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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Sep 18. 2018

카메라 앵글 사용법만 흥미로웠던  <명당>

그래도 좋은 배우들의 조합으로 안전지향적인 영화를 만든 아쉬움


박희곤 감독의 <명당> (2017)은 <관상> (2013)과 <궁합> (2018)을 잇는 역학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개봉일을 미루어 볼 때, <명당>은 추석 연휴를 대놓고 겨냥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역학 3부작의 두 번째 영화인 <궁합>이 굉장히 실망스러웠던 반면, <명당>은 <관상>처럼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의 조합으로 역학 3부작을 아름답게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표면상으로 <명당>은 색다른 사극 영화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긴다. 왜냐하면 조승우, 지성, 백윤식 배우 등이 좋은 연기 조합을 형성할뿐더러, '풍수지리'라는 소재에 역사적인 사건까지 가미함으로써 신선한 시나리오가 탄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물론, <명당>은 눈에 띄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명당>은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던 다른 한국 상업영화처럼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의 조합에 기대어 어느 정도 수준의 재미를 이끌어내는데 그친 아쉬움을 남긴다.



효과적인 카메라 앵글 활용법으로 표현한 명당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


극 중에서 장동 김 씨 김좌근(백윤식)은 명당을 도구로 삼아 조선을 지배하려고 하는 반면,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은 권력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 천하명당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헌종(이원근)은 조상을 좋은 묏자리를 찾아 이장함으로써 세도 가문을 견제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계획을 짠다. 세 사람의 욕심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당시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이 강했을 뿐만 아니라, 넓은 맥락에서는 좋은 기운을 얻고자 하는 이들의 생각에는 백성이 배제되어있다는 것이다. 사실 권력을 쟁취하려는 인물 간의 대립을 다루는 영화는 대단히 친숙하다. 그래도 <명당>은 그 친숙함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카메라 앵글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우선, 보통 로우 앵글은 피사체를 강조함으로써 존경심, 공포, 경외심을 유발하기 위해 이용된다. 하지만, <명당>에서 로우 앵글은 직위를 통해 형성된 수직 관계를 전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김좌근이 헌종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헌종을 향한 김좌근의 존경심을 드러내기는커녕 로우 앵글을 헌종의 적은 헤드룸과 결합시킴으로써 헌종을 우습게 보거나 노려보는 김좌근의 시선을 완성한다. 이를 통해, 세도정치기 당시 왕과 신하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수평 앵글은 감독의 주관이 하이 앵글이나 로우 앵글에 비해 덜 개입된다. 하지만, <명당>에서는 수평 앵글의 일반적인 특징이 파괴된다. 대신, 여기서 수평 앵글은 천하명당을 품기 위한 인물들과 땅의 기운을 점쳐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지관 사이의 팽팽하거나 오히려 천재지관이 우위를 점하는 관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김좌근과 그의 아들 김병기(김성균)는 흥선보다 왕이 될 수 있는 명당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정만인(박충선)을 찾아간다. 원래는 정만인이 신분상 두 사람 앞에서 기세를 펼칠 수 없다. 그러나, 명당의 중요성이 굉장히 커지자, 정만인은 되레 두 사람의 심리를 갖고 놀기 시작한다. 카메라 앵글은 정만인의 시선을 김좌근과 김병기의 시선과 동일선상에 놓음으로써 방금 전에 말한 관계와 상황을 무척 주관적으로 그려낸다. 만약, 카메라 앵글이 교과서적인 효과를 일으키는데 그쳤다면, 친숙한 권력 투쟁 이야기에 지친 나머지 지루함이 극심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사극이 될 수 없었던 <명당>


<명당>이 색다른 사극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명당>은 '땅'이라는 소재와 세도정치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결합된 시나리오가 예상과 달리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배우의 연기력과 조합에만 의존했다. 백윤식 배우는 언제나 그랬듯이 관록 있는 연기를 보여줬고, 조승우 배우는 역시나 훌륭하고 균형 잡힌 연기를 펼쳤다. 게다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아는 와이프>를 포함한 모든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연기와 달리 그동안 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치지 못했던 지성 배우가 이번 영화에서는 스펙트럼이 넓은 흥선의 심리 변화를 감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들을 포함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지만, 시나리오가 탄탄하지 못해 <명당>은 평범한 사극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기대했던 풍수지리 소재와 역사적 사건의 결합은 매끄럽지 못했다. 도리어 실제 사건이 영화의 주된 소재에 겨우 끼워 맞춰져 있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평행적으로 흘러간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냥 '밟고 사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땅'에 희로애락이 담겨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박희곤 감독의 욕심이 <명당>을 더 아쉽게 만들어버렸다. 영화의 에필로그는 세도정치기에서 일제강점기로 시대를 옮긴다. 세도정치 시기와 달리 민족을 위한 명당을 찾아주는 박재상(조승우)과 구용식(유재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좋게 말하면 에필로그 덕분에 감독의 생각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빈약한 시나리오를 억지로 늘려 쓴 격이 되어버려 깔끔한 마무리를 포기해버린다.  



장점이 정말 매력적이었기에 평범한 영화가 되어버린 <명당>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영화다. 그래도 <궁합>으로 망칠 뻔한 역학 3부작을 안전하게 마무리지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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