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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un 08. 2019

[블랙 미러 시즌 1] ep2. 핫 샷

조지 오웰 <1984>로부터의 현대식 변주

자전거 페달 동력을 통해 생성된 에너지로 유지되는 미래사회. 사람들은 페달을 밟은 만큼 가상 화폐를 지급받는다. 치약마저도 가상 화폐를 지불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페달을 밟아야만 한다. 억압과 혐오가 판치는 이 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지상 최대의 오디션 '핫 샷'에서 우승하는 것뿐이다. 우연히 '아비'의 노래를 듣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빙'은 그녀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핫 샷 티켓을 선물한다.     



 

 이 이야기는 너무도 익숙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제공되는)개인실의 모든 벽을 메운 거대한 스크린은 그들에게 유희를 제공하는 도구이면서 그들의 체제 전복 욕구를 거세시키고 통제시키는 수단이다. 그에 더해 체제 선전 영상의 경우 볼륨을 조정할 수는 있지만 끌 수는 없다는 설정은 <1984> 속 등장하는 '텔레스크린'의 개념과 명확하게 일치한다. 이처럼 인권마저 말소시키는 억압의 세상 속에서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끼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과적으로 그 사랑으로 불행을 맞이한다는 결말에 대해서도 두 작품은 교집합을 갖는다. 

 이번 에피소드는 '개인은 결코 체제를 전복시킬 수 없다'는 <1984>의 가설에 현대사회에서 야기되는 '물질주의', '외모지상주의', '성 상품화' 등의 윤리적 문제점들을 보태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그 이야기는 현실을 최대치까지 극화한 까닭에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하다. 가령 광고를 스킵하는 일에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페달을 더 이상 밟지 못하게 되면 그 가치를 인정받는 못하는 상황이라던가, 외형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심지어는 조롱마저도 비일비재 일어나는 상황 등은 지나치게 극단적이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이전 핫 샷의 우승자가 부른 ABBA의 'I have dream'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건 그 자체로 역설처럼 느껴진다. 이 세상은 애당초 꿈(=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빙과 아비를 통해 증명된다. 아비의 노래를 들은 심사위원들이 그녀에게는 성적 매력이 있다며 포르노 배우를 권유하는 장면은 이 세상 속에서 희망이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유약하고 체제 순응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는 성상품화의 극단화된 형태이기도 하다. 

 망설이는 아비에게 'do it'이라고 거듭 종용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지난 에피소드 <공주와 돼지> 속 대중과 마찬가지로 악랄하다(<블랙 미러>에서 개인은 대중의 그림자 뒤에 숨는 순간 윤리적 감각을 상실하는 듯한데 이는 현대사회에 대한 일종의 경종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하튼 포르노 배우를 선택한 아비가 환각성 약에 잔뜩 취해 광고 속에서 '꿈만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에피소드 초반에 계속해서 등장했던 I have dream을 이번 에피소드가 블랙 유머식으로 대놓고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비에 대한 죄책감 내지 심사위원(=체제)에 대한 분노로 핫 샷에 나가기로 한 빙이 돈을 모으기 위해 악착 같이 페달을 밟는 장면들은 체제를 비난할 수 있는 위치 혹은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체제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번 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는 그렇게 돈을 모아 무대에 선 빙이 자신의 목에 유리 파편(아비의 광고를 보다 못한 빙이 스크린을 깨트려 생긴 파편)을 겨누고 체제에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포장하고 유린할 뿐이라며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다.

 이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보는 이를 무력하게 만든다. '핫 샷이 시작된 이래 가장 진심 어린 무대'였다며 긍정하는 심사위원의 모습은 견고한 체제가 비난에 유려하게 대처하는 최적의 방식을 보여준다. 비난마저도 하나의 퍼포먼스로 품어버림으로써 무력화시켜버리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빙에게 주 2회 30분간 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송 시간을 마련해준다. 완벽한 비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중파에서 '시청자 리포트' 방영이 가장 유사한 사례일 것이다. 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방송국도 핫 샷도 의무를 다한 셈이니까 문제는 없다.

 체제의 전복을 꿈꿨던 빙은 구성원들이 체제에 순응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기득권으로 탈피했다. 본연의 꿈을 상실한 채 체제에 굴복한 빙과 아비를 보며 <1984>가 떠오르기 전에 과거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때 자신이 가장 환멸 했던 기득권이 돼 같은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한 줄 평: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한 기존 텍스트들로부터의 디스토피아적 변주 그러나 기존 텍스트들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참신함 & 흥미도: ★★★

완결성 & 소구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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