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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Aug 14. 2018

시간의 평행과 순환 속 삶과 소멸
<고스트 스토리>

‘The’ 가 아닌 ‘A’ Ghost Story인 이유 


삶과 시간에 관한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아름다운 상상이 담긴 <고스트 스토리>는 ‘유령’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다른 유령 관련 영화들과 달리 경이로웠을 뿐만 아니라,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금방 좌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상실하는 것들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사랑과 상실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고 ‘시간’을 재구성하기 위해 ‘집’이라는 공간을 활용한다. 게다가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1.33:1의 화면 비율을 사용하고, 프레임의 모서리를 원형으로 처리하고, 그리고 대다수 장면을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대사가 없어도 영화를 이끌고 가는 연기를 펼친 두 배우: ‘루니 마라’ & ‘케이시 애플렉’


<고스트 스토리>는 유성 영화이지만 무성 영화에 가까운 특징을 갖고 있다. 대부분 장면이 롱테이크로 촬영되는데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은 카메라 보여주고 있는 M(루니 마라) 와 C(케이시 애플렉)의 행동과 표정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대사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짙은 여운을 느끼며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루니 마라와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 덕분이었다. 둘은 대사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빛과 표정 변화만으로도 ‘M’과 ‘C’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표현했다. 루니 마라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상실감을 피칸 파이를 먹는 장면에서 점점 거칠어지는 포크 질과 숨소리로 표현하거나 혼자 침대에 누운 장면에서 ‘C’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그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케이시 애플렉은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하얀 천을 덮어쓴 상태로 연기를 한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M’을 바라보는 ‘C’의 감정과 재구성되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감정은 하얀 천을 뚫고 온전히 마음에 전달된다. 두 배우가 아니었다면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애틋한 감정선이 읽히지 않았을 것이다.



유령의 관점에서 재구성되는 시간


<고스트 스토리>에서는 두 종류의 시간이 평행적으로 흐른다. 인간 세계의 시간은 일반적인 시간처럼 흐르거나 간혹 천천히 흐르지만, 유령 세계의 시간은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과 달리 급격하게 흐르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갑자기 과거가 아닌 대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유령이 된 C는 M이 집을 떠난 뒤 많은 시간이 흘러 집이 허물어진 뒤 세워진 고층 회사 건물에서 땅으로 낙하한다. 낙하한 C는 그가 M과 함께했었던 과거가 아닌 대과거로 돌아간다. 인간 세계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시간 흐름이다. 두 세계의 시간은 하나의 공간에 같이 존재하되 절대로 부딪히거나 섞이지 않는다. 마치, 유령이 된 C와 M이 같은 공간에 있고 움직이면서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평행으로 흐르는 두 시간을 통해 관객은 삶으로부터 사랑, 상실, 죽음, 기억과 망각 등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이 영화에서 ‘집’은 상당히 중요한 공간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집은 삶의 모든 것을 스케치한 그림이면서도 유령이 된 C가 떠난 소멸의 여정을 마무리 짓기 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집에 C와 M이 서로 사랑했던 순간과 이사 문제로 잠깐 어색했던 순간, 그리고 C의 죽음 이후 흐르는 상실감의 분위기가 기록된다. 사랑을 잊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 M이 집 내부를 하얀색으로 다시 칠하고 떠난다. 새롭게 칠해진 집에는 기억과 소멸의 이야기, 삶과 죽음, 공포 등 다양한 삶의 측면들이 기록된다. 특히,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유령이 된 C가 집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회사 건물에서 추락하는 장면은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집과 달리 ‘회사’라는 공간은 인간미가 부족하고 오로지 비즈니스 관계로 돌아가는 구조를 갖는다. 유령이 된 C는 이웃집 유령처럼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왜 집으로 돌아왔는지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C는 영원히 소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집은 C가 유일하게 기억을 해낼 수 있는 공간이지만, 회사 건물이 그 공간을 대체함으로써 진행 중인 소멸의 여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  



재구성된 시간을 통해 다시 집으로 돌아온 유령 ‘C’


유령이 된 C는 건물에서 떨어진 뒤 대과거로 돌아갔고 시간이 흘러 생전 자신과 M의 모습을 목격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생전의 모습을 목격한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그가 죽은 뒤 유령이 되어 이 집으로 돌아온 이유를 인제야 깨달았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유령은 이사 문제로 M과 싸울 때 본인은 음악으로 의사소통을 전달하려고 했던 자신을 기억할뿐더러 결국 이사 가는 것에 동의한 사실도 기억해낸다. 그리고 피아노 소리를 낸 것도 자신이 그랬음을 알게 된다. 대과거를 통해 과거로 돌아온 유령은 유령이 된 자신을 바라본다. 비로소 모든 것을 기억해내고 M이 집을 떠나기 전 숨겨 놓은 쪽지를 찾아 읽자마자 소멸한다. 많은 관람객이 쪽지의 내용이 무엇일지 궁금할 것이다. 추측한 건데, M이 남긴 쪽지에는 이 집에서 나눴던 사랑과 상실 그리고 모든 순간을 감사하면서도 이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잊으려고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지 않을까 싶다.  



‘The’ Ghost Story가 아닌 ‘A’ Ghost Story인 이유


원제는 <A Ghost Story>이다. 우리는 분명 M과 C의 삶을 봤지만, 원제는 정관사 ‘the’를 붙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고스트 스토리>가 제작된 계기를 생각해 보면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애착하는 것들을 상실했을 때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하여 감독은 지구에 존재하는 여러 유령 중에서 ‘C’를 암묵적인 스토리텔러로 정한 것이다. ‘C’가 있는 집뿐만 아니라 이웃집 그리고 다른 집에도 소멸의 여정을 떠난 유령들이 살고 있다. ‘C’는 이들을 대신해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달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영화 원제는 ‘The Ghost Story’보다 ‘A Ghost Story’가 더 합리적으로 들린다.



<고스트 스토리>는 사랑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상실을 집착하는 삶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지는지 혹은 삶에서 소멸의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영화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끝맺는다.


리뷰 원본: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6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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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12.28 (아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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