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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Mar 27. 2021

바보짓을 해야 바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요즘 인터넷 세상은 어지럽기 이를 데가 없다. 연예인들의 자극적인 학폭 이슈부터 시작해서, 유튜브의 다양한 콘텐츠들이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세상에 나옴으로써 생기는 문제들과 이를 퍼 나르며 생산되는 인터넷 기사들의 대환장파티로 조금만 보고 있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어쩌다 이심해졌을까?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활동의 제약을 받고 있는데,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분노와 피로도가 끊임없이 중첩되고 있는 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정말 바보같이 순수한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어 졌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영화... 그렇게 사춘기 시절에 처음 보았던 명작,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꺼내어 보기로 결정했다.




 영화는 포레스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된 이후까지의 삶을 서사적 구조로 나열한다. 그의 성장기 시절은 현재 시점의 청년 포레스트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행인들에게 하는 설명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IQ가 평균을 한참 밑도는 속칭 '저능아'인 포레스트 검프가 자라온 배경을 자세히 나타내고 있다.


 '포레스트 검프'는 포레스트 개인의 성장을 당시의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보여주는데, 시대적 배경인 6~70년대의 미국은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자유를 노래하며 주로 마약을 하는 히피들이 기승을 부리고, 바다 건너에는 베트남과 전쟁 중이었으며 많은 정치인과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유명인들이 암살되거나 시도를 당하는... 혼란한 시대에 포레스트가 직접 연루되어 오직 그의 시각으로 아무런 편견 없이 서술되는 상황들은 비교적 가볍고 코믹하게 그려진다.


Forrest Gump meets John Lennon




 포레스트는 자신을 부풀려 보이거나 포장하는 일에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참전영웅으로서의 명예와 새우잡이 어선 12척과 애플 주식을 소유한 부자로서의 명성을 뒤로하고, 정부에서 대강 던져준 잔디 깎기 일을 즐겁게 하는 포레스트는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순박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거짓 이력을 적고, 적은 노력으로 큰 성취를 이룬 양 꾸미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사뭇 비교되어,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학력을 위조하거나 편법으로 받은 석박사 학위를 내세우다 걸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진실이 밝혀질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유식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랬던 것이다.


 이러한 욕구는 비단 유명인들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대접받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는 인간의 매우 기본적인 욕망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에 쌓이고 있는 막대한 양의 학위 논문들이를 뒷받침한다.


부유한 사회에서는 손으로 일할 필요가 없고 정신적 활동에 몰두하지. 대학도 점점 많아지고 그에 따라 학생도 많아져.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논문 주제가 있어야 해. 그런데 어느 것에 대해서나 논문을 쓸 수 있으니 주제는 무한대로 널려 있어. 그렇게 해서 낸 원고 뭉치는 자료실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것은 무덤보다도 쓸쓸하지. 만성절이 되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Kundera,1984, p.174)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들은 포레스트 검프가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어떻게 바보가 전쟁에서 동료들을 구하고 살아 돌아오며, 어떻게 바보가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성공시키고, 어떻게 바보가 진정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를 통해 감독은 단순히 지능이 낮은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 바보짓을 해야만 진정한 바보라 말하고 있다. 포레스트는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바보짓을 하지 않았으니, 결론적으로 그는 바보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바보라고 물을 때마다, 포레스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Stupid is as stupid does.
바보짓을 해야 바보죠.


 포레스트가 바보가 아니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로 그가 아들과 처음으로 조우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제니가 몰래 낳은 포레스트 2세와 마주하면서, 포레스트는 가장 먼저 제니에게 아이가 자신처럼 지능이 떨어지지 않는지를 물었다. 필자는 해당 장면에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껏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바보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는 자신의 지능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Forrest Gump finds out he has a son


 자기 객관화는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우리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을 무척이나 두려워해서, 차라리 꾸며진 자신의 모습을 진실이라 믿고 살아가길 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세가 심해지면 흔히들 말하는 '허언증'에 걸린 사람이 된다.

 그들이 지능이 부족하여 허언증에 걸렸을까? 오히려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과 기억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자신을 열심히 꾸며내느라 정작 자기 자신이 누군지는 끝내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자신의 IQ가 남들보다 크게 뒤처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포레스트지만, 어린 시절 용기를 북돋아주던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그는 훌륭하게 자랐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며, 자기 객관화까지 완벽하게 된 그를 어찌 바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혹자는 이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의 것이며,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새우잡이로 큰돈을 번 것이나, 그 돈으로 댄 중위가 노키아 주식이 아닌 애플 주식을 산 일 같은 건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행운인 것은 맞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도 버마의 전사나 제니가 불치병에 걸리는 일 같이, 본인의 힘이나 운으로는 바꿀 수 없는 비극적인 일들도 분명히 있었다. 어찌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건 개개의 변수가 아닌, 삶을 대하는 포레스트의 태도,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세상엔 분명 개인의 힘으로는 바꾸지 못하는 일이 존재한다.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순전한 '우연'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을까? 왜 직접 겪지도 않은 인터넷의 일에 불편함을 느끼고 화가 나기도 했을까?그 이유를 모르는 건 필자가 바보라서가 아니다.

 그저, 어떤 일은 알 수 있고, 어떤 일은 알 수 없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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