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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Apr 28. 2021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한 원칙주의자들과 때로 직면한다. 그들은 대부분 고집이 세고, 남의 말에 현혹되어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일이 거의 없다. 이는 물론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때로는 규칙 자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규칙이 생기게 된 이유마저 망각해버리고 마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경찰 규범에 여성에게는 절대 무력을 가할 수 없는 규칙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원칙주의자인 한 경찰관이 시내에서 폭탄을 든 여자 테러리스트를 마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규칙을 깨고 그녀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게 맞겠지만, 그가 강경한 원칙주의자라면 규정을 근거로 이를 방관할 수 있다.


 이 경찰관은 원칙에 지배되어 자신의 직업 본분을 잊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는 이러한 원칙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영국군 대령 '니콜슨'이 태국 밀림에 위치한 일본군 포로수용소로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투항하며 시작된다. 그는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수용소 책임자 '사이토' 대령과 마찰을 빚는다. 기한 내에 다리를 건설하는 임무를 맡은 사이토는 포로 장교들에게도 노동을 강요하지만, 니콜슨은 제네바 협약을 근거로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이토에게 항의하는 니콜슨


 하지만 니콜슨이 간과한 것은 사이토 또한 엄청난 원칙주의자라는 점이었다. 사이토는 그간 장교들도 예외가 없었고, 다리 건설이 한시가 급하다는 이유로 니콜슨에게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을 시도한다.   일본군의 원칙주의와 철저한 위계질서는 예로부터 유명한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군인은 스스로 할복하여 책임을 지는 관습이 대표적이다.


 다리 건설에 혈안이 된 사이토는 니콜슨을 포함한 영국군 장교들을 감옥에 수감시키기에 이른다. 포로들은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적군의 다리 건설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으므로 작업은 도무지 진행되질 않는다.

 니콜슨은 위에서 항복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이유로 수용소 탈출이 군법에 어긋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는 사이토의 은은한 회유에도 불구하고 찜통 같은 감옥에서 한 달을 지독하게 버티며 제네바 협약에 근거한 원칙을 지켜낸다.


 이런 상황에 속이 타들어 가는 건 오히려 사이토 쪽이었다. 다리 완공 일자는 다가오고, 작업은 도무지 진척이 없어 자신이 할복해야만 하는 순간이 임박해 왔다.

 결국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니콜슨을 석방한다. 죽음보다는 원칙을 깨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이토와의 심리전에서 완승을 거둔 니콜슨은 단번에 영웅이 되었고, 영국군의 사기는 올라갔다. 너무 분한 나머지 방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던 사이토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니콜슨을 석방하고 분통이 터지는 사이토




 니콜슨이 석방된 시점부터 재밌는 전개가 이어진다. 포로의 역할로서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원칙에 사로잡힌 니콜슨은 부대를 이끌어 전심전력으로 적군 다리 공사에 매진했다.

 애초에 감옥에 들어간 이유인 장교들 뿐 아니라 부상병까지 동원하여 공사에 매진하는 니콜슨의 모습을 본 의무관 '클립턴'은 상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서구 문명의 위대함을 보여주겠다는 자존심으로 일을 벌이는 니콜슨과 그 부하들의 모습은 가히 광적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일본군과 경쟁까지 벌이며 공사를 진행한 끝에 다리는 결국 근사한 모습으로 기한 내에 완공된다. 사이토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실감한 채 자괴감에 빠지고, 니콜슨은 승리감에 도취하여 영국군이 만든 다리라는 팻말까지 박는다.

 적군의 전쟁 물자 이동에 큰 공을 세워버린 니콜슨, 결국 투철한 원칙주의가 그를 완전한 이적행위로 이끌었다.


다리에서 회상에 잠긴 니콜슨




 원칙이 만들어진 이유를 망각한다면, 그 의미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니콜슨은 영국군 특공대가 폭탄을 설치했음을 깨닫고도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포로의 역할에 심취한 나머지 조국을 배반한 것이다.

 끝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직접 폭탄을 점화시키긴 했지만, 그가 이를 인지하는데 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로 인한 무의미한 희생이 따랐다.


 심각한 부조리의 드라마를 감상하면서, 필자는 본인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는 체벌이 허용되던 시기로, 많은 사들이 지도라는 명분으로 학생들을 때리곤 했는데, 매의 범위가 확장되고 점점 감정이 섞인 구타를  당하면서, 더 이상 교육의 수단으로써 용되는 체벌의 수준이 아님을 느꼈다.


 필자는 아이들을 때리면서 웃고 있던 교사의 얼굴을 아직 잊을 수 없다. 모범생이 아닌 오직 피해자만을 양산하던 당시의 교육 방식은 분명 본래의 취지를 잃 것이다.

 하지만 체벌은 암묵적인 교칙이었고, 어떠한 학부모도 나서서 불만을 표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니콜슨의 경우, 그는 군인으로서 명령을 어기지 않았고, 모든 상황에서 적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주어진 임무를 잘 시행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원칙을 따르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의심을 했어야만 한다. 아이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방법이 잘못된 방법이라는 사실이 결국 증명되었듯, 믿고 따르던 신념이 잘못된 경우도 세상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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