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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Mar 16. 2019

무난함 속 꽃핀 가능성, <돈>

주제를 풀어내는 다양한 구도와 특정 이미지의 활용이 쏘아 올린 가능성


<부당거래> (2010), <베를린> (2012) 그리고 <남자가 사랑할 때> (2013)에 조감독으로 참여하며 경험을 쌓은 박누리 감독은 <돈> (2018)의 연출을 맡으며 장편 영화 데뷔를 했다. <돈>은 누군가에게 희망이지만 다른 누군가를 좌절시키는, 즉 배금주의로 인한 희로애락을 그려낸 영화다. 제작보고회에서 언급했듯이 박누리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돈’이 사람보다 우선시 되는 시대에서 본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고민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제 및 의도 자체보다 이를 풀어내기 위한 다양한 구도와 특정 이미지의 활용이 인상 깊다.



작심한 듯한 오프닝 시퀀스

 

영화 <돈>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작심한 듯이 숏(shot)의 길이를 짧게 가져가며 속도를 올린다. 근데, 관객이 체감상 느끼는 속도감은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물리적인 속도감보다 더 빠를 것이다. 왜냐하면 숏의 짧은 길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숏으로 시퀀스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우선, 버즈 아이 뷰 숏(bird’s eye view shot)으로 여의도 증권가를 빼곡히 메운 증권가 빌딩과 바쁘게 출근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클로즈업 숏(close up shot)으로 아침부터 지친 직장인으로 가득 찬 지하철 안을 묘사한다. 그런 다음, 영화의 주요 배경인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트래킹 숏(tracking shot)으로 내부를 수평적으로 훑고, 트랙 아웃(track out)으로 내부를 수직적으로 훑는다. 마지막으로 와이드 앵글 숏(wide angle shot)으로 600평에 달하는 사무실 안에서 펀드매니저와 주식 브로커 사이에 흐르는 바쁜 기류를 담아낸다. 덕분에 <돈>은 건물 안팎의 분위기와 규모를 최대한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쉴 틈 없이 이뤄지는 앵글 변화


두 인물의 대화 장면을 위해 숏과 리버스 숏(reverse shot)을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각 숏의 길이를 균등하게 짧게 가져가며 빠른 전환을 보여줬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근데, 이것보다 더 눈에 띄는 특징은 대화 장면마다 달라지는 '조일현(류준열)'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카메라 앵글을 바꿨다는 점이다. '조일현'이 '번호표(유지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로우 앵글 숏(low angle shot)으로 비춰주며 기대감과 불안감이 섞인 심리 상태를 그려낸다. 그런데, 첫 번째 거래가 성공하자 환호하는 '조일현'과 그를 쳐다보는 직장 동료들을 번갈아 보여주다가, 마지막 순간 '조일현'만 뚜렷하게 보여주고 나머지를 아웃 포커스함으로써 돈의 맛을 본 그의 심리 상태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지인과 직장 동료 앞에서 점차 어깨를 피기 시작하는 '조일현'을 보여주기 위해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 수평 앵글 숏(eye level shot)을 활용하다가, 돈에 집착한 나머지 인간성을 잃어가고 광기 어린 내면을 나타내기 위해 하이 앵글 숏(high angle shot)으로 전환한다. 특히,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전우성(김재영)'을 쳐다보는 '조일현'의 모습을 하이 앵글 숏으로 담아냄으로써 그의 타락한 내면과 분노를 엿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괴물로 변한 본인의 상태를 확인한 후 양심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조일현'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하이 앵글 숏에서 수평 앵글 숏으로 다시 전환하며 후반부 대화 장면을 보여준다. 이후 수평 앵글 숏을 끝까지 유지하며 돈에 얽매여 있던 '조일현'의 내면 회복 과정을 서술한다.



세 단계에 걸쳐 활용된 거울 이미지


중점적으로 영화 <돈>이 활용한 이미지는 거울 이미지다. 보통 거울 이미지는 영화 <박하사탕>처럼 인물이 자신의 무의식과 조우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그런데, <돈>은 일반적인 목적으로 거울 이미지를 사용하기 전에 약간 변형해서 이용한다. 부자의 꿈을 이룬 ‘조일현’이 고급 양복을 입으면서 거울을 볼 때 그저 웃기만 하며 달라진 상황을 즐긴다. 즉, 첫 번째 거울 이미지는 그가 돈 때문에 무너지는 내면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 거울 이미지는 ‘조일현’이 비로소 자신의 타락한 내면을 조우할 것임을 암시한다. ‘번호표’가 벌이는 판이 커지면서 희생당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자 ‘조일현’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뒤늦게 감지한다. 이때 블라인드의 그림자가 드리운 거울은 그를 심리적으로 가두는 감옥을 연상시키고, 거울에 이전과는 대조적인 그의 표정이 포착된다. 따라서, 두 번째 거울 이미지는 이후 달라질 그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돕는다.



세 번째 거울 이미지가 활용되었을 때 마침내 양심을 회복해 가는 ‘조일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거울 이미지 이후 그는 거울을 볼 때나 자동차 혹은 지하철 유리에 반사되는 본인의 모습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특히, 세 번째 거울 이미지와 ‘번호표’ 앞에서 더는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속세에 찌든 옷을 벗는 행동이 결합하면서 양심 회복을 갈망하는 의지이자 회개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된다.



앞서 언급한 특징들이 쌓이면서 영화 <돈>이 다루고자 한 주제에 도달하게 된다. 이미 돈 때문에 희로애락을 겪은 ‘조일현’이 ‘번호표’ 앞에서 더럽게 번 지폐를 뿌리자마자 지하철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승차하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들어 지폐를 줍는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보다 지폐를 더 많이 줍기 위해 속옷 안까지 활용한다. 이는 돈이라는 물질 덕분에 보다 더 편리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돈 때문에 점점 많은 인간은 이성을 잃을 뿐만 아니라 윤리성마저 잃게 되는 위기에 빠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엔딩 시퀀스에서 지하철이 터널을 나오면서 눈 부신 빛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있다. 어두운 터널은 물질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무너져버린 인간성을 가리킨다면, 터널 밖은 양심의 회복을 나타낸다. 이를 통해 영화는 인간성이 파괴되는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아니면 무너진 양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본인의 내면을 성찰하고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돈 때문에 욕심을 부리거나 마음이 척박해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돈>은 시의적절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 해당 글은 '쇼캐스트' 네이버 포스트에 발행된 글과 동일합니다: http://naver.me/xBG0T2rc

* 관람 인증

1. 2019.03.06 (최초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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