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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Oct 23. 2019

영화를 토론의 장으로 삼다 (2): <경계선>

수많은 논쟁점을 늘어뜨려 놓고 스크린 안팎을 세차게 뒤흔드는 수작

* 영화를 토론의 장으로 삼다 <논-픽션> 브런치 링크:

https://brunch.co.kr/@moviemon94/105



제71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던 영화 <경계선> (2018)은 외관상 오드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영화 <논-픽션> (2018)처럼 수많은 논쟁점을 관객에게 제시할 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토론의 장과 같은 작품이다. <경계선>은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영화 <렛 미 인> (2008)으로 유명한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해 만들어졌지만, 알리 아바시 감독이 원작의 기본 설정에 본인의 상황과 연관 있는 사회문제, 미래사회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 등을 더하며 심오해진 작품이다. 다만, 디지털화, 오늘날 출판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제, 정보 자정 능력의 결여 문제 등을 리얼리즘 영화의 계열로 풀어낸 <논-픽션>과 달리, <경계선>은 난민 문제를 포함한 각종 사회문제에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알리 아바시 감독은 이란 태생의 영화감독으로 처음부터 영화를 전공했던 건 아니다. 감독은 유년시절을 이란에서 보낸 후 20세가 되던 해 덴마크로 유학을 떠났고, 스웨덴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전까지 전공을 여러 번 바꾸면서 유럽 내 많은 국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감독은 이란, 덴마크, 스웨덴 등 어느 국가에서든 외부자의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따라서 감독의 삶 자체가 어느 한쪽에 소속되지 못한 채 경계선 위에 표류했으며, 감독은 그런 외부자의 시선에서 정상성과 비정상성 간의 충돌 문제를 <경계선>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우선적으로 다룬다. 영화는 벌레를 만지작거리는 ‘티나(에바 멜란데르)’를 클로즈업 숏으로 담아내며 시작한다. 오프닝 시퀀스만 놓고 보면 이와 같은 ‘티나’의 행동을 분석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레(에로 말로노프)’를 만난 후 벌레를 잡아먹는 ‘티나’의 모습을 연결해서 본다면, 벌레를 만지작만지작하는 ‘티나’의 행위는 지배적인 사회규범을 의식하며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임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티나’가 자신을 염색체 결함을 가진 인간이라고 소개한다는 점은 지배문화가 설정한 정상성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외부인의 의식적인 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알리 아바시 감독은 첫 번째 문제를 심화하며 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의 난민 문제를 꺼내 든다. 북유럽 신화 속 트롤을 모티프로 삼은 ‘티나’와 ‘보레’의 종족이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묘사되었을뿐더러, 그들의 조상이 1970년대에 정신병원에 갇혀 지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난민이 단순한 타자가 아니라 인간 비슷한 존재로 취급받는 현실을 암묵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티나’가 상당히 먼 거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일 직장과 거주지를 오가는데, 이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 <더 스퀘어> (2017)처럼 난민을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취급할 뿐만 아니라 사회 변두리로 밀어내는 공동체의 모순과 폐쇄성을 스크린에 재구성한 것이다. 무엇보다 외부인의 위치에서 윤리성을 철저히 배제한 채 과거에 자기 종족이 당한 고통과 수모를 그대로 되갚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새로 정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는 ‘보레’의 행태를 보여줌으로써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하는 현대사회의 파괴적인 경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근데, <경계선>은 단순히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범죄를 고발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는 후각과 관련해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가 끝난 후 나오는 첫 번째 검문 장면에서 후각만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듯한 ‘티나’의 모습을 미디엄 숏으로 담아낸다. 하지만, 이런 추론은 두 번째 검문 장면에 의해 반박된다. 두 번째 검문 장면에서 ‘티나’는 후각만으로 스마트폰 케이스 뒤에 아동 포르노 영상물이 담긴 USB를 숨겨서 입국하려는 한 남성을 적발한다. 이를 통해 ‘티나’가 후각으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내면을 감지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지닌 윤리성 및 도덕의 감정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하여 '티나'의 능력과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드러나는 아동 포르노 제작 및 유포 관련 범죄에 관한 사실을 엮어 고려한다면, ‘티나’와 ‘보레’의 첫 만남이 사랑의 출발선이 아니라,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비윤리적이고 추악한 사회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시발점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젠더 이슈의 측면에서 <경계선>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미래사회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를 위해 알리 아바시 감독은 우선 ‘티나’와 ‘보레’의 종족에 특이한 설정을 부여한다. 두 사람이 속한 종족의 여성은 남성의 성기를 갖고 있는 반면, 남성은 여성의 성기를 갖고 있다. 성관계를 맺는 행위 자체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이므로 감독은 숲 속에서 성관계를 갖는 두 사람의 장면을 상당 시간 노출함으로써 이와 같은 가정법적인 상황이 미래사회에서 실제로 발생한다면, 인간은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성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관객에게 묻는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을 고안했다면, 이때 인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질의한다. 게다가, 밤에 숲 속에서 아기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보레’의 모습을 담아낸 시퀀스와 아이를 품은 ‘티나’가 느끼는 감정이 부성애인지 모성애인지 알 수 없는 시퀀스를 활용해 감독은 만약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아기를 낳는다면, 현재 알려진 인간에 관한 정의와 젠더 관련 이슈가 유지될 수 있겠냐고 굉장히 도발적인 자세를 취한다. 



따라서 <경계선>이 제71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서 대상을 받았을 당시 평가가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시각적인 요소만 놓고 봐도 <경계선>은 대단히 낯선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다양한 논쟁점 때문에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거로 다가온다. 특히, 알리 아바시 감독이 젠더와 관련된 민감한 이슈를 도발적으로 건드리다 보니 <경계선>은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화들 중 한 편일 테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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