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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Feb 27. 2018

'너'의 의미 그리고 '행복'의 의미

<밤에 우리 영혼은> 원작&영화 리뷰

 '밤에 우리 영혼은'이라니. 얼마나 센치하고 낭만적인 제목인가. 밤은 때로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보름달처럼 감성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밤하늘 아래 우리는 모두 하나의 영혼으로만 존재한다. 그 평등한 순수함 앞에 일상에서 우리를 제약하는 모든 것들은 잠시 힘을 잃는다. 오늘 소개할 작품 <밤에 우리 영혼은>은 이러한 메시지가 응축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지나. <밤에 우리 영혼은>은 일상의 소재를 일상적이지 않은 화법으로 얘기할 뿐이다.




원작의 화법: 간결하고 깔끔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제목: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

작가: 켄트 하루프

초판: 2016년 10월 5일

분량: 196p


<밤의 우리 영혼은>의 매력 포인트 1: 켄트 하루프의 필력 & 스토리


 켄트 하루프의 작품이 처음인데 몇 챕터 넘기기 전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글을 굉장히 간결하고 깔끔하게 쓴다. 전체적인 내용 구성도 그렇다. 굳이 스토리를 꼬아놓려고 하지 않는 느낌. 하지만 가볍지는 않다. 적당히 무게감도 있고 메시지도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무엇보다 묘미는 스토리 아이템에 있다. 켄트 하루프는 첫 챕터에 구구절절 캐릭터들의 사연을 설명하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  섹스는 아니에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듯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남편을 잃고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낸 일흔 살의 애디가 마찬가지로 아내를 잃고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낸 동년배의 루이스를 찾아가 제안을 한다. 성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함께 누워있으며 외로운 밤을 견뎌내자고. 애디가 루이스에게 찾아간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가 좋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잠시 망설이지만 애디의 제안을 수락한다.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긴장은 있지만 두근거리는 설렘은 없다. 사실, 두 사람도 시작은 했지만 이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는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절반짜리 동거가 시작된다. 켄트 하루프가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공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점은 이 공식을 노인들의 삶에 적용시켰다는 것이다. <밤에 우리 영혼은>의 장르를 로맨스라고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완전히 동떨어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류의 장르에서 노인들은 거의 소외돼왔다. 많은 작품들 속에서 젊은 주인공들이 사랑으로 고민할 때, 노인들은 '나도 한 때 그랬지'하는 조언자의 역할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밤에 우리 영혼은>의 매력 포인트 2: '너'의 의미


 <밤에 우리 영혼은>의 외적 의의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말을 줄이고 스토리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애디와 루이스는 매일 밤, 같이 누워 삶을 이야기한다. 애디는 가족을 잃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루이스는 가족에게서 도망쳤던 부끄러운 과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서로에게 배우자가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떠나보낼 때의 심정이 어땠는지조차도 말이다. 차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영혼 깊숙한 곳의 이야기는 그렇게 매일 밤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두 사람은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의 외로운 영혼을 보듬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비포 선라이즈>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표현했다. <밤에 우리 영혼은> 역시, 대화를 하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비포 선라이즈>에서 샐린(줄리 델피 扮)과 제시(에단 호크 扮)는 제목 그대로 삶의 동틀 녘을 얘기했고, <밤에 우리 영혼은>에서 애디와 루이스는 삶의 저녁을 얘기했다는 거다.


누군가와 함께 대화하고 교감한다는 것. 당신에게는 그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여기 깃든 우정이 좋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요. 밤의 어둠 속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잠이 깼을 때 당신이 내 옆에서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것"


"나도 그래요. 그것들 전부"


  애디와 루이스는 죽음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지금 너머의 삶에는 무엇이 있을지 말이다. 살아온 날이 살아가야 할 날을 훨씬 앞지른 상태에서 보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나로서는 경험해보지 않은 미래를 다가오기 전까지 결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밤에 우리 영혼은>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삶의 저울이 시작에 기울어져 있든, 끝에 기울어져 있든 우리는 함께할 수 있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거다.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상대방을 온전히 필요로 할 수도 있고, 상대방의 일부분만 필요할 수도 있다.

 책의 중반부, 애디는 아들 진이 부인과 별거하게 됨에 따라 손자 제이미를 며칠 봐주게 된다. 제이미의 등장으로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루이스가 애디와 함께 제이미를 돌보게 됨에 따라 두 사람은 밤이 아닌 낮까지 공유하게 된다. 두 사람의 영혼은 더 이상 밤에만 마주하지 않는다. 함께한다. 가족에게 한 차례 상처를 준 과거를 갖고 있는 두 사람은 부모의 별거로 상처를 받은 제이미에게 좋은 의미가 되고자 최선을 다한다.

 

 <밤에 우리 영혼은>의 매력 포인트 3: 행복해지는데 타인의 시선은 필요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애디와 루이스를 사랑과 우정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동네 사람들의 눈에는 남사스러운 짓거리로만 보인다. 소문은 떨어져 사는 그들의 자식들에게까지 전해져 애디와 루이스는 각자의 자식에게 부끄럽지도 않냐며 당장 그만두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낮에 사람 많은 레스토랑에 가 데이트를 한다.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두 사람은 함께 있는 순간이 행복할 뿐이다. 그렇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소설은 의외로 쉽지 않은 방향으로 물꼬를 튼다. 애디와 루이스 그리고 제이미. 이 세 사람의 행복에는 유통기한이 있었다. 진은 부인과 재결합한 후, 제이미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어머니와 루이스의 관계가 못마땅했던 진은 애디가 자신의 집 근처로 이사오지 않으면 제이미와 영영 연락을 하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놓는다. 제이미가 너무 소중했던 애디는 결국, 루이스와의 관계를 끊고 제이미 곁으로 간다. 두 사람의 밤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행복은 이제 끝일까. 밤에 그들의 영혼은 이제 만날 수 없으니까? 켄트 하루프는 피 말리게 마지막 두 챕터를 남겨두고 애디와 루이스를 헤어지게 만든다. "설마 새드엔딩이야?"하고 초조하게 책장을 넘겼다. 애디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루이스에게 전화를 건다. 상관없어요. 너무나 외로워요. 당신이 몹시 보고 싶어요. 나랑 얘기해주지 않을래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 밤이었고, 두 사람의 영혼은 그들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애잔한 결말이라 평을 내리기가 애매해졌다. 결말을 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은 '왜 사람들은 누군가의 삶에 간섭해 그들의 행복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 났는가'하는 것이고, 두 번째 생각은 '그럼에도 행복은 타인의 방해로 몇 차례 깎아내려질지언정 부서지지는 못한다'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행복은 삶처럼 유통기한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과 행복을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밤에 우리 영혼은.


다시 시작하는 애디와 루이스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너머는 칠흑이었다.
당신 거기 추워요?




영화의 화법: 길 잃은 스토리 속 희미해진 주제의식


제목: Ours Souls at Night

감독: 라테시 바트라

출연: 제인 폰다(애디 役), 로버트 레드포드(루이스 役)

제작: 2017년 9월 29일


실패한 소설의 재구성?


 원작을 감명 깊게 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원작이 영화화될 때 원작이 100%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떤 원작은 너무 길어서, 어떤 원작은 너무 짧아서 각색과 재구성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래도 원작 특유의 독창성과 매력 포인트는 잃지 말아야 하는 법인데 <밤에 우리 영혼은>의 영화화는 그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분명 원작 속에 있던 내용은 다 들어갔는데 원작의 매력이 없다. 마치 레시피 그대로 요리했는데 그 맛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애디와 루이스가 대화와 교감을 통해 그들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행복에 있어 타인의 시선은 무가치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


 내가 생각한 원작의 매력은 위의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구성된 <밤에 우리 영혼은>에는 이런 매력이 반감된다. 애디와 루이스가 대화를 통해 교감하는 과정이 상당 부분 생략됐다. <밤에 우리 영혼은>은 애디와 루이스의 영혼이 공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중요하게 담지 않음으로써 이에 따라 관객들은 '영혼'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고민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됐다. 물론, 영화 속 애디와 루이스는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그 행복의 동기가 부족하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진의 비중이 늘었다는 것이다. 진의 어렸을 적 트라우마나 방황을 중요하게 다룸으로써 애디와 루이스에게 맞춰져야 할 에너지가 분산됐다. 작가 안톤 체호프는 "1막에 총을 소개했다면 3막에는 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밑밥은 책임지고 회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클라이맥스 역시, 온전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원작에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애디와 진의 관계를 후반부에 갈등으로 부치고 화해하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다뤄버린다.


밑 빠진 스토리에 주제의식 붇기


 물론, 이야기에 공백이 많이 생긴 상태라면 수긍하겠지만 애디와 루이스의 분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진의 분량을 무리하게 증가시킨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 또한 원작에서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를 전해 듣고 루이스를 말렸던 그녀의 딸 훌리는 영화에서 아예 대놓고 두 사람을 지지한다. 동네 사람들의 반응도 미적지근하다. 그렇다면 대립구도 혹은 갈등구도는 모두 진에 의해 발생해야 하는데 이는 개연성이 없다.  그렇게 되면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에서 애절함과 간절함이 희미해지게 된다.

 그 외에도 애디와 루이스의 과거 기억 혹은 스토리 순서가 변경되기도 했다. 원작의 고유성이 유지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원작의 고유성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눈에 더욱 띄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외적인 싱크로율은 나름 충실했다고 할 수 있지만 내적인 싱크로율은 몇몇 대사 말고 맞는 게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뚜렷한 주제의식이 존재할리가 없다. 잔잔하고 소소한 매력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원작을 통해 많은 감정과 생각을 겪은 나로서는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밤에 우리 영혼은> 원작 한 입, 영화 한 모금한 시식평


 영화가 원작 특유의 깔끔함을 따라오지 못했다. 레시피대로만 따르면 됐을 텐데 굳이 이것저것 재료를 첨가하고 순서를 바꿔서 요리해 이맛도 저 맛도 아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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