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역사왜곡을 참 잘한다. 어떤 의미인고 하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통해서 신나게 역사를, 현실을 마음껏 바꾼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로 이미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소환해 쥐어 팬다. 최고의 영화광, 영화지상주의자가 아닐 수 없다. 영화로 나치를 두들겨 팼던 타란티노는 이번엔 찰스 맨슨 패밀리를 두들겨 팼다. <바스터즈>에서 불타 죽은 히틀러가 있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는 살아남은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가 있다. 나치, 찰스 맨슨 패밀리처럼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해도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을 집단을 고른 점에서 타란티노의 영악함이 또 느껴진다. 타란티노가 대중적인 감독이라 느껴지는 지점은 역설적이게도 그런 집단을 골라 마구잡이 B급 난장 액션을 펼칠 때다. 살짝 얄밉기는 해도 미워할 수가 없다. 역사를 두들겨 팰 재료로 접근하고 쓴 티가 나지만 이미 답이 내려진, 암담한 사실들을 전복하는 상상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타란티노에게 홀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를 상징하는 장소들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집은 ‘영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스파게티 웨스턴에 출연 제의를 받는 한물간 현실에도 할리우드에 사는 배우라고 체면을 차려줄 최후의 보루 같은 집, 무려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영화배우 샤론 테이트가 사는 집의 옆집. 세상에서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타란티노의 최후의 영화로 가기 직전의 영화란 점이 릭의 집과 묘하게 겹친다. 그래서 찰스 맨슨 패밀리를 응징하는, 이미 벌어진 현실을 왜곡하는 영화적 허용은 바로 릭의 집에서 펼쳐진다. 감히 별 계획도 없이 무작정 릭의 집, 영화 속으로 침입한 찰스 맨슨 패밀리를 영화는 가차 없이 때려잡는다. 약에 취한 클리프(브래드 피트)도 잠에 취했다 깬 릭의 아내도 영화를 상징하는 릭의 집에서는 결코 당하지 않는다. 클리프가 히피걸(마가렛 퀄리)을 데려다준 농장 또한 한 때는 영화 촬영지였다. 그렇다. 영화광 타란티노에게 신성한 영화 촬영지를 점령한 맨슨 패밀리가 응징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농장에서 고작 한 명만 코피를 터뜨린 것을 두고 그것도 많이 봐준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현실을 맥거핀으로 삼는 악동 타란티노
넷플릭스 드라마 <마인드 헌터>에서 찰스 맨슨을 연기했던 배우를 똑같이 소환하더니 이렇게 홀대할 줄 상상도 못 했다. 맨슨을 복수할 대상이 진즉에 이사 간 줄도 모르는 어설픈 사람으로 잠깐 등장시키더니 후에는 아예 얼굴도 못 비추게 하면서 영화에서 지워버린다. 희대의 악마가 영화에서 맥거핀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타란티노는 그가 사랑하는 영화에서 찰스 맨슨에게는 목소리를 낼 기회도 주지 않는다. 샤론 테이트 또한 다른 의미에서의 맥거핀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평온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듯한 그녀는 훗날 비극을 맞이할 거라 짐작하는 관객들에게 안타까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샤론 테이트의 집은 찰스 맨슨 패밀리가 침입하기 좋게 너무 개방적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평온하게 잠든 샤론, 그러나 동시에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든 것인 샤론을 비춘다. 샤론이 일어나 춤을 추는 때에는 햇살이 샤론을 따뜻하게 감싸지만 동시에 그 햇빛이 통과해 들어오는 창으로 누군가도 들어오기 좋다는 불안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또한 샤론에 집에는 계속 외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샤론의 집은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듯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내뿜고 그것이 한없이 평온한 샤론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와중에도 내 마음 한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샤론의 비극이란 현실은 맥거핀이었다. 영화 속에서 샤론은 끝까지 살아 숨 쉬고 웃는다. 타란티노가 참 지독한 악동이다 싶었던 때는 찰스 맨슨 패밀리의 침입 사건이 모두 끝이 나고 마지막 시퀀스에 릭이 샤론 테이트의 집으로 가는 모습을 비출 때에 불안한 느낌의 음악이 흐를 때였다. 어둠 속에서 릭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 묻는 제이(에밀 허시)의 모습도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촬영된 듯하다. 음악은 샤론 테이트와 릭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눌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경쾌하고 평온하게 바뀐다. 타란티노는 역사와 현실을 비틀며 놀리는 것만큼이나 관객들을 긴장시키며 지독하게 놀린다.
릭 + 클리프 = 타란티노
수다만 떨어도 신이 났던 타란티노의 전작들에 비해선 지루할 수 있는 영화다. 이소룡을 그린 장면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샤론 테이트와 찰스 맨슨 패밀리 사이의 허구 캐릭터들, 릭과 클리프를 보는 맛이 있다. 특히 클리프를 연기하는 브래드 피트가 엄청난 매력을 뽐낸다. 배우 그 자체의 매력도 있겠지만 영화가 쿨한 부분은 모두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클리프에게 몰아준 덕도 큰 듯하다. 클리프가 쿨한 멋짐을 담당한다면 릭은 인간미를 담당한다. 릭은 한물간 자신의 처지에 우울함을 느끼다가도 연기 잘한다는 칭찬에 또 헤벌쭉하기도 한다. 클리프와 릭은 타란티노 속의 두 자아를 보는 듯하다. 자신이 만든 영화에 자신 있는 나르시시스트의 면모와 동시에 은퇴를 앞둔 감독의 멜랑콜리함이 두 캐릭터로 분리돼 표현된 느낌이다. 세계적인 거장 타란티노가 한물 간 릭에게 누군가의 더블인 스턴트맨 클리프에게 자신을 투영했을 거라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영화로 세상을 구할 순 없어도 세상을 속 시원하게 해 줄 순 있다는 듯 허구의 두 인물, 타란티노의 두 자아인 듯한 릭과 클리프가 맨슨 패밀리를 응징하는 것은 영화광답다. 허구가 현실을 이기는 방법. 현실을 잊지 않으면서도 놀리고 비틀고 뒤집어서 그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법. 그 방법이 영화라고 타란티노는 9번의 영화를 통해 9번 반복해 말해왔다. 통쾌했던 전작들과 달리 참으로 뭉클해지는 9번째 영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쓸쓸한 뒷맛이 남는다. 옛날 옛적 할리우드엔 타란티노란 영화감독이 있었다,라고 회상하는 일은 좀 더 미뤄졌으면 좋겠다. 타란티노의 막무가내 역사왜곡을 허용했던 것처럼 다음 영화만 만들고 그만두겠다던 그의 번복도 허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