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 영화계는 고전 문학 및 연극을 각색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작품들도 가득했다. 영화가 계속 지나치게 안정적인 틀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프랑스 영화 산업에서는 신선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찾기가 점차 힘들어졌고, 결국 1950년대 후반에 위기를 맞이했다. 이때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비평문을 기고하던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와 같은 젊은 영화 평론가들이 신인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이들은 기성 감독의 영화들을 거부하고 작가주의를 주창하였다. 누벨바그를 대표했던 감독들은 스튜디오에서 나와 야외 촬영을 하고, 독립적인 제작 방식을 택하는 등 개성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아울러 누벨바그 감독들은 알프레드 히치콕, 존 포드 등처럼 독창적인 영화 스타일과 감독 고유의 주제를 보여줬던 감독을 영화 작가라고 정의하며, 그들의 스타일을 패러디하거나 인용함으로써 본인만의 영화 언어와 문법을 개발했다. 그렇지만 누벨바그의 선구자는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그리고 장 뤽 고다르도 아닌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25세의 나이에 독립적인 두 이야기를 병치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을 연출하였다. 즉, 그녀는 「까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비평가들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부터 관습에서 벗어나는 스타일을 시도한 감독이었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으로 데뷔한 후 <오페라 무페 거리>(1958), <코코트다쥐르>(1958),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1961)을 포함해 단편영화만 5편을 만들었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두 번째 장편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찍었다. 극 중 클레오가 경험하는 시간과 실제 러닝타임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당대에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도 전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처럼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을 수 있는 핵심적인 특징은 ‘길 위를 걷는 여성’이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는 어촌 남자 루이(필립 느와레)와 헤어질 위기에 놓인 도시 여자 엘르(실비아 몽포르)가 그의 고향 마을을 하염없이 거닌다. <방랑자>(1985)에서는 모나(상드린 보네르)가 사회 시스템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길을 떠돈다. 로드 다큐멘터리 필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에서는 아녜스 바르다가 포토그래퍼 JR과 함께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라지는 얼굴들을 기억하고자 실제 건축물에 대형 사진을 붙이는 설치 예술을 시도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는 대중이 선망하는 가수 클레오가 파리 14구를 방랑한다. 얼마 전에 건강 검진을 받은 클레오는 위장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있다. 클레오는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고자 오후 5시에 타로점을 보지만 해골 카드를 뽑자마자 낙담한다. 왜냐하면 해골 이미지가 그녀에게 죽음의 공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클레오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걸까, 아니면 죽음 때문에 무언가를 잃는 걸 불안해하는 걸까. 표층적으로는 타로 점괘가 만들어낸 흉조 때문일 수도 있으나, 기실 클레오는 본인에게 중요한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클레오가 타로 점집에서 1층으로 내려간 오후 5시 5분의 장면을 상기하면, 그녀는 1층의 대형 거울을 보며 “조급해할 것 없어, 나비야. 추함이야말로 죽음을 뜻하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한 난 살아있는 거야”라고 자기 암시를 한다. 이런 클레오의 모습을 줌 인으로 클로즈업한 숏은 미(美)의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불안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클레오는 비서 앙젤(도미느크 다브레이)이 기다리는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그때 두 남성은 클레오에게 수작을 부리고자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쳐다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18)에서 연희(전도연)가 미란(신현빈)을 잡아먹을 거라고 암시하는 거울 장면처럼, 두 남성의 시선과 거울에 반사된 시선은 양방향으로 클레오에 접근하며 그녀의 불안을 가중한다. 또한, 거리를 나서니 무서운 분장을 한 채 차도에서 난동을 부리는 예술 학교 학생들, 상점 진열장에 비치된 섬뜩한 가면들, 길거리에서 개구리를 집어삼키는 기인, 깨진 손거울 등 불안을 증폭시키는 여러 이미지가 클레오의 주변을 배회한다. 심지어 귀가하려고 탑승한 택시에서는 프랑스 내 농민 시위, 알제리 전쟁 소식 등을 전하는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온다. 이처럼 파리 14구를 돌아다닐수록 도리어 흉흉한 이미지만 산재(散在)하다 보니 클레오의 마음이 당연히 편치 않다.
오후 5시 25분에 귀가한 클레오는 손거울로 용모를 점검하며 애인을 기다린다. 애인은 오랜만에 만난 클레오에게 키스하지만 바로 집을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클레오는 투정을 부릴뿐더러 자기 불안을 알아주지 않는 애인에게 실망한다. 사실 그녀의 애인을 포함한 남성들에게 클레오는 작가 헨릭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속 주인공 노라처럼 소유물에 불과하다. 클레오는 ‘과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되뇌며 “예술가들은 명이 짧기에 나도 곧 죽을 거야”와 같은 비관적인 말을 내뱉는다. 애인이 떠나고 작곡가와 연주자가 뒤이어 방문한다. 클레오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앙젤의 말에 두 사람은 장난을 치지만, 눈치 없는 그들의 태도에 클레오의 우울감은 심해진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클레오의 불안이 고조되었음을 보여주고자 과감하고 형식적인 시퀀스를 삽입한다. 카메라는 클레오를 클로즈업한 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곡선을 그리며 이동해 그녀의 집을 어두운 뮤지컬 무대로 연출한다. 그리고 클레오는 아래와 같은 노래 가사를 부르는데 자기 상황과 맞물리는 가사와 감정을 자극하는 슬픈 멜로디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상품적인 가치로만 평가하는 대중과 진심으로 아끼지 않는 지인들에게 환멸감을 느낀 클레오는 더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종일 쓰고 있던 가발을 벗어 던진 다음 홀로 산책하러 나간다.
활짝 열린 문과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락거리는
나는 빈집이에요, 그대 없이는 그대 없이.
바다에 침범당한 무인도처럼 나의 모래는 휩쓸려가요.
나의 모래는 휩쓸려가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아름다움을 꽃피우지도 못한 채로 잔인한 겨울 속에 버려진
나는 빈껍데기일 뿐이에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절망에 갇힌 채로 투명한 관 속에 누워
내 몸은 썩어가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당신이 오는 그날까지 나는 가만히 기다릴 거예요.
나 홀로 창백하고 외롭게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가발을 벗고 자기가 좋아하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클레오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산책한다. 이전과 달리 클레오가 본인의 움직임을 인지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산책은 불안을 침략해 자기 자신을 구출해내는 구원적인 운동인 동시에, 타인의 잣대에 저항하며 주체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이에 덧붙여 선글라스를 벗었다는 것은 클레오가 세상을 맨눈으로 바라보고, 자기 불안에 진중히 접근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친구 도로시(도로시 브랭크)와 단편영화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을 관람한 후 클레오는 혼자 공원에 간다. 그녀는 그곳에서 앙투안느(안톤 보셀일러)를 만난다. 앙투안느는 알제리에서 복무 중이며 최근에 3주 휴가를 나왔다가 오늘 복귀해야 하는 청년이다. 처음에 클레오는 앙투안느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앙투안느가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클레오는 그와 가까워진다. 대화를 이어 나가다 보니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클레오는 검진 결과를 직접 듣는 게 두렵다고 고백한다. 앙투안느는 동행할 테니 그다음에 기차역까지 배웅해달라고 제안하고, 클레오는 이를 수락한다. 오후 6시 15분 두 사람은 트램을 타러 이동한다. 병원에 도착한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담당의를 기다린다. 뒤늦게 나타난 의사는 두 달간 화학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소견을 전한다. 앙투안느가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곁을 지켜주고 싶다고 하자, 클레오는 되레 “이제 겁나지 않아요. 나 행복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두 사람은 다시 함께 걷다가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의 엔딩을 오마주한 것처럼 시선을 부딪친다. 시선 교환은 두 사람이 산책 끝에 불안을 이겨내고 사랑의 가치를 발견했음을 뜻한다. 게다가,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맥도날드 다리의 여인들>은 클레오의 미래를 시사하는 플래시포워드나 다름없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만의 영화적 장치였다.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에서 약혼남(장 뤽 고다르)은 검은 선글라스 때문에 평범한 자동차를 검은 장례식 리무진으로 인식한 나머지 약혼녀 안나(안나 카리나)가 죽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멀쩡한 안나를 본 약혼남은 선글라스 때문에 소동이 일어났음을 깨닫는다. 이 해프닝은 불안과 희망이 한 끗 차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동시에, 클레오의 밝은 운명을 암시한 거였다. 클레오와 앙투안느의 투 숏과 함께 마무리되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오후 6시 30분부터 7시 사이의 구간을 생략한다. 관객이 상상력을 동원해 남은 30분 동안 펼쳐질 장면을 직접 완성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클레오의 물리적인 시간과 실제 러닝타임을 일치시킨 이면에는 관객이 클레오에 동화되어 스크린 안팎을 산책하며 각자의 불안을 침략하고, 본인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발견했으면 하는 바람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