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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Apr 03. 2021

폭력은 시대를 타고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고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훈련, 끝없이 이어지는 행군, 열악한 환경과 맛없는 식사 등, 수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대다수의 전역자들은 무엇보다 가장 군생활을 힘들게 만들었던 건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태평양전쟁 당시 하와이에 주둔 중이던 미군의 모습을 담은 영화다. 물론 진주만을 기습하는 일본군과의 전투 장면 또한 다루고 있지만, 총분량의 약 70%는 적군과의 전쟁이 아닌, '아군'과의 전쟁을 담고 있다.

 온통 진급에만 혈안인 무능한 지휘관, 홈즈 대위가 관리하는 소총부대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프루잇 이병이 전입하며 빚는 갈등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등 나팔수였던 프루잇은 '개인적인 문제'로 하와이에 주둔 중인 홈즈의 소총부대로 전입하게 된다. 부대원들을 복싱 대회에 내보내 입상시켜 진급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는 홈즈는 선수였던 프루잇에게 출전을 요구지만, 프루잇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는 복싱을 할 수 없는 '사연'을 갖고 있었는데, 단체가 우선인 군대에서 그의 개인적인 문제 따윈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홈즈의 부사관들은 지독하게 프루잇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온갖 부조리를 가하며 반항하는 프루잇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군대라는 곳이 가장 답답한 이유가 이것이다. 군에서는 결코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지 않는다. 그저 위에서부터 해오던 일, 룰이라고 정해진 것만 지킬 뿐, 누군가 참신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그자는 곧 '관심'을 받는 존재가 된다.


 프루잇의 경우, 그는 전 부대에서 복싱 연습 중 실수로 자신의 동료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사회에서 이 정도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에게 다시 복싱을 시키게 할 명분이 있을까?

 하지만 군대는 권력과 부조리로 비이성을 실천하는 데 매우 특화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에게 복싱을 강요하던 상급자들은 본인들의 행동이 비인간적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까...? 상식에 어긋나지만 명령이나 전통이기에 오직 따라야만 하는, 그게 바로 군대라는 조직의 현실이다.




 영화의 모든 내용을 요약하자면 너무 길어진다. 워든 중사와 홈즈 대위 아내와의 정분이 큰 비중으로 다뤄지지만, 매우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인간 중독'이라는 영화를 중간에 꺼버린 기억이 있어서 일까? 필자는 둘의 사랑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위태로운 프루잇의 상황과 꾸역꾸역 참아내는 그의 태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선, 특이하게도 흑인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영가인 블루스 음악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술에 취한 프루잇과 그의 동료들이 기타와 뷰글 마우스피스로 마치 자유를 요구하듯 블루스를 연주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왜 영화는 백인들로 하여금 블루스를 연주하게 만들었을까? 동일한 사건을 다룬 '진주만'을 보면 분명 흑인 병사가 나오는데,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선 단 한 명의 흑인도 나오지 않다.

 필자는 할리우드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인 1950년대는 매우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이 심해 흑인 배우가 스크린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단순히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뿐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진 실제 시기까지 고려하여 바라보면 가려진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당사자는 흑인이 아닌 이탈리아 출신 병사 '마지오'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의 이탈리아 계 사람들은 백인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는 이탈리아인을 부르는 멸칭인 'Wop'으로 불리며 모욕을 당한다.

 이는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그린 북>도 잘 드러나는데, 이탈리아 출신 주인공 토니가 백인들에게 "너도 속은 깜둥이야."라고 모욕을 당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지상에서 영원으로'가 현대에 만들어졌다면 인종차별을 당하는 당사자는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을까?

 당시의 흑인 인권의 위치는 스크린에 나와 모욕을 당하기에도 못 미칠 만큼 낮았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창에 간 마지오가 간수에게 죽도록 얻어터지곤 돌아오고, 결국 죽어버리자 프루잇은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치고 만다. 주둔지 시내에서 마지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간수를 만나자마자, 그는 복수의 칼날을 휘둘러 그의 목숨을 빼앗았다.


 전우의 원수를 갚은 프루잇은 그대로 탈영을 하고, 클럽에서 만난 애인의 집에 머무는 와중에 일본군의 진주만 습격이 시작된다.

 무슨 연유에서 일까? 이미 살인까지 저지른 그가, 자신을 핍박하고 괴롭힌 인간들 뿐인 부대로 느닷없이 복귀를 시도한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프루잇은 맨몸으로 경비가 삼엄한 해변 근처를 어슬렁 거리고, 얼빠진 그 모습을 본 보초병들이 일본군으로 오인해 사격을 가하는데...

 결국 차갑게 식어버린 프루잇의 시체를 바라보며, 워든은 "조금만 (자존심을) 굽혔으면..."이라 말하며 탄식을 한다.


 영화는 내내 군대라는 조직을 너무 까기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마지막 대미를 프루잇을 어색한 참 군인으로 만들며 장식했다. 이미 상급자를 죽이고 탈영한 그가, 아무리 워든 중사가 조금 잘해줬다고 한들 다시 부대로 돌아갈 이유가 있었을까? 필자는 그의 죽음이 낳은 개연성에 의문을 느꼈다.


 무엇보다, 얄미운 상관을 때려눕히는 프루잇의 화려한 복싱 실력과 루이 암스트롱 뺨치는 트럼펫 실력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보다 '왜 전역하고 권투 선수나 블루스 연주자가 되지 않고, 군인이라는 직업에 집착할까?' 하는 의구심이 더욱 지배적이었다.

 결말에서 필자가 느낀 건, "이 영화는 군의 부조리함을 다루는 동시에 '조국이 위험할 때 언제든 준비가 된', 혹은 '시련에도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이라는 애국적 메시지를 함께 보여주는가."였다.




 만들어진지 약 70년이 된 이 영화를 현대의 관점에서 제대로 평가하기엔 무리일지 모른다. 부정적인 면을 몇 꼬집었지만, 여러 인물이 등장하면서도 각자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잘 이어지면서 긴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안배된 완성도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가 현대판으로 다시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떤 그림이 될까? 억압을 주고받는 존재들의 모습과 역할이 어떻게 변할지... '프루잇 역할이 흑인 배우에게 가지는 않을까?' 하는 재미난 상상을 해본다.

 이야기는 언제나 돌고 돌기를 반복하는데, 문제는 늘 '사람'인 듯하다.

 군생활도, 영화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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