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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Jul 26. 2018

위선적인 현대사회를 벗기는 공간, <더 스퀘어>

현대인의 비합리적이고 위선적인 초상을 스크린 안팎으로 전시하다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1번과 2번 내용)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공간으로 이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는 작년 제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킬링 디어> (2017), <그 후> (2017), <러브리스> (2017), <옥자> (2017) 등을 제치고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감독은 북유럽을 홀렸던 예술 프로젝트 '더 스퀘어'를 영화로 재탄생시켰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 일상과 예술, 그리고 전시와 비전시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든다. <더 스퀘어>는 표면상으로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들이 하나둘씩 터지면서 뭘 해도 일이 꼬이는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의 날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바닥에 설치된 정사각형 모양의 공간을 통해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휴머니즘 세계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갈망 또한 위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냉소적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더 스퀘어' 전시회를 앞둔 크리스티안이 겪게 되는 크고 작인 일들을 따라가 보면 전시된 현대인의 초상을 천천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1. 하루하루가 산 넘어 산인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안은 아침부터 저널리스트 앤(엘리자베스 모스)과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본인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 채 대답하며 가까스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는 크리스티안이 앞으로 겪게 될 고난들의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다. 크리스티안은 바쁜 출근길에 한 남성으로부터 위협당하는 여성을 도와주다가 오히려 그 여성으로부터 소매치기당한다. 그래서 크리스티안은 GPS로 소매치기범의 대략적인 거주지를 파악한 뒤 핸드폰과 지갑을 돌려받기 위해 마구잡이로 각 가구에 협박편지를 돌리는데, 도리어 한 소년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게다가, 자신의 인터뷰를 담당했던 여성과 불타는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를 가졌는데, 여성은 크리스티안과 모르는 사이가 아님에도 믿지 못해 그를 직접 찾아 가 옥신각신한다. 크리스티안은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더군다나 두 딸이 티격태격 싸우면서 자기 집으로 방문해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아졌다.



문제는 설상가상으로 공적인 업무에서도 사건들이 연속적을 터진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전시회 '더 스퀘어'를 앞두고 미술관 철거 중이었던 동상이 부서지고, 청소부는 바닥에 설치된 작품을 망가뜨린다. 게다가 미술관에서 주최한 공식 행사에서는 행위 예술가 올렉(테리 노터리)이 퍼포먼스를 펼치던 중 유인원에 지나치게 빙의한 나머지 기물을 파손하고, 행사 참석자들을 위협하고 심지어 한 여성을 겁탈하려고 한다. 절정의 순간은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한 홍보대행사의 노이즈 마케팅이 새로운 전시회가 개최되기 전부터 스톡홀름 X-로열 현대미술관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그로 인해 크리스티안은 책임자로서 기자회견을 열게 되면서 다가온다.



2. 무너져가는 크리스티안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현대인의 위선적인 초상


그런데, 크리스티안에게 터지는 연속적인 문제들은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할 뿐이다. 'I MISTRUST PEOPLE'과 'I TRUST PEOPLE' 양 갈래로 나뉜 전시회 입구에서 크리스티안과 두 딸은 'I TRUST PEOPLE' 입구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평소에 자신이 '더 스퀘어' 전시회의 가치를 따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음을 마주하게 되는 출발선을 상징한다. 그 출발선에 서 있게 될 때 비로소 크리스티안의 일상에서 현대인의 나약한 도덕성을 목격할 수 있다. 크리스티안 본인은 난처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선행을 하고 신뢰를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자신의 지갑과 핸드폰을 찾기 위해 일일이 문을 열어 물어보지 않고 헐레벌떡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마구잡이로 각 가구에 편지를 집어넣는 모습은 가난한 계층에는 범죄자가 많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선입견을 품는 잘못된 태도는 투렛 증후군 환자를 조소하는 미술관 관계자와 다른 방문객의 모습에서 재확인된다. 게다가, 크리스티안은 자신 때문에 도둑으로 몰린 한 소년에게 끝까지 사과하지 않다가 결국에 사과의 영상 메시지를 찍는 도중 갑자기 부유한 계층만이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우월의식을 드러내버린다.



방문객에게 미술관에서 사진을 절대로 찍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방문객이 없는 밤에 미친 듯이 어지럽게 날뛰면서 노는 미술관 관계자들의 장면은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한 모순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더 나아가, 누군가 위협을 당해도 그저 무시하고 지나치는 사람들로 널린 출근길 장면과 행위 예술가가 파티장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은 위협하는 이기주의와 방관자로 가득 찬 현대사회를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특히, 후자의 장면은 도망가느라 바쁜 사람, 눈을 피하고 침묵하는 사람, 그리고 뒤늦게서야 나서기는 하지만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사람을 잇달아 보여줌으로써 전시회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여기에 덧붙여, 거지가 도움을 요청할 때는 단호하게 거절하더니 막상 본인이 급하게 도움이 필요해 거지에게 부탁하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은 힘없는 자를 도구로 여기는 가진 자의 이기심을 현시한다.



3. 현대인의 비합리적이고 위선적인 초상을 전시한 <더 스퀘어>의 궁극적인 목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도덕적인 가치관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와 대조적인 행동을 보이는 모습과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 공간을 경계 안으로만 한정 짓는 전시물을 통해 현대인의 모순성을 직간접적으로 폭로한다. 이를 폭로할 때 감독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나열해서 보여준 목적은 비합리적이고 위선적인 본성이 크리스티안과 극 중 인물들 뿐만 아니라 관객 자신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과 연관이 있다. 또한 크리스티안의 기자회견 장면은 전시의 대상을 스크린 밖으로 범위를 확장한다. 기자회견장에서 기자가 던진 질문은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미디어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울상을 짓는 크리스티안을 지켜보면서 웃는 관객의 모습과 결부시킴으로써 관객의 초상까지 그 자리에서 바로 전시해버린다. 그래서, <더 스퀘어>는 나열하는 방식으로 스크린 안과 밖을 통합함으로써 비로소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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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07.24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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