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문보 Aug 08. 2019

과연 극복할 수 있는 심연인가?
<영원한 족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장애인을 대하는 영화업계와 우리의 태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블루 섹션에 초청받은 아론 스킴버그 감독의 영화 <영원한 족쇄> (2018)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작품이다. 현실과 상상의 영역을 오가는 형식을 취하는 영화는 내러티브를 따라다니는데 쉽지 않지만, 이와 같은 형식을 채택하는 영화가 점차 더 많이 제작되면서 이제는 드물지 않다. 근데, 여전히 대부분 관객은 이런 영화를 접하면 그 순간부터 어느 부분이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구분하려고 한다. 그러나 비간 감독의 영화 <지구 최후의 밤> (2018)처럼 그저 형식만 이용했을 뿐인데 어느 부분이 현실의 영역을 논하고 상상의 영역을 다루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인지적 혼란에 빠지는 작품이 존재한다. <영원한 족쇄>는 이에 해당한다.  <영원한 족쇄>는 겉으로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형식을 선택했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관객에게 특정 숏이나 시퀀스를 제공한 뒤 무언가를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위함과 연관이 있다. 



아론 스킴버그 감독의 <영원한 족쇄>는 해리 프레이저 감독이 1952년에 제작한 영화 제목과 동일하며, 이 사실은 아론 스킴버그 감독의 연출 목표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해리 프레이저 감독의 <영원한 족쇄> (1952)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가 있는 샴쌍둥이 자매를 법정에 세우는데, 만약 둘 중 한 명은 범행과 무관하다면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를 비장애인 관점에서 결정하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영화 제목을 그대로 빌려오면서 샴쌍둥이를 포함해 신체적 장애가 있는 다양한 캐릭터를 극 중에 배치한다. 다만,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본인의 연출 의도를 살려 자유 연상 기법과 비슷한 형식을 활용해 해리 프레이저 감독의 동명 영화를 약간 변주한다.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해리 프레이저 감독의 영화가 던진 질문 대신에 과거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 영화 업계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실제로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는지를 물어본다. 또한, 질문에 관해 고민하는 주체의 경우 해리 프레이저 감독은 극 중 비장애인으로 설정한 반면,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화면 밖에 있는 관객을 택했다. 



영화는 배우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는 트랙 인 시점 숏으로 시작한다. 대부분 관객은 ‘로젠탈’을 포함한 신체적 장애를 가진 배우가 등장해 촬영 장소인 병원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볼 테다. 하지만,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영화 첫 장면부터 관객을 토론장으로 초대한다. 트랙 인으로 들어오는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 불명확한 상황에서 화장하며 겉모습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배우 ‘마벨’을 비춤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추후 배우와 제작진들이 장애인 배우를 맞이하는 태도가 빈곤 및 감정 포르노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오프닝 시퀀스 이후 수많은 숏들이 나오는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숏과 숏 사이에서 외쳐지는 ‘컷!’이라는 소리다. 



화면 밖에서 ‘컷’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비장애인 배우와 장애인 배우가 번갈아가면서 각 숏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독립적인 두 이야기를 꾸준히 만든다. 독립적인 두 이야기는 하나씩 하나씩 차례를 바꾸면서 촘촘한 겹을 이루며 상호 작용을 일으킨다. 이 상호작용은 크게 두 가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첫 번째는 작업을 위해 형식적으로 비장애인 배우와 장애인 배우 간의 대화를 시키는 제작진의 자세는 제작진의 도덕의식이 결여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과연 이런 태도에 저항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배우에게는 잘못이 없는지 묻는다. 두 번째는 어딘가로 수렴하지 않고 발산하는 상호작용을 보여줌으로써 시간이 흘러도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괴물로 취급하며 영화 <미녀와 야수>처럼 괴물과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여성을 소재로 한 편협적인 영화와 작별할 수 있겠냐고 질의한다.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본인이 영화를 만든 목적을 잊지 않는다. 엔딩 시퀀스는 오프닝 시퀀스와 반대로 트랙 아웃으로 카메라가 빠져나오면서 담아낸 빈 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빈 공간과 관객 사이의 간격은 극복해야 할 심연을 상징한다. 만약 반복해서 제시된 물음에 응답하지 않고 장애인을 향한 잘못된 시선과 태도를 고치기 위한 담론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영화 업계 내의 윤리적인 논란을 해결하는 게 더욱 힘들어질지 모를 뿐만 아니라, 장애인은 정말로 사회에서 영원히 고립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한 족쇄’라는 제목은 유의미하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941


* 관람 인증

1. 2019.06.30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매거진의 이전글 당연히 여기는 사회적 덕목에 반문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