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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Mar 17. 2019

각성의 목소리가 형상화된 <우상>

우상을 향한 세 가지 접근과 반투명하고 파괴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낸 각성


영화 <한공주> (2013)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수진 감독은 5년 만에 영화 <우상> (2018)으로 돌아왔으며, 이 영화로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을 받았다. 우선, <우상>은 앞으로도 이수진 감독의 영화를 기대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안긴다. 왜냐하면 전작과 달리 큰 규모의 투자액이 들어갔음에도 본인이 전개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뚝심 있게 밀고 갔기 때문이다. 즉, 이수진 감독은 작가주의 성향을 전작에 이어 보여줬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작보다 더 짙은 작가주의 성향을 보여줬다. <우상>은 정치 드라마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특별시민> (2016), <보통사람> (2017), <침묵> (2017)과 같은 전형적인 영화가 아니다. 클리셰와 아주 먼 거리를 두고, 맥거핀(macguffin)에 가까운 장치로 전형성과 관습에 익숙한 관객의 시선을 무너뜨릴뿐더러 각종 상징물과 은유적인 설정으로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우상>은 ‘구명회(한석규),’ ‘유중식(설경구),’ 그리고 ‘최련화(천우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세 사람은 우상에 대해 각기 다른 위치에 서 있다. ‘구명회’는 유년 시절로 인한 결핍과 어른이 되면서 생긴 희망이 뒤섞인 인물로 본인이 설정한 우상을 좇는 인물이다. ‘유중식’은 계속해서 고달프고 삶을 사는 인물로, 적어도 실패한 삶이 아니었음을 믿기 위해 자신이 설정한 우상을 좇지만, 결국 자신의 집착이자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인물이다. ‘최련화’는 두 사람과 다르게 우상을 갖고 싶지만, 그러기는커녕 혼자서 버텨내야 하는 거친 삶에 끝까지 치이는 인물이다. 영화는 어느 날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우상에 얽힌 세 가지 접근과 선택을 그려낸다. 



<우상>이 정말 어려운 영화인 이유는 세 가지 접근과 선택을 보여줄 때 연속성을 과감하게 무시할 뿐만 아니라 청각과 충돌하는 시각적인 이미지, 그리고 무언가에 반사되거나 굴절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생존을 위해 내린 선택이 각기 다르고, 선택에 따른 심리 및 성격 변화가 모두 다르므로 장면 간의 연속성을 따지며 연결을 했다면 오히려 억지스러움이 묻어났을 것이다. 무언가에 반사되거나 굴절된 이미지의 예로는 거울 및 TV 화면에 굴절되거나 반사된 이미지, 고인 물에 비치는 잔상과 흔들리는 이미지, 증기로 인해 뿌옇게 된 거울에 비친 이미지, 중간에 거울이나 유리를 삽입함으로써 완성된 반(反) 직시적인 이미지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이미지가 활용될 때마다 중심축을 담당하는 인물의 시선이 매번 달라진다. 그 결과, 영화는 우상을 위한 선택에 따른 결과가 아닌 선택에 얽힌 신념이 전달하고자 하는 경고를 이끌어낸다. 



<우상>은 아마도 신념이 일정 수준을 넘어 집착으로 변질된다면 본인이 좇고자 하는 우상에 도달하기는커녕 자신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즉, 신념에 집착하는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깨닫는다면, ‘유중식’처럼 결국 무언가를 파괴하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약 ‘구명회’처럼 변질된 신념을 끝까지 밀고 간다면, 후반부 연설처럼 인간이 아닌 짐승의 목소리를 내는, 즉 타인으로부터 박수를 받을지언정 자신의 얼굴을 잃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상>은 각성의 목소리가 형상화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한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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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03.12 (라이브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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