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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맨의 장르영화 Feb 07. 2017

B급 영화로 황제가 된 로저 코먼[2부]

싸구려 영화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코먼은 히피의 영웅이 되었다. 70년대 코먼은 <본 리히토벤과 브라운>을 만들면서 다시 전기를 맞았다.

연출 작업에 지친 코먼은 뉴 월드 영화사를 설립했고, 이후 감독보다는 제작자로 주력했다. 그리고 잉마르 베르히만, 프랑소와 트뤼포, 페테리코 펠리니 감독 등의 유럽 예술영화를 배급하는 일로도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김영진 교수의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중에서.




자칫 몰락할 수 있었던 마이너 영화계를 되살린 로저 코먼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획력 그리고 제작 테크닉으로 '거기서 거기'인 공장형 영화들을 양산해내며 끊임없이 수익을 올렸지만 그가 손댄 영화들이 모두 조악한 싸구려는 아니었다.

60년대 초반 프랑스 누벨바그와 같은 예술 영화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로저 코먼 또한 이러한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들의 영향을 받아 양산형 영화들을 만드는 사이에도 자신의 예술적 감각이 깃든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을 베이스로 한 <어셔가의 몰락 House Of Usher, 1960>을 시작으로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들을 만들면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와중에도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들을 꾸준히 영화화 하기 시작했다.

<어셔가의 몰락> 이후 만들어진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 원작 영화 7편은 아래와 같다.


<어셔가의 몰락 House Of Usher, 1960>


<저승과 진자 The Pit and the Pendulum, 1961>

<때 이른 매장 The Premature Burial, 1962>

<테일즈 오브 테러 Tales of Terror, 1962>

<갈가마귀 The Raven, 1963>

<귀신 들린 궁전 The Haunted Palace, 1963>

<적사병 가면 The Masque of the Red Death, 1964>

<리지아의 무덤 The Tomb of Ligeia, 1965>


이 작품들은 작품성은 물론 수익적인 면에서도 나쁘지 않았으며 66년 그의 영화 인생에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코먼의 영화에 본격적으로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의 방황과 또 다른 개척을 그린 <와일드 엔젤스 The Wild Angels, 1966>는 당시 메이저 영화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폭력과 광기를 보여줬으며 현실과의 타협을 원하지 않는 사회 미적응자들(부적응이 아닌)의 '제 갈길'을 매혹적으로 표현했다.

바이크를 타는 히피들의 현실 파괴와 새로운 미래의 개척을 카메라에 담은 <와일드 엔젤스>는 한편으로 관객은 물론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이지 라이더 Easy Rider, 1969>의 숏컷과 같았다. 

항상 실험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었던 코먼은 그의 영화에 신인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새로운 연기, 새로운 연출을 지향했고 <이지 라이더> 또한 당시 무명이었던 데니스 호퍼에게 메가폰을 잡을 기회가 주어졌다. 정서와 사회와의 비타협을 추구했던 코먼의 세계를 그려낸 듯한 <이지 라이더>는 <와일드 엔젤스>를 주연했던 피터 폰다가 그대로 출연했고 신예 데니스 호퍼는 연출은 물론 주연도 맡았다(이미 10여 년간 같이 해온 잭 니콜슨도 출연했다.).


<이지 라이더 Easy Rider, 1969>


<이지 라이더>는 제작비 대비 무려 380여 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장발의 히피들과 청년 세대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자유국가라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그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초적인 속박에서 탈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의 이면을 거친 편집과 화면으로 보여줬다. 

더불어 <와일드 엔젤스>는 코먼이 자유분방하게 아웃사이더의 기질로 만들었던 LSD(향정신성 의약품) 영화가 시작되는 것에도 충분히 영향을 미쳤지만 아이러니하게 코먼 자신도 마약에 빠져들고 말았다. 


70년대 초반 마약에서 벗어난 코먼은 연출보다는 제작과 배급에 전념했는데 그의 영화사업은 더욱 번창하며 '뉴월드 픽쳐스'라는 영화사를 만들기까지 이른다. 그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싸구려 영화들은 지속적으로 만들어졌고 60년대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한 유럽 예술영화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고 배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상업적 흥미를 유도해야만 흥행에 이른다는 공식에서 탈피해 수많은 예술영화를 수입, 배급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수익을 올렸다는 것은 영화적인 미(美)와 깊이를 추구하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라는 코먼의 선견지명이 작용한 것이 원인이라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코먼 영화의 예술성은 여기까지였다.

70년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이 앞다투어 유럽 예술영화들을 배급하자 흥미를 잃은 코먼은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이제 70년대 스타일의 B급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로저 코먼의 전설이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3부에서는 로저 코먼의 70년대 이후 행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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