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수잔나 공주가 납치당한 국가 초유의 상황. 어떠한 단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잔나 공주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총리 마이클이 16시 정각에 돼지와 성관계하는 영상을 생중계할 것. 국가 초유의 상황과 인생 초유의 상황을 동시에 맞게 된 마이클 총리. 더 큰 문제는 전 국민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시작 3분 만에 든 생각은 '이거 쌔다'. 소재 자체가 갖는 역겨움이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하는 질문으로 이어지며 끝날 때까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중에는 왜 돼지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장면이 존재하다만 사실 돼지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납치범의 요구사항에 돼지 대신 다른 동물이 대입된다고 해도 그 역겨움의 정도에 실질적인 차이는 없을 것이다. 요점은 납치범의 요구사항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역겨운 행위라는 사실이다. 동시에 상기의 행위를 모든 사람이 지켜본다는 사실은 막대한 수치심 역시 수반한다.
마이클 총리는 자신의 인간적 삶과 수잔나 공주의 삶 중 하나를 택일해야만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막대한 기회비용이 뒤따른다. 납치범을 검거함으로써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일련의 실패가 계속됨에 따라 철저하게 좌절된다. 이와 같은 요소들로 인해 이번 에피소드가 절체절명에 직면한 총리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이야기는 총리의 딜레마를 위시한 대중의 고의성 다분한 악랄함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에피소드는 '대중 성악설'을 대전제로 삼는다.
납치범이 요구사항을 총리 개인에게 전송하지 않고 유튜브에 공개한 것은 상황의 통제권을 총리가 아닌 대중에게 쥐어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공개가 되는 순간 다운로드와 복제를 통해 모든 종류의 SNS에 전파되기 때문에 최초 영상을 삭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중의 악랄함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확장성을 통해 적극 실현될 수 있다. 한 시민이 테스크포스에서 실행 중인 비밀 작전을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에 게시하자 이를 알게 된 납치범이 경고의 표시로 공주의 손가락을 잘라 방송국에 보내는 사건 역시 같은 맥락인 것이다.
총리는 계속해서 여론의 동향을 파악한다. 납치범의 요구는 말도 안 된다며 총리가 응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던 대중들은 공주의 절단된 손가락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돌연 태도를 바꿔 총리에게 응할 의무가 있다고 답한다. 공주의 생존을 바라는 대중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을 하지만 이러한 정서가 총리에게 납치범의 요구에 응하라고 강압할 권한으로 이어지기에는 도덕적, 논리적 오류가 있다. 결과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총리를 강제로 성관계에 임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요구는 사실상 폭력성 그 이상의 것을 갖는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원점에는 언론이 있다. 정부의 협조에 보도 금지를 따르던 언론은 해외 언론사에서 보도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특종을 준비하고 급기야는 한 기자의 만행으로 테스크포스의 비밀 작전에 위해를 가할 뻔하기도 한다. 언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당연히 주장하지만 납치 사건과 같이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돼 보안을 요하는 상황에서는 보도 유예를 할 엄중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에피소드는 언론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이와 같은 악재를 야기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대중의 요구는 점차 거세지고 모든 시도가 결렬되는 가운데 총리는 납치범의 요구사항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16시 정각까지 몇 분 전. 이를 지켜보려고 모인 대중들의 희희낙락한 모습과 녹화와 촬영을 엄정하게 금한다는 경고문에도 이를 무시하는 모습은 총리에게 주어진 요구사항만큼이나 부당하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납치범이 요구사항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총리의 선택은 사실상 공주나 대중보다는 가족을 위한 것으로 변모하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 물음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에게는 과연 그럴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래도 되는가.
한 줄 평: 소재의 참신함을 주제의식과 완결성이 미처 따라오지 못한다
참신함 & 흥미도: ★★★☆
완결성 & 소구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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