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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키친anime cook Jun 29. 2019

와인 컨트리

그냥 수다나 떠는 영화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찾는 편인데 이날 내 레이더에 걸린 영화는 바로 넷플릭스 영화 <와인 컨트리>였다. 이 영화는 여섯 명의 절친들이 친구 중 한 명인 리베카의 50번째 생일을 맞아 와인의 천국 나파밸리로 여행을 떠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코미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킬링 타임용 영화라고 하거나 여자들이 수다나 떠는 영화라고 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무려 세 번이나 보고 말았고 장담하는데 이 영화는 한번 보는 것보다 여러 번 봤을 때가 훨씬 재미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언제나 영화를 보는 이에게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와인 컨트리의 첫 장면도 그러한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행의 장소와 일정을 모두 계획한 '애비'가 나머지 친구들에게 여행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자신이 계획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 첫 장면으로 나오는데 얼핏 보면 의견을 나누는 장면 같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애비는 친구들의 의견을 묻기만 하고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애비의 모습과 함께 리베카, 캐서린, 나오미, 밸, 제니의 특성과 성향이 드러나는 대화의 내용을 통해 이 장면을 본 모든 사람들은 알 수 있게 된다.


'아... 이 여행 순탄치만은 않겠구나."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친구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자신이 계획한 빡빡한 일정을 무리하게 이어나가는 애비와 50번째 생일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며 평범하고 조용히 생일을 보내고 싶어 하는 리베카, 사업으로 인해 늘 바빴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캐서린, 바쁜 캐서린이 못마땅한 나오미, 좋은게 좋은거지 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밸,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제니까지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것이 없어 보였다. 물론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힘들게 모였으니 싸우지 말자며 여행의 초반엔 잘 지나가는 듯 보였지만 그건 갈등을 해결하기위한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Can I Just say Something?"


특히 "한마디만 해도 돼?"라는 대사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이 대사가 어떤 상황에서 많이 나오는지 또 이 말을 한 뒤 어떤 대화들이 이어지는지 살펴보면서 영화를 보면 아주 재미있다. 이 대사 이외에도 여섯 친구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사들이 참 많이 나오는데 그런 의미 있는 대사들을 많이 발견할수록 감동이 더해진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친구들의 사소한 행동 가운데서도 뭉클한 장면들이 휙휙 지나가는데 이런 장면들은 정말 눈 크게 뜨고 봐야 알아차릴 수 있다.


취중진담


영화 초반에 집주인 '태미'가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얘기가 나오든 마음에 담아 두었던 얘기일 테고 술 덕분에 꺼낼 수 있었던 거죠."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취한 모습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듯이 취한 뒤 하는 말이나 행동은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소에 생각하는 편이라 태미의 말이 놀랍지 않았다. 다행히 영화 속 그녀들은 술에 취하기 전 자신을 통제할 때 보다 술에 취했을 때가 훨씬 자연스럽고 솔직해 보였다. 그녀들의 대화의 내용에서 서로를 향한 진심이 느껴져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으니 영화를 볼 때 참고하기 바란다.


 "저 친구 이름은 대체 뭐야?"


여섯 친구가 주인공인 영화다. 주인공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서 당황했던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인 것 같다. 유독 '제인'의 이름만 계속 나오지 않다가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쯤 불려진다. 워낙 존재감 없는 인물로 나오기 때문에 제인의 성향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아무 이유 없이 나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제니가 각성되는 언덕 씬 이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돼서 이름이 불려지는 게 참 재미있었다.

이외에도 음악 듣는 즐거움을 주는 영화였는데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80년대 음악부터 최근 발표된 음악까지 좋은 곡들이 많이 나온다. 난 Toadies의 Plane Crash이 특히 좋았다. 평생 가볼 수 있을까 싶은 나파밸리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도 있었다.




<와인 컨트리>는 코미디 영화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더 친밀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나도 종종 영화 속의 친구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진 않을까, 친구이기에 할 수 있는 조언들을 해주었을 때 관계가 깨지거나 서먹해지진 않을까 미리 염려하여 감정이나 사정을 숨기고 갈등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회피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나에게 관계에 있어서 용기를 내보라고 좀 더 과감해지라고 이야기해준다. 진실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 있는 관계라면 나의 다름도 너의 다름도 어우러질 수 있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더 깊은 사랑과 우정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영화는 나를 설득시켰다. 그리고 알코올 쓰레기인 내가 직접 와인에 대해 공부하게 만든 영화였다. 뭐 공부를 했다고 내가 술을 잘 마시게 된 건 아니였지만.

https://youtu.be/bEk8KPLuL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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