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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Aug 18. 2018

그때의 '나', 지금의 '나'
<립반윙클의 신부>

SNS 세상에서 현실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오늘도 난, 거짓말을 잔뜩 해버렸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자신이 만들어낸 다크 이와이 월드와 화이트 이와이 월드를 오고 가면서 독특한 감성과 섬세한 연출력으로 다른 영화감독과 차별화된 미장센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를 향해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세밀하고 날카롭게 작품에 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근데, 2016년에 <하나와 앨리스> (2004) 이후 12년 만에 정식 개봉한 실사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는 일상적인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최대한 자연광을 활용하여 일본의 사계절을 담아냄으로써 기존의 다크 이와이 월드와 화이트 이와이 월드 모두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이와이 월드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4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준비하고 연출하게 된 계기는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 (2011)을 연출하면서 갖게 된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현재 일본의 모습을 영화에 나타내고 싶은 마음과 관련이 있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는데,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관계 형성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SNS에 대한 의문과 감독 본인을 둘러싼 불안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SNS [플래닛]의 세 사람: 나나미, 아무로, 마시로 


나나미(쿠로키 하루)는 '클램본'이라는 이름으로 [플래닛]에서 SNS 활동을 시작한다. 현실에서는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존재감이 없을뿐더러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어버린 나나미가 유일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SNS밖에 없다. 시간제 교사, 편의점 아르바이트, 그리고 화상과외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나나미는 현실 세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매일 [플래닛]에 기대며 쉽고 빠르게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SNS를 통해 남자를 만난 나나미는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남편 측 가족과 달리 결혼식에 초대할 친인척이 거의 없는 나나미는 [플래닛]에서 우연히 알게 된 '아무로(아야노 고)'라는 사람을 만나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를 부르게 되었고, 그렇게 일상적인 거짓말로 처한 위기를 극복한 나나미는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거짓된 삶을 가꾸기 시작한다. 



아무로는 나나미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녀를 이용하기도 하는, 즉 선과 악을 갈라서 판단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나나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일을 의뢰한 고객들의 정보를 캐낼 줄 알고 이를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아무로는 전능한 면을 보인다. 다시 말하여, 아무로는 SNS 그 자체를 의인화한 캐릭터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가 나나미에게 조금씩 호의를 베풀 때마다 이미 삶의 내면이 흔들리고 있는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더 무너지게 됨으로써 그에게 의지하지 않고선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린다. 결국, 아무로는 SNS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트렌드임을 보여주는 인물이자 SNS에 의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편리성, 공감성, 그리고 자기 파괴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라고 여길 수 있다. 



암 투병 중인 마시로(코코)는 이상하게도 생명을 위협하는 독을 지닌 생물을 사들이며 자신을 항상 죽음에 가까이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장난기가 배어 있는 활동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실은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심신이 점차 쇠약해지는 인물이다. 마시로는 날이 갈수록 SNS 세상 안팎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두려워 이를 감추려고 자신이 일해서 번 돈을 물 쓰듯 한다. 그러나, 비록 그녀는 쉽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겁나지만 나나미와 달리 SNS에 의존하지 않고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이는 본인이 죽을 때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아무로를 통해 돈으로 나나미를 고용하게 되었지만 결국 나나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인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저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플래닛]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에게 자신도 모르게 일상적인 거짓말을 잔뜩 하게 된 나나미는 눈 깜짝할 사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바람과 달리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난다. 넋이 나간 나나미는 방향 없이 길 위를 걷다가 늦게서야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하염없이 두려움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가, 도쿄의 어느 한 숙박 시설에 도착한 그녀는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운 채로 하루를 보내고 생계비를 벌기 위해 기존에 하고 있던 화상 과외에 추가적으로 호텔 청소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나나미는 우연히 아무로를 재회하게 되었고 그의 제안으로 임시로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결혼식 당일 나나미는 마시로를 만나 자매 연기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친해졌다. 그러나, 친해지자마자 종적을 감춘 마시로 때문에 나나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렇게 또다시 시간이 지나고, 아무로가 나나미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는 그녀에게 대저택 관리만으로 거액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가정부 아르바이트를 제안하고, 성격상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녀는 그를 따라간다. 하루 동안 많은 일을 겪은 나나미는 주인이 자리를 비운 대저택 구석에서 깊은 잠에 든다. 근데, 자고 있는 나나미 앞에 나타난 사람은 친해지자마자 도쿄 시내 길 한복판에서 종적을 감춘 마시로였다. 나나미는 자기 앞에 갑자기 마시로가 나타난 상황이 의아하지만, 어쨌든 그녀와의 재회가 무척 반가워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 기쁨을 표출한다.



"어쩌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나나미는 자신이 왜 대저택 가정부로 일하게 된 내막을 모르지만 마시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날 마시로가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해졌다. 이 소식을 접하게 된 마시로의 매니저가 긴급히 촬영 일정을 취소했지만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일정을 소화하겠다는 마시로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나나미와 함께 촬영장에 데려다주었다. 마시로의 매니저와 남게 된 나나미는 그녀로부터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뿐더러 자신이 대저택 가정부로 고용된 속사정을 알게 된다. 나나미는 잠깐 충격에 빠진 듯해 보이지만 촬영장에서 돌아온 마시로에게 더 이상 가정부로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대신 그녀의 곁을 지키는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용기 내 말한다. 처음부터 진정으로 감정을 나눌 사람이 필요해서 서로 만난 것은 아니지만, 비로소 두 사람은 랜선 친구가 아닌 현실 세계의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된 두 사람은 같이 살 집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웨딩드레스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고 각자 어울리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 촬영을 한다. 서로 손가락에 보이지 않는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은 마시로를 연기한 코코(Cocco)의 음반에 수록된 노래이자 이 영화에서도 삽입된 'Cosmology'라는 곡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커다란 세상에 놓인 두 사람이 바다 아래의 평온을 생각하면서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저택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서로를 축복하는 듯한 파티를 열어 즐기다가 침대 위에 눕는다.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마시로가 나나미에게 농담인지 진심인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뉘앙스로 자기와 결혼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나나미는 잠깐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마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결혼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나나미의 답변을 들은 마시로는 행복에 관한 자신의 두려움을 고백한다. 마시로는 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를 쉽게 얻으면 자신도 쉽게 부서질까 봐 불안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나나미의 얼굴에서는 의아한 표정 대신 마시로의 고백에 대한 이해와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달은 표정으로 가득 찼다. 그러므로, 고백 후 얼굴 위에 흘러내리는 마시로의 눈물은 슬픔이 아닌 상처 치유의 징표로 다가온다.



나나미를 고용하기 전부터 죽기로 결심한 마시로는 자신의 바람대로 누군가의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 나나미는 갑작스러운 마시로의 죽음 때문에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아무로와 함께 그녀의 장례식을 치르는 데 도움을 주고 마시로의 어머니를 찾아뵙는다. AV 배우가 된 딸이 못마땅했던 어머니는 딸의 죽음에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소주를 마시면서 딸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어머니는 옷을 한 벌씩 벗기 시작하더니 결국 눈물을 터트리자 아무로 또한 어머니를 따라 소주를 마시면서 옷을 벗으며 통곡하기 시작하고, 나나미도 같이 울기 시작한다. 이 시퀀스는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가장 난해하지만 의미가 있는 중요한 시퀀스 중 하나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시로가 느꼈던 현실에서의 수치와 당혹감을 공유함으로써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미안함과 비통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SNS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진심은 이렇게 요란한 한 장면으로 응축되어 나타난다.



나나미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이전과 달리 자의성을 기반으로 독립했다고 봐야 한다. 짐을 정리한 나나미는 센터 테이블 오른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왼쪽에 놓인 의자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그 의자를 마시로의 어깨를 어루만지듯이 쓰다듬는다. 그리고, 나나미는 마시로가 반지를 끼워준 손가락을 만지면서 바라본다. 아마도 나나미는 아직 마시로를 그리워한 것으로 보인다. 나나미의 심정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동명 장편 소설 『립반윙클의 신부』를 참고한다면 더 와 닿게 된다.


'센터 테이블에 의자가 2개. 한쪽에 앉아 봤다. 또 하나의 의자. 마시로가 있어야 했을 장소. 나나미는 문득 생각이 났다. 어쩌면? ··· 나나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왼손 넷째 손가락을 만졌다. 마시로에게 받은 보이지 않는 반지는 마치 진짜 반지처럼 그곳에 있는 것처럼 나나미의 넷째 손가락을 간지럽혔다. 당분간은 울면서 지낼 듯하다. 나나미는 두 개의 메시지에 다시 한 번 시선을 떨어뜨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 이와이 슌지, 장편 소설 『립반윙클의 신부』중



하지만, <립반윙클의 신부>의 결말은 자신의 과외 학생 카론의 질문에 억지로 표정을 짓기보다 자연스럽게 미소를 보이며 대답하는 나나미의 모습과 베란다로 스스로 걸어 나간다는 행위를 고려해볼 때 해피 엔딩이다. 특히, 거실에서 몇 걸음이면 베란다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나나미가 SNS 세계에서 나와 현실 세계에서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게 되었다는 사실로 귀결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게 된 나나미가 SNS에 의존하지 않고 현실 세계에 서서히 정착할 거라고 믿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자신처럼 내성적이고 심적으로 표류 중인 자신의 과외 학생 카론에게 마시로와 그랬듯이 관계 형성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만약 죽은 마시로가 여전히 나나미의 곁을 지킨다고 한다면 나나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와 첫 만남 때 만나 부른 'Cosmology'라는 노래가 나나미와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리뷰는 'Cosmology'라는 곡의 가사를 소개하며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コスモロジー (Cosmology)


                                        by. Cocco


별이 가득 빛나는 밤

그 언덕 위에서

너는 기도를 해 주겠지 그렇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부디 행복해야 해 내 사랑

부드러운 바람을 느껴봐


빛은 이곳에 닿지 않아

높이 든 손을 흔들어보네


수면을 움직이는 

파도가 될 수 있다면

하늘도 껴안을 수 있을 것 같아


SLEEP IN THE WATER

내일 또다시

밝게 웃을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의 밑바닥에서


그러니까 지금만은

꼭 들어줘

너에게 주는 이 노래를


그러니까 제발 지금만은

말하지 말아줘

사랑해라고


나에게 너무 커

사랑해라는 말

오늘도 유성이 떨어지네



원본 링크: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6425

관람 인증

1. 2016.09.25 (더스페셜패키지 상영)

2. 2016.10.03 (일반 상영)

3. 2016.10.14 (스페셜 에디션 상영)

4. 2018.05.15 (아트나인 GET9 더쿱 특별전: 스페셜 에디션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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