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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Mar 28. 2022

부부싸움은 칼로 'ㅁ'베기

영화 <나를 찾아줘(2014)>

*영화 <나를 찾아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갈라진 턱은 바람둥이, 거짓말쟁이라는 편견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랑은 다르게 엉덩이 턱을 매력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파티장에서 닉을 처음 만난 에이미는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스윗한 닉에게 마음이 넘어갔지만, 그가 다른 여자들에게도 가볍게 행동하고 다닐 것 같단 우려가 들었던 것이다.  그때 닉은 자신의 턱을 손으로 가리며 ‘진실만을 말할게요.’라 말했다. 벤 애플렉이 저런다면 어떤 여자가 안 넘어갈까. 그렇게 둘은 결혼을 하게 되고, 영화의 시점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닉은 에이미를 꼬실 때보다 살이 훨씬 찐 듯했고, 표정에는 권태와 무료함이 가득했다. 그날은 결혼기념일이었지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설렘이나 강렬한 눈빛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기념일 선물을 준비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닉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한 건 에이미 쪽이었다. 그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그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가 사라졌건 말건 닉은 종일 멍한 표정이다. 형사 앞에서 진술하는 데도 애가 달은 쪽은 오히려 경찰이다. 사건을 맡은 여형사는 닉에게 아내의 혈액형도 모르냐며 그를 꾸짖는다. 한국이었으면 기소될 만한 일이다. 어떻게 부인 혈액형을 모를 수 있지? 하지만 미국에선 아니다. 동료 남자 형사가 알아야 하냐며 묻자 여형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저 멍하고 뭔가를 숨기는 듯한 닉이 의심스러워 윽박지른 것뿐이었다. 경찰은 닉이 가해자인 가능성을 지우지 않고 있다. 아내를 찾는 수배전단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고, 팬이라며 접근하는 여자와도 웃으며 셀카를 찍는 이 남자가 도저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형사뿐만이 아니다. 닉은 사건을 접한 모든 대중들에게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아내를 죽여놓고 스스로 신고했을 거라는 억측들이 TV매체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생산되어 전파를 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모두 닉을 증오하게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스크린 속의 대중들과 똑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닉이 범인이다.’라는 확신 말이다. 단정 짓진 않더라도, 시종일관 답답하게 행동하고 심지어는 어린 내연녀가 있는 닉이 역겹다는 의견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가정폭력범에 임신한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중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 에이미가 지어낸 거짓이다. 감독은 관객들의 감정을 인형처럼 가지고 논다. 닉을 증오하게 만들어 버리곤 에이미를 불쑥 살인자에 편집증 환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는 관객들이 싸이코 에이미를 증오할 차례다. 이 영화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거기에 있다.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지 헷갈리게 만들고, 권선징악 구도를 미완성으로 끝냈다. 마치 어벤저스 시리즈를 인피니티 워에서 마무리하는 느낌이랄까.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고, 영화는 끝을 맺은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과학수사물이 아니다. 글만 쓰던 에이미가 경찰들을 속일 완벽한 현장을 만들어내고, FBI들은 살인을 저지른 그녀에게 연민의 눈빛만 보내며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영화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건 사건의 인과가 아니다. 중요한 건 너무나도 쉽게 견해를 옮기는 대중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비판적 사고 없이 그저 미디어에서 생산하는 대로 정보를 흡수하고 받아들인다. 진실의 여부는 관계없이 확성기처럼 이야기들을 증폭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한심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 속 대중들의 모습이 곧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모습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자극적인 사건을 다루는 인터넷 기사들은 매일 같이 올라온다. 그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댓글들이 달리지만 같은 사건을 다루는 기사에도 하루에 몇 번씩 여론이 바뀌곤 한다. 사건이 중대하고 정치가 개입되어 있을수록 이러한 양상은 더욱 강해진다. 이렇게 되면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사실이야 어떻든 여론을 장악한 쪽이 우세하고, 결국 이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다소 염세주의적인 주제와 결말을 만들어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메시지는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진실의 중요성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닉은 변호사인 테너에게 ‘진실이 내 무기예요.’라 말한다. 그러곤 자신에게 불리한 TV쇼에 나가 진솔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했다. 드라마틱한 연출이 가미됐을 지라도 이야기 자체는 진실되게 느껴졌다. TV로 이를 지켜보던 에이미의 반응이 그 증거다. 그녀의 표정은 닉의 말에 마음이 동한 듯 보였다. 용서의 여지가 조금은 생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이런 과정을 겪는다. 어쩌면 이는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배우자를 사형시킬 계획을 세우고, 누군가를 커터로 그어버리는 일만 빼면 말이다. 서로에게 실망할 일이 생기고, 뜨거운 열정은 달아올랐다 식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파국에 이른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진심’뿐이다. 닉이 끝까지 멍한 표정으로 가식을 연기했다면 대중의 몰매를 맞아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갔을 것이고, 에이미는 결코 돌아오지 않았을 거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부부는 싸울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 위한 싸움이 결코 아니다. 결국은 대화와 공감만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다. 그것들이 없다면 언제나 먼 길을 돌아갈 뿐이다. 결국 진실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루고 속에 담아둬 봤자 곪기만 할 뿐이다. 누가 알겠는가. 진심을 담은 대화 한 번으로 목을 벨 일을 물만 베고 끝낼 수 있을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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