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문보 Aug 01. 2018

카메라에 담긴 가족의 의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그렇게 가족이 되어간다


흔히 인용되는 가족 관련 속담 중 하나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 속담은 혈육의 정이 깊음을 일컫는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에 대해 반박한다.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만들어 주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실제 삶과 관련이 있다. 딸이 태어났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로서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진심, 고민, 그리고 질문은 이 영화의 단단한 기반이 되면서도 작위적인 연출 없이도 잔잔한 슬픔을 오래 가져가게 도와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료타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그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직장에서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이고, 집에서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자신처럼 똑똑한 아들이 자신의 곁에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받은 한 통희 전화가 료타의 성공한 삶을 흔들리기 시작한다. 료타는 6년 동안 키운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고 다른 가족의 아이와 바뀌었다는 사실에 휘청거린다. 그는 아내 미도리(오노 마치코)와 함께 생활 방식이 완전히 다른 친자의 가족을 만난다. 병원 측의 제안 하에 료타는 다른 친자의 가족을 만나면서 심각한 고민과 갈등에 빠진다. 피로 연결된 자식 ‘류세이’를 택할지 아니면 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6년 동안 키우면서 자신을 닮은 자식 ‘케이타’를 택할지 말이다. 



과연 낳은 정이 기른 정보다 더 클까?


시간이 흐르면서 료타는 낳은 정과 기른 정, 즉 ‘혈육’과 ‘함께 보낸 6년이라는 시간’ 사이에서 전자를 택한다. 료타는 친자인 류세이의 성격이 지금은 자신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살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자신을 닮을 거라고 믿는다. 그가 이러한 선택을 내린 이유는 료타의 가정사와 관련이 있다. 료타에게 가족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지식하고, 엄격하고, 권위 있는 모습만 보여주셨기에 어렸을 적 료타는 무서움을 느꼈다. 그리고 친어머니의 자리를 새어머니가 채우면서 료타는 자신의 가족을 불완전하고 절대로 기대고 싶지 않은 존재로 여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어른이 된 료타는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되었고 그 욕구는 케이타 대신 류세이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 된다. 하지만 류세이는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고 미도리와 자신을 엄마와 아빠로 부르는 걸 거부한다. 6년이 흘러 비로소 친자와 같이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아내와 료타는 여전히 괴로운 삶을 살아간다. 추측건대 그는 끝났다고 생각한 고민을 다시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어른도 성장한다.


친자와 같이 살기 시작했지만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던 료타는 어느 날 깨달음을 얻는다. 오랜만에 친정을 방문한 료타는 불편하게 있다가 집을 나선다. 근데, 새어머니가 료타에게 “피가 연결 안 됐어도 같이 살다 보면 정도 생기고 닮아 가기도 하지. 부부들도 그렇잖아. 부모 자식도 그런 거 아닐까?”라고 말을 건넨다. 그 순간 료타는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자신을 친아들처럼 대해줬던 새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새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그는 가족은 생물학적으로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때 참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료타는 6년 전 고의로 아이를 바꿔치기한 간호사의 양아들을 만나면서 깨달음의 정점을 찍는다. 간호사에게 자신의 고통과 울분을 토하려고 하자 그녀의 양아들이 문을 열고 나와 눈을 부라리며 엄마를 지키기 위해 료타에 맞선다. 그런데, 료타의 그다음 행동은 의외의 행동이었다. 간호사의 양아들에게 소리치기보다는 어깨를 한 번 만지고 걸음을 돌린다. 아마도 료타는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자기 엄마라고 말하는 소년의 눈빛을 응시하면서 혈연관계에 집착했던 본인의 과거를 돌아보고 가책을 느낀 것 같다. 그렇게 료타도 성장하기 시작한다.



무심히 카메라를 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료타와 그의 아내는 류세이와 친해지기 위해 거실에 텐트를 치고  하늘을 같이 보며 하루를 보낸다. 그다음 날 아침 료타는 자고 있는 류세이를 사진 찍은 뒤 카메라를 무심히 바라본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메어와 아침 식사를 하겠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확인하다가 료타는 케이타가 자신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을 보게 된다. 케이타가 료타의 모습은 뒷모습이거나, 피곤함에 절어있는 모습이거나, 침대에 누워 자는 모습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다이(릴리 프랭키)가 예전에 자신에게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죠. 애들한텐 시간이에요. ···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이 못하는 거죠.” 

료타는 자신이 일 때문에 바빠 못 놀아주더라도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아버지로서의 본분을 해내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케이타가 찍어준 사진을 보면서 료타는 후회와 미안함의 눈물을 흘린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가 바뀐 걸 알고 당신이 그랬지. ‘역시 그랬어’라고. 당신은 케이타가 당신처럼 우수하지 못한 게 이상했던 거야. 역시라니… 평생 잊을 수 없어.”라고 울먹이던 아내가 했던 말도 뇌리를 스친다. 이렇게 유다이와 아내가 자신한테 했던 말이 가슴을 찌르게 되었고, 료타는 케이타에게 달려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그렇게 가족이 되어간다. 


료타는 아내와 함께 곧바로 유다이네 가족에게 간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케이타의 이름을 외친다. 하지만, 이미 상처를 입은 케이타는 료타로부터 도망간다. 료타는 케이타를 쫓아가고 둘은 두 갈래로 나눠진 길을 걷는다. 아들에게 강인한 모습만 보였던 료타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케이타에게 하나씩 내뱉는다. 그냥 내뱉는 말들이 아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다 보니 내뱉게 된 고백이었다. 두 갈래로 나눠진 길의 끝에서 료타는 케이타 앞에 선다. 료타는 축 처진 아들의 어깨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들에게 “이제 미션은 끝났어”라고 말을 건넨다. 대단히 서툴지만 료타는 최선을 다해 미안한 마음을 아들에게 전했고 케이타는 료타의 사과를 받아들인다. 서로를 안으며 서로의 체온을 느낌으로써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고 진정한 가족이 되어간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누군가를 닮아가고 누군가와 정이 든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되면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반박하려고 했던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을 ‘기른 정이 피보다 진하다’ 혹은 ‘함께 보낸 시간이 피보다 진하다’라고 고쳐보면서 마무리해 본다.  



원본 링크: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6190

관람 인증

1. 2018.01.09 (아트나인 GET9: 아트나인 5주년 기념 특별전)


작가의 이전글 혈연이 아닌 접촉으로 맺어진 유대 관계 <어느 가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