존재하게 된 창업자. 이 세 인물은 아주 다른 환경에 놓여 있지만, 결국 모두 타인의 해석 아래 흔들리는 존재들입니다.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고, 누군가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살아가게 되며, 어느 순간 자신의 본래 얼굴을 잃어버릴 위험에 놓입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도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누구의 시선 속에서 살고 있는가.”


결국 이 세 영화가 남기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지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 안에서 어떤 ‘나’를 선택할지는 여전히 제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흔들리더라도 제가 원하는 쪽으로, 조금 늦더라도 제 마음이 머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조용한 요구처럼 들립니다. 정체성은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주는 명찰이 아니라, 오래 시간을 들여 스스로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세 작품은 그렇게 말없이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무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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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다섯번째

-<세계의 주인>, <트루먼 쇼>, <소셜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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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성향의 자리 — <세계의 주인>


사람을 바라본다는 건 늘 애매한 감각 위를 걷는 일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 단서 몇 개로 그 사람의 성향을 추측하고, 마음속에서 조용히 형태를 만들어 붙인다. 밝아 보이면 활발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조용하면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동정하거나 부러워하는 마음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인다. 그렇게 많은 시선이 같은 방향으로 모이면, 어느새 그 사람은 실제의 자신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향에 더 가깝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조차 검증할 길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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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FJ - 영화에 대한 리뷰보다는 영화안에 담긴 감정들에 대해 씁니다. 영화의 긍정적인 부분을 전달하려 합니다. 세계최초 영화 감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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