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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Feb 05. 2019

한(恨), 신념 그리고 삶 <더 와이프>

억눌린 삶이 만들어낸 신념, 그 신념이 만들어낸 킹 메이커로서의 삶


작가 메그 울리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비욘 룬게 감독의 <더 와이프> (2017)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킹메이커로서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을 다룬다. <더 와이프>는 한 여성의 삶을 단순하게 과거부터 현재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플래시백(flashback) 장면을 중간중간 삽입함으로써 한(恨), 신념 그리고 삶의 관계성을 그려낸다. 억눌린 삶에서 파생된 신념이 만들어낸 킹 메이커로서의 삶이 드러나고, 이와 동시에 점점 명확해지는 감정은 공기를 무겁게 한다. 


  

'조안(글렌 클로즈)'은 남편 '조셉(조나단 프라이스)'의 성공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여성이다. 남편이 드디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면서 '조안'은 기뻐한다. 그런데,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작은 파티에서 '조안'이 작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저서 '돈키호테 성찰(Meditations on Quixote)'을 인용한 남편의 소감을 듣는 순간 지난 세월이 뇌리를 스치면서 그녀의 얼굴은 복잡한 심경으로 가득 차게 된다. 심지어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른 비행기 안에서 전기 작가 '나다니엘(크리스찬 슬레이터)'을 만나면서 그동안 억눌러져 있던 그녀의 감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조셉'의 과거 행적과 비밀을 알고 있는 '나다니엘'은 스톡홀름에 도착해 끈질기게 '조안'과 그녀의 아들 '데이빗(맥스 아이언스)'과 접촉하려고 시도한다. 



게다가 갈수록 태도가 변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조안'의 내면은 과거로 회귀한다. 그녀의 과거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평가가 절하되는 상처, 남편의 불륜, 창작자로서 저지르면 안 되는 일을 합리화하는 남편을 강제로 동의해야만 하던 고통, 남편의 멸시 등으로 얼룩져 있었다. 특히, 플래시백 장면과 현재 장면은 하나의 시퀀스를 형성함으로써 고통과 상처를 문학으로 승화하며 참아야만 했던 그녀의 삶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더 나아가, 고통을 인내하면서 남편의 삶의 부분집합이 되기로 한 결심이자 신념을 고독하게 표현한다. 

 


<더 와이프>가 감정이 고조에 달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남편이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때나 이후 파티에서 소감을 말할 때 영화는 그를 바라보는 '조안'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근데, 그녀를 아웃 포커스로 촬영한 장면과 그녀에게 초점을 맞춘 장면을 활용하고 시퀀스를 형성함으로써 꿈틀거리고 있던 그녀의 내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영화 막바지에서도 또한 심리적 상태를 극적으로 드러내는데, 장면 편집 대신 오로지 배우 글렌 클로즈의 연기로만 이를 해낸다. 비록 자기 주변 사람이 남편과 자신의 비밀에 근접해지고 있음에도, 본인의 신념으로 만들어낸 성공과 명예, 그리고 자신의 노고로 쌓아 올린 크고 작은 세상이 부정당하고 사라지는 일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비밀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여성으로서 억눌린 삶을 살아야만 했던 과거에서 시작해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은 신념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온 한 여인의 삶을 다룬 <더 와이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킹 메이커로서의 삶이 더럽혀지고 소거되는 일을 저지하기 위한 선택은 잊지 못할 묵직함을 선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하는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event/view?id=568


* 관람 인증

1. 2019.02.04 (CGV 2019아카데미기획전 프리미어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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