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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Jan 03. 2019

공동체의 빛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더 헌트>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이라서 전달 가능한 이야기와 메시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첫 단독 연출작인 <셀레브레이션> (1998)으로 처음으로 단독 연출을 한 토마스 빈터베르그는  <더 헌트> (2012)와 <사랑의 시대> (2016)를 통해 어떤 감독도 잘 보여주지 않는 공동체의 어둠을 보여준다. 어둠을 보여준 다음 빛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 역시 그는 관객에게 갖지 말라고 간접적으로 말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유년 시절과 정말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이상적인 대안의 씁쓸함을 다루는 <사랑의 시대>를 떠올려 본다면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거주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원제 ‘The Commune’에서 알 수 있다. 코뮌은 프랑스 중세의 주민자치제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대안 형태로 여러 번 시도되었다. 감독은 유년 시절 이런 거주 형태를 경험했으며, 이 거주 형태가 이상적으로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경험했다.



<더 헌트> 역시 공동체의 어둠을 다루는 영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동체의 폭력성을 ‘마녀사냥’과 결합하여 보여주는 영화다. 게다가 관찰적인 판단과 감정적인 판단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를 구체적으로 다루기 앞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과 관련된 도그마 95 선언을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도그마 95 선언은 간단히 말하자면 1995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포함한 네 명의 젊은 덴마크 영화감독이 지나치게 테크닉에 의존하는 기존 영화 제작 방식과 다른 10가지 항목을 선언서로 담아 공표한 것이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 역시 이 선언에 동참을 한 감독이었다. 도그마 95를 선언한 감독들은 어떻게 보면 누벨바그 사조를 뒤를 잇는 것처럼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완전히 맞는 말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의 생각은 누벨바그의 목표 혹은 목적에 동의는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방법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그마 헌장의 10 계명 (출처: 유럽 영화 운동, 2015.05.20, 커뮤니케이션북스)
① 촬영은 반드시 로케이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② 음향은 반드시 이미지 촬영 현장에서 취해야 한다. 이미지 촬영 역시 음향 녹음 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촬영 시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타의 음악을 첨가하는 것은 금지한다. 효과음을 배제한다.
③ 반드시 핸드헬드(삼각 보조대를 사용하지 않고 촬영기사가 직접 들고 찍는 것)로 촬영해야 한다. 상황과 인물에 맞춰서 촬영해야 한다.
④ 필름은 반드시 컬러여야 하고 일체의 인공조명은 허용하지 않는다.
⑤ 특수효과와 필름 필터 사용을 금한다.
⑥ 영화 속에서 오락을 위한 행위, 즉 살인·폭력 등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⑦ 영화의 시간 및 공간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은 지금 여기다).
⑧ 장르영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⑨ 영화의 형식은 반드시 표준 35mm여야 한다.
⑩ 감독 이름을 타이틀에 올리지 않는다. 감독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할 수 없다. 



물론 도그마 95 선언은 실패한 선언이며, 이 선언에 참여했던 감독들 역시 더 이상 이를 따르지 않는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계명을 고려한다면 <더 헌트>는 도그마 95 선언을 따르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 수 있다. 그래도 아예 벗어나지는 않아 보인다. 인위적인 조명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어둠을 다룰 때는 철저히 어둠만 다루고, 어둠 속 빛 역시 라이터 불 혹은 촛불로만 활용한다. 게다가, 주인공 ‘루카스’를 연기하는 매즈 미켈슨이 공동체의 폭력에 상처를 입고, 답답해하고, 무언가에 고뇌하는 표정에 잠길 때 역시 카메라 렌즈의 변화로만 표현하거나 얼굴에 어둠에 파묻혀 있든, 빛에 걸쳐 있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작위적인 제작이 상대적으로 덜했기 때문에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공동체의 어두운 면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더 헌트>는 감독의 경험에 국한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SNS가 발달하는 현대사회와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마치 본 것처럼 말하고, 소문을 진실로 착각하는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믿음 역시 사실처럼 여긴다. 자신의 믿음이 몇 번 증명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몇 가지 사례에 의해 반박을 당하며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존재와 달리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에도 이를 애써 수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거짓말했을 때, “어린이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라고 확고히 말하는 어른은 당연히 있다. 만약 이런 판단에 맞설 관찰적 판단을 내리는 존재가 있었더라면 루카스가 당한 마녀사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했다면,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았을 수도 있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결백함이 밝혀지고 1년이 지난 뒤 루카스는 공동체 무리와 어울리지만, 공동체에 대한 고찰이 담긴 엔딩과 매즈 미켈슨의 표정으로 마무리 짓는다. 완벽한 화해는 없다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지만,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번 공동체의 멸시를 받은 인물은 아무리 결백해도 결국 언젠가 영원히 뿌리 뽑힌 채 사라질 수 있다는 궁극적인 어두운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도입부에서 언급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세 편의 영화를 관람한다면 공동체의 어두운 면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상과 현실 간의 격차를 고찰할 필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하는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event/view?id=502

* 관람 인증

1. 2019.01.01 (아트나인 월례기획전 GE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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