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헛간을 태우다'의 관계에 대하여
"어머, 간단한 거예요, 재능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요, 거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뿐이에요."
-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중에서
"가끔씩 헛간을 태운답니다.······ 이걸 피우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여러 일들이 떠오릅니다. 빛이라든가 냄새라든가, 그런 것들이요. 기억의 질이"
-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중에서
"두 달에 한 번쯤은 헛간을 태웁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또 손가락을 꺾었다. "그 정도 페이스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제게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얼굴 앞에서 양손을 펼쳤다가 다시 천천히 모았다. "세상에는 헛간이 얼마든지 있고,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워주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변에 우뚝 서 있는 헛간도 그렇고, 논밭 한가운데 서 있는 헛간도 그렇고 ······ 어쨌든 여러 헛간들이 말입니다. 십오 분이면 깨끗하게 태워버릴 수 있지요.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요.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라질 뿐이죠. 깨끗이요."
"······ 전 저 나름대로 도덕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도덕은 인간 존재에 무척 중요한 힘이죠. 도덕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전 도덕이라는 것은 동시 존재의 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헛간을 태우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