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문보 Apr 30. 2019

아쉽지만 그래도, <페르소나>

<러브 세트>, <썩지 않게 아주 오래>, <키스가 죄>, <밤을 걷다>


영화 <페르소나> (2019)는 이경미 감독, 임필성 감독, 전고운 감독 그리고 김종관 감독이 배우 이지은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내 만든 총 4편의 단편영화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다. 배우 이지은은 대부분 대중이 알고 있다시피 '아이유'라는 아이덴티티로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였다가 드라마 '드림하이'로 연기자로 데뷔했다. 그러나 배우 이지은으로서의 삶은 그리 평탄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번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연기력 논란이 이슈가 되곤 했다. 하지만, 드라마 '프로듀사'와 '나의 아저씨'를 기점으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주연이 되었다. 

<페르소나>가 과연 기획의도에 맞는 영화이냐고 질문을 던진다면, 대답은 안타깝게도 아니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네 명의 감독 모두 배우 이지은의 다채로운 모습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표면적으로 주인공의 위치에 서 있던 그녀가 이야기가 완성될 때쯤 소모되고 살그머니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그래도 <페르소나>를 구성하고 있는 총 4편의 단편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나 주제를 다루기 위한 연출 방식만큼은 헛되지 않았을리라 믿는다. 그래서 어쩌다가 쓴 <페르소나> 리뷰는 <러브 세트>, <썩지 않게 아주 오래>, <키스가 죄> 그리고 <밤을 걷다>에서 두드러지는 주제나 접근법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러브 세트> (LOVE SET, 2019)

단편영화 <러브 세트>는 <페르소나>의 첫 번째 단편영화로 이경미 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본 배우 이지은의 모습을 스크린에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경미 감독은 언제나 도발적인 면과 창의적인 면을 오고 가는 영화를 연출하는 걸로 유명한데, 이번 단편영화에서는 창의적인 면보다 도발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뒀다.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랠리가 이어지는 시퀀스와 랠리가 이어지지 않는 시퀀스의 충돌로 섹슈얼한 긴장감을 유쾌하게 끌어낸다는 점이다. 나중에는 남성을 주변으로 밀어내고 두 여성을 코트 중심에 옮겨 놓음으로써 이 긴장감을 더 재미있게 풀어낸다. 그리고 이경미 감독이 과일을 베어 먹으면서 두 눈을 좌우로 굴리며 테니스 코트를 바라보는 배우 이지은의 짜증 섞인 모습을 잘 담아낸 듯하다. 


<썩지 않게 아주 오래> (Collector, 2019)

영화 <페르소나>의 두 번째 단편영화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임필성 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지은의 모습을 기담으로 담아냈다. 극 중에서 ‘은(이지은)’은 연락도 없이 잠수를 타다가 카페에서 ‘정우(박해수)’를 만난다. ‘정우’는 이해할 수 없는 ‘은’의 태도에 화는 나지만 그녀를 붙잡기 위해 참는다. ‘정우’의 표정은 다소 모호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오프닝 시퀀스에 그려진 요가를 하는 ‘은’의 모습은 그의 표정이 모호하지 않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요가를 수행하는 자는 몇 가지를 절대로 행하면 안 되는데,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간음’과 ‘쾌락’을 주요 소재로 다룬다. ‘은’의 대화를 들을수록 그녀를 간음하고 싶은 ‘정우’의 더러운 욕망은 커지게 되며 다른 남자와 화장실 앞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보자 좌절된 욕망 때문에 내면적으로 무너진다. 이와 같은 내면적 붕괴 과정을 정의되지 않은 다른 공간으로 형상화한다. 후반부에 ‘은’이 인간의 탈을 쓴 마녀의 모습을 보이며 ‘정우’의 심장을 받아 그의 이름이 적힌 유리병에 담으며 자리를 떠난다. 간음과 잘못된 쾌락 추구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심장이 ‘은’의 가방에 많이 보관되고 있다. 이는 이 세상에 여성을 도구로 대하는 어리석은 남성이 많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인해 비참해진 자신의 내면을 마주 보게 하는 결말은 남성 감독의 시선에서 최대치로 그려낸 ‘정우’와 같은 남성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이지 아닐까 싶다.


<키스가 죄> (Kiss Burn, 2019)

영화 <페르소나>의 세 번째 단편영화 <키스가 죄>는 전고운 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지은의 모습을 가부장제의 폭력과 결부해 담아낸 작품이다. 또한, 앞선 <러브 세트>와 <썩지 않게 아주 오래>와 달리 이지은 배우의 껄렁거리는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나(이지은)’의 단짝 친구 ‘혜복(심달기)’는 바닷가에 놀러 가 남자와 키스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빠한테 두들겨 맞을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일부를 잘리고 만다. '혜복'의 아빠의 거짓말 때문에 계속 친구를 보지 못하다가 방안에 혼자 고립된 친구를 본 '한나'는 복수를 하자고 설득한다. 두 사람은 함정을 만드는데,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가자 닭장 앞에서 짜증 내며 담배를 피우다가 담뱃재가 닭장으로 들어가 작은 불이 난다. 물론 다행히 불을 껐지만, 나중에 둘이 바다로 놀러 가는 중에 다시 불이 나며 '혜복'의 집과 뒤에 산마저 불에 타버린다. 영화의 엔딩은 웃고 넘길 수 있는 해프닝이라고 보기에는 굉장히 무섭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두 친구의 깜찍한 복수가 결국 가부장제의 폭력을 지워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복수 방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혹은 사회에게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키스가 죄>는 가부장제의 폭력을 맞서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응 방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볼 필요성을 강조하는 즉, 표면적인 이미지와 달리 대단히 서늘하고 날카로운 시선의 영화다. 


<밤을 걷다> (Walking at night, 2019)

영화 <페르소나>의 마지막 단편영화 <밤을 걷다>는 특정 공간이나 사물을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다룰 줄 아는 김종관 감독의 작품이다. 이번 단편영화에서도 이와 같은 김종관 감독의 능력이 묻어나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악의 하루> (2016)에서 보여줬던 인물의 이동성에 흑백 영상의 미를 더하며 김종관 감독의 영화만의 감성은 어느 때보다 더 깊어졌다. <밤을 걷다>는 이전 세 편의 단편영화와 달리 꿈속을 배경으로 하고, 죽음으로 헤어진 연인이 꿈에서 재회해 그려내는 슬픈 정서와 진정한 위로를 그려낸다. 우선, 김종관 감독은 '지은(이지은)'과 'K(정준원)'의 운동성과 두 사람의 주위를 둘러싼 사물과 사람의 정지 상태를 대조시킴으로써 마지막 인사를 앞둔 두 사람만의 공간과 분위기를 마련해준다. '지은'은 'K'와 함께 밤을 걸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런 '지은'의 모습에 'K'는 울컥하면서 본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비록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상황이지만, 'K'의 솔직한 감정은 수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해 세상을 떠난 '지은'에게는 위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더 나아가, '지은'처럼 역설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난함 속 꽃핀 가능성, <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