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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키친anime cook Sep 23. 2019

진심으로 엮어가는 관계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리뷰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온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집안의 풍경들을 보여주며 주인공 토모가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빼곡히 널려있는 마른빨래들과, 곧 넘쳐버릴 것 같은 쓰레기통, 쌓여 있는 설거지, 그 가운에 우두커니 앉아 삼각김밥을 먹는 한 소녀.


밤이 늦어서야 토모의 엄마는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고 하루 종일 엄마만을 기다렸을 딸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지 집에 오는지 관심도 없어 보이는 토모의 엄마. 자신의 피곤함만을 돌보는 엄마를 뒤로하고 학교에 다녀오니 그리운 엄마는 집에 없고 식탁 위엔 약간의 돈과 쪽지 한 장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또 그렇게 엄마가 떠나버렸다.

영화 <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이런 일이 놀랍지 않다는 듯 토모는 가방을 챙겨 그 길로 외삼촌 마키오를 찾아간다. 이런 기가 막힌 상황을 얼마나 자주 겪었으면 저리도 덤덤할까.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


외삼촌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외삼촌은 자신과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애인 린코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낸다.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라는 설명. 아니, 특이하다는 말도 틀렸다고 말하는 마키오.


린코와 토모는 그렇게 외삼촌의 집에서 만나게 되고 자신에게 경계심을 보이는 토모를 따뜻한 마음과 온기가 깃든 식탁으로 환영해 주는 린코는 무척 친절하고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영화 <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린코가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토모는 살짝살짝 린코를 훔쳐본다. 그런 토모에게 린코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설명해 주고 그렇게 그들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결국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하며 함께 하는 사이가 된다. 토모는 린코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서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린코 대신 화를 내기도 하고 울게 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MTF 트랜스젠더로 편견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며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을 뜨개질로 풀어내는 린코, 남들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사랑해 준 마키오, 성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는 린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싸워준 린코의 엄마 후미코, 한부모 가정에서 태어나 늘 엄마의 온기를 그리워하지만 혹시나 엄마에게 버림받을까 봐 삼각김밥이 싫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토모,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로 버려짐을 당해 남편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에 사무쳐 니트를 짜던 마키오와 히로미의 엄마 사유리, 그런 엄마 아래서 결핍을 느끼며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 자라 버린 토모의 엄마 히로미,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엄마 아래서 괴로워하는 토모의 친구 카이.

영화 <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영화 속 인물들의 사연들을 다 알고 나면 그 가운데 악역은 없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된다. 그냥 각자 상처가 있을 뿐. 그리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또 다른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린코가 토모를 사랑해주고 토모 역시 그 사랑을 받고 린코와 함께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각 개인이 겪고 있는 사사로운 인생의 고민과 문제들이 마치 뜨개질을 할 때 엮이는 실타래처럼 서로 얽혀 있어서 어느 것 하나만 풀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영화는 우리에게 이런 고민들이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가야 할 것들이라는 메시지도 던져 준다.


슬로우 무비, 힐링 영화의 대가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새롭게 시도한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실제 일본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감독의 전작들은 사회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대안을 찾아가는 방식을 취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사회의 소수자들이 가진 고충을 돌아보는 방식을 취했다.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나오코 감독은 앞으로 만들 작품의 방향은 이런 것들이 될 것이며 인간관계를 진하게 그려내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말 기대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끝날 때쯤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린코라는 마음 따뜻한 한 사람만 기억에 남았었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정말 잘 풀어낸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고마운 작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2017년 작품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https://youtu.be/ysiKRaiPk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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