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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Sep 27. 2021

피는 못 속인다

영화 <유전(2018)>

*영화 <유전>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무서운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여름에는 오싹한 공포영화 한 편이면 무더위가 싹 가시는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결코 공포영화를 잘 보는 체질은 아니다. 오히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가늘게 떠서 무서운 장면을 피하려고 호들갑 떠는 유형에 속한다. 그렇지만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이 오히려 적은 알콜로도 취한 기분을 즐기는 것처럼, 필자 같은 겁쟁이들이 공포 장르가 선사하는 효과를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포영화는 단점이 뚜렷한 장르다. 직설적이고 단순한 효과 덕분에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지만, 반대로 1차원적인 스릴에 집중한 나머지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완성도에서 미흡해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감상한 수많은 공포영화들의 스토리가 반죽처럼 섞여 막상 기억에 남는 작품은 몇 되질 않는다. 그중에서 영화 ‘유전’은 편견을 뚫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모로 개성과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니까.




 가족 이야기에 컬트는 거들뿐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영화가 ‘공포’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죽인 할머니와 연관되는 컬트적인 요소가 부각되긴 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던 ‘애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게 된 ‘피터’의 갈등이다. 불편한 모자 관계가 딸 ‘찰리’의 죽음으로 악화되고, 이를 중재하는 남편 ‘스티브’와의 인물 구도가 가장 중요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족 문제의 갈등 구도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현대 사회의 가족 간 소통 및 관계 단절을 소재로 삼아 많은 공감과 함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유전 또한 마찬가지로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큰 뼈대에 컬트라는 살을 붙여 완성된 작품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연출력

 유전은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공포영화의 전유물인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은 줄이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사운드와 캐릭터의 내면 연기에 치중하여 텐션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몰입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자칫 루즈해질 수 있는 단점도 있는데, 감독은 중요한 시점마다 시간의 속도감을 높이는 연출을 활용하여 이를 해소했다. 특히 다음날로 이어지는 전개에서 밤이었던 시간적 배경을 마치 불을 켜듯 1초 만에 낮으로 바꾸거나 다시 밤으로 바꾸는 등, 보여줄 장면은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진행의 탄력을 유지하는 영리함이 보인다.

1초 만에 바뀌어 버리는 낮과 밤

 말리 샤피로

 영화는 말했듯이 어머니와 아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토니 콜렛의 신들린 연기도, 소름 끼치는 파이몬도 아닌 ‘턱, 턱’ 하던  찰리의 틱 소리이다. 비록 말리 샤피로가 연기한 찰리의 분량은 적은 편이지만,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노이로제처럼 들려오는 저 소리는 찰리의 기괴한 표정과 어우러져 큰 공포를 자아낸다. 어린 배우가 잠시의 등장 만으로도 이토록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건 대단한 재능이다. 아직 유전 이후로 작품 출연은 없는 듯 하지만, 성인 배우로도 타고난 역량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유전은 느슨해진 공포 장르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후속작으로 내놓은 미드소마 역시 특유의 연출과 기발한 소재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어떤 작품이 나올지 무척 기대가 된다.

 할머니 - 애니 - 찰리 순서대로 이어졌던 공포 DNA가 앞으로의 아리 애스터 감독 작품에도 꾸준히 유전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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