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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Feb 10. 2019

끝이 안 보이는 길 <험악한 꿈>

행복을 꿈꿀수록 고단해지는 운명에 대하여 


제69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나단 몰랜도 감독의 <험악한 꿈> (2016)은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 (2017)를 닮은 작품이다. <러브리스>는 사랑을 떠들어댈수록 역설적으로 사랑을 상실해 가는 현대 사회를 고발한다면, <험악한 꿈>은 행복을 꿈꿀수록 끝이 안 보이는 고단해지는 운명을 이야기한다. 다만 <러브리스>는 개인적인 문제를 국가 문제로 확장하는 반면, <험악한 꿈>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잣대로 인해 끝이 안 보이는 길에 내몰리는 소녀와 소년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광활한 자연 풍경과 공허하면서 씁쓸한 사운드는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며 감성을 자극한다. 



단맛을 알자마자 쓴맛이 다가온다


어느 날 주인공 '조나스(조쉬 위긴스)'는 자기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소녀 '케이시(소피 넬리스)'를 만났고, 두 사람은 호감을 느끼며 얼마 안 지나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행복한 날을 꿈꿀수록 운명이 고단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조나스'는 케이시의 아버지가 이웃의 눈을 피해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케이시'를 구하기 위해 힘든 여정을 떠나기로 한다. 집을 나선 후 이들의 상황은 험악해진다. 다만, 의식주와 관련된 문제보다 상황이나 인물에 따라 다르게 가해지는 세상의 잣대 때문이다. '조나스'와 '케이시'가 어른들의 잘못된 일을 고발하면 어른들은 본인에게 유리한 법적인 혹은 행정적인 근거를 대며 등을 돌린다. 반면, 두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어른들은 자본주의 논리를 대며 오히려 벼랑 끝으로 밀어낸다. 



제목에 끝까지 충실할 수 있었던 이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목에 충실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와 인물이 처한 상황도 있지만, 무엇보다 드넓은 자연 풍경과 씁쓸한 사운드가 이뤄낸 분위기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조나스'와 '케이시'는 광활한 평야에서 단풍잎이 우거진 숲으로, 잎이 우거진 숲에서 나뭇잎이 다 떨어져 황량한 숲으로 이동한다. 단풍잎이 우거진 숲에 머무를 때 낮에는 알록달록한 색채 덕분에 아름답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사실 숲이 막대하게 넓은 나머지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 줄 몰라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진다. 황량한 숲으로 이동했을 경우 낮에는 우중충한 하늘 때문에, 밤에는 어둠 때문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장소 때문에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회색빛 하늘을 앙각(혹은 로우 앵글, low angle)으로 쳐다봄으로써 위압감이 형성될 뿐만 아니라, 동선을 때때로 익스트림 롱 쇼트(extreme long shot)로 담아냄으로써 공허함과 불안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사운드는 주로 차가운 바람소리가 활용되는데, 익스트림 롱 쇼트에 이용할 때 적막함을 극대화하며 험하고 나쁜 분위기가 넓은 여백을 메운다. 물론 '조나스'와 '케이시'가 처음으로 만날 때도 이와 비슷한 사운드가 흘러나오는데, 이는 처음에 달콤 쌉싸름한 공기를 대변하지만, 머지않아 끝이 안 보일 정도의 막막함만을 나타낸다. 



소년은 소녀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풋풋한 손으로 총을 만지게 되었고, 소녀는 소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비겁한 어른과 달리 두 사람은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엔딩은 해피엔딩처럼 보이지 않는다. 온갖 위기에도 두 사람은 계속 어디론가 향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더 이상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마주 보면서 짓는 옅은 미소에는 이전과 달리 달곰함이 증발했고 오직 씁쓸함만 남아있어 보인다. 따라서, 길을 따라 이동하는 두 사람의 여정은 아마 끝이 없지 아닐까 싶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하는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event/view?id=574


* 관람 인증

1. 2019.02.07 (판씨네마 시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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