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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May 07. 2021

컬러로 보는 그린 북

영화 <그린 북(2018)>

*영화 <그린 북>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모의 콤플렉스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게 가리곤 한다. 여드름이 나면 패치를 붙이기도 하고, 눈썹이 모자라면 문신을 하기도 하며 필요한 경우라면 성형을 해서라도 단점을 커버하거나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수술로도 도저히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인간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타고난 피부색이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듯, 정해진 인종 또한 결코 바꿀 수 없다. 동양인으로 태어난 게 싫어 서구적인 생김새로 성형을 하고 금발로 머리를 물들여도 완벽하게 서양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미국에 거주하는 재미한인 자녀들은 그곳에서 태어났기에 정서적으로는 완전히 미국인이지만, 타고난 외형적 특징 때문에 겉은 노랗고 안은 하얗다는 의미의 멸칭  '바나나'로 불리며 차별을 겪기도 한다.


 1960년대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 북'의 '셜리' 또한 흑인으로 태어나 백인들의 교육과 문화를 배우며 자라 위와 같은 정체성의 갈등을 겪은 인물로 묘사된다.





 셜리는 노예로 무시당했던 흑인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남부로 콘서트 투어를 떠난다. 하지만  아무리 명성이 자자한 피아니스트라고 한들, 흑인으로 태어난 셜리는 백인들의 문화와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없는 처지였다.

 이는 대저택에서 백인들의 박수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친 셜리가 집주인에게 화장실 위치를 묻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는데, 백인들은 그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하는 동시에 인종적 구분은 더욱 명확히 했다. 그들이 셜리에게 안내한 화장실의 위치는 럭셔리한 내부가 아닌, 흑인 하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더러운 뒷간이었던 것이다.


흑인들에게 허용되는 화장실


 영화는 이런 식의 차별적 에피소드를 지속해서 나열한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점은, 피부색 때문에 식당에 입장 조차 불가능한 셜리와는 달리, 이탈리아계 이민자 계층이었던 '토니'는 백인과 닮은 외형 덕분에 무리 없이 식당에 들어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토니 또한 다른 백인들과 시비가 붙었을 때, "너 역시 속은 깜둥이야."라는 모욕을 듣는 장면에서 이탈리아계들 역시 차별을 당하는 처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단순히 피부색의 차별뿐 아니라 계층 별로 세밀하게 짜인 차별이 존재했음이 드러난다. 이는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미군 간부가 이탈리아계 병사를 인종 차별하는 장면과도 연관된다.

 



 앞서 나열한 컬러의 대비 외에도, 그린 북은 다채로운 컬러를 나열하며 주인공들의 사회적 위치와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셜리와 절친이 되는 토니는 사실 은연중에 흑인을 무시하는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초반에 자신의 집에 들른 흑인 배관공이 쓴 물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런 토니를 상징하는 컬러는 바로 '레드'다. 그는 자신이 일하던 클럽에서 빨간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는데, 마찬가지로 붉은색으로 꾸며진 백인 상류층의 클럽에서 봉사하는 그의 상황을 잘 드러낸다.

 왜 붉은색이었을까? 문제의 해결에서 피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토니의 폭력성과도 연관이 되지만, 그린 북이 기득권과 연계된 색상으로 레드를 정했다는 점에서, 권력에 편승하려는 토니의 상황을 미국을 대표하는 보수정당인 '공화당'의 컬러를 차용하여 묘사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초반 토니의 컬러 '레드'와 공화당의 로고

 

 하지만 토니는 남부 투어가 진행될수록 자신과 정반대인 듯하면서도 미묘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셜리와 우정을 쌓아가며 태도가 점진적으로 변해간다. 완전히 반대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셜리를 이해하면서부터 셜리가 가진 '컬러'로 점점 녹아든 것이다.

 그렇다면 셜리가 가진 색은 무엇이었을까? 신호등에서 빨간불이 있다면 그와 정확히 보색이 되는 색, 바로 '그린'이다.


 초록색은 셜리가 가진 이상을 대표하는 컬러로 볼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 북'은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 여행객을 위한 책으로, 당시에는 유색인종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나 식당의 정보가 적힌 일종의 가이드다. 흑인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될 이상을 꿈꾸고 인종 차별이 심한 남부로 투어를 떠난 셜리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재로 이용되었고, 그 표지는 이름에 걸맞게 초록색이다.

 또한 녹색이 자라나는 초목의 새싹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흑인 인권 운동의 초동이 일어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도 일치한다. 둘을 태우는 차량의 색상이 푸른 톤의 청록색이었다는 점 역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필자는 보았다.


토니가 운전하는 셜리의 차량과 그린 북




  그린 북은 인종차별이 매우 심했던 미국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그로부터 거의 60년이 지난 시점에 개봉한 이 영화는 여러 인권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많은 인색 개선을 이룬 요즘에도 여전히 인종 문제에 관한 경각심과 교훈을 전달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인종 차별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과 흑인들의 처지를 돌아보는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미국에서 일어난 일명 '아시아인 혐오 범죄' 또한 많은 비율로 흑인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차별을 당하던 처지에서 더욱 약한 자들을 겁박하는 태도는 분명 옳지 못하고, 흑인 인권 신장 요구의 당위성마저 흐리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인간이란 동물과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르고, 동족이라도 생존을 위해 밟고 올라서는 것이 본능일까?

 그린 북은 따뜻한 인류애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모순적으로, 어쩌면 모든 인권 운동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명찰을 바꾸는 과정을 중재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회의가 들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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