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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Dec 07. 2019

현대 미국 사회의 초상,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감독의 영화 <나이브스 아웃> (2019)


라이언 존슨 감독의 영화 <나이브스 아웃> (2019)은 'knives out'의 대상, 즉 이 영화가 설정한 공격의 목표 대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뼈대가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이 85세 생일에 숨진 원인을 파헤치는 추리물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물증은 한 입으로 두 가지를 말한다는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의 대사는 <나이브스 아웃>이 겨냥하는 대상이 두 개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쉽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표층적인 내용과 심층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관람할 때 시선이 표층에 머무른다면 이 영화는 적당히 흥미로울 테지만, 시선이 표층에서 벗어나 심층에 도달한다면 이 영화의 심오함에 감명받을 테다. 



우선, 표층적인 내용을 살펴보자면, <나이브스 아웃>은 전형적인 추리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경찰과 탐정의 질문에 트롬비 가()의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다른 가족 구성원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들의 눈은 사건의 진상을 선명히 밝히는 게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가에 향해 있다. 또한, 같은 상황에 관한 상이한 플래시백을 마주 놓음으로써 이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브누아 블랑의 추궁 이후 이들의 거짓된 가정법적 시제의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 인물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아울러 영화의 핵심 인물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의 포지셔닝도 추리물의 관습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표층적인 내용이자 질문인 '과연 누가 범인인가?'에 대한 대답을 쉽게 내놓을 수 있다. 



표층적인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라이언 존슨 감독은 <나이브스 아웃>이 현재 미국과 미국인의 의식을 비판하는 영화임을 계속해서 언질을 주기 때문에 심층적인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극 중 마르타의 국적은 절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트롬비 가() 가족 구성원들도 그녀를 가족처럼 여기면서도 그녀가 에콰도르에서 왔는지, 브라질에서 왔는지, 아니면 파라과이에서 왔는지 모른다. 이는 현대 미국 사회가 이민자와 난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비약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재산 상속이 자신의 생각처럼 되지 않자 "우리는 트롬비 가족이야"라고 린다(제이미 리 커티스)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떠올려본다면 비약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린다가 이 말을 하자 나머지 트롬비 가() 가족 구성원들이 뭉치는데, 이는 미국의 폐쇄성 및 폐쇄적인 공동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이민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조니(토니 콜렛)와 지금까지 할란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준 마르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월트(마이클 섀넌)가 나중에 마르타의 약점을 갖고 협박하는 모습은 말로만 정치적인 공정함을 주장하는 미국인의 위선을 나타낸다. 



끝으로 이 영화를 계속 표층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화면 왼쪽 하단에는 트롬비 가(家) 가족 구성원들이 있고, 오른쪽 상단에는 마르타가 서 있는 엔딩 장면은 그저 평범하게 다가오겠지만, 심층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현대 미국 사회와 국민의 민낯을 'knives out'한 게 상징적인 이미지로 구현되었다는 점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을 테다. 따라서, <나이브스 아웃>은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 말고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어라"라는 장 뤽 고다르의 말을 따르는 영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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