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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May 01. 2019

13인의 얼굴과 목소리로 선언을 외치다, <매니페스토>

20세기 아티스트와 사상가들의 치열한 선언들의 회고와 진실한 예술에 대해


율리안 로제펠트 감독의 <매니페스토> (2016)는 원래 미디어 아트 전시를 위해 기획되었고, 몇몇 미술관에서 설치 작업 이후 멀티채널 형태로 공개되었던 작품이다. 전시 이후 영상물을 편집해 영화로 재탄생되었다. <매니페스토>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부랑자, 증권가 직원, 연구원, 공사장 인부, 화가, 가수, 무용수, 리포터, 아나운서, 인형 제작자, 과부, 주부 그리고 선생님으로 모습을 계속해서 바꾸며 1인 13역 연기를 한다. 13인의 모습과 목소리로 케이트 블란쳇은 20세기 아티스트와 사상가들의 선언들을 독백으로 전달한다. 다다이즘(dadaism) 선언, 도그마 95 선언(Dogma 95), 플럭서스 선언문(The Fluxus Manifesto) 등 무수히 많은 선언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예술이나 영화 관련 전공 출신이 아니거나 전문가가 아니라면 <매니페스토>에서 범람하는 선언들을 한 데 모아 분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가 현대 예술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의 다양한 선언을 회고함으로써 <매니페스토>는 예술은 성실이 아닌 진실이라는 전제하에 현대 예술은 가짜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현대 예술은 상업적이고, 기계적이고,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일부만 누릴 수 있도록 지나치게 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무용가로 등장한 케이트 블란쳇의 손짓과 목소리를 통해 플럭서스 선언문이 읊어지는데, 이 선언은 죽은 예술(dead art), 모방예술(imitation art), 인공예술(artificial art) 등까지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더 나아가, 진실한 예술로의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시대에서 예술가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바로 혁명가라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다다이즘 선언을 인용하며 기존의 것을 모두 부정해 제로베이스로 돌아가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의미를 찾는 활동과 창조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데, 이 영화가 추구하는 새로운 예술의 가치는 삶과 밀접하다. 삶은 예술작품이고, 예술작품은 삶이라는 선언을 전할 뿐만 아니라, 예술은 삶과 자연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영역임을 강조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선언들은 모여 자본주의로 인해 물질주의적이고, 비평가나 일부 특정인을 위한 향락주의적인 예술을 굉장히 멸시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케이트 블란쳇 배우가 주부로 변신해 등장한 장면에서는 ‘돼지고기 미술’, ‘치킨 미술’, ‘주머니에서 나오는 예술’ 등을 언급함으로써 예술의 틀이나 형식보다 현실과 밀접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고 외친다. 



마지막에는 영화와 관련된 두 가지 선언이 소개되는데, 하나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 관련 선언과 또 다른 하나는 도그마 95 선언이다. 우선, “문제는 어디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져가는 것이다”라는 장 뤽 고다르의 주장을 통해 독창적인 것이란 없으므로 얼마든지 오래된 영화, 음악, 책, 미술 등에서 본인의 영혼을 울리는 게 있다면 가져오되 ‘현실’ 혹은 ‘삶’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곧이어 도그마 95 선언을 인용하면서 인위적인 예술이 아닌 순수하고 현실적인 예술을 지향한다는 자세를 끝까지 반복하며 역설한다. 



비록 <매니페스토>는 예술에 대한 담론을 이어가는 영화이지만, 한 영역의 현황을 다양한 목소리로 접근한다는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언론 등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 현황을 고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한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event/view?id=734


*관람 인증

1. 2017.05.25 (스크린문학전2017)

2. 2019.04.27 (2019아트RU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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