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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un 14. 2018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로 치장된 공포 <유전>

스토리보다는 소재와 연출에 눈이 간다

제목: 유전(Hereditary, 2017作)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토니 콜렛(애니 役), 알렉스 울프(피터 役), 밀리 샤피로(찰리 役), 가브리엘 번(스티브 役)

#2시간 7분 #무섭지는 #않아요 #많이 #섬뜩할 뿐  


 '무섭다'라기보다는 '섬뜩하다'라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영화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기계적인 공포감을 자아내는 정형화된 연출 대신, 대상에 대한 기괴한 표현방식과 예측불허의 상황으로부터 파생되는 섬찟한 긴장감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소름이 돋았으면 돋았지 소문처럼 육성으로 욕을 내뱉을 만큼 무서운 영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욕 나오게 무섭다'는 마성의 표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배급사가 공포영화를 홍보할 때 으레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묘한 기대감에 매번 극장을 찾게 되지 않나.

 그럼에도 <유전>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유전>은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서양의 정통 오컬트를 공포영화라는 틀 안에서 다뤘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공포의 밀도는 소재의 생소함과 결합해 기존 공포영화와는 결이 다른 공포를 선사한다. 오컬트적 요소들이 중후반부에 편재돼있다는 점은 아쉬웠으나 서사의 밀도를 조정하기 위헤 아리 에스터 감독이 내린 특단의 조치라고 생각된다. 

  

영화 속 오컬트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에 가깝다

 

 눈여겨볼 점은 소재뿐만이 아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독창적인 연출 기법으로 다차원적인 공포를 구현해낸다. 가장 돋보였던 것은 카메라 기법이다. 인물들을 담아내는 카메라 앵글과 쇼트가 독특하다. 특정 사건이 발생하고 있을 때 카메라는 사건의 양상 대신, 이를 지켜보는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 샷으로 짧께는 30초, 길게는 1분 이상 동안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애 보여준다. 관객은 인물의 표정을 통해 공포의 정도를 유추해낼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도 공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로 향하는 인물의 뒷모습을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담아낸 뒤, 줌인 샷으로 마무리하는 것 역시 <유전>의 특징 중 하나다. 또한, 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벌어질 사건에 대한 단서(미장센)들을 관객들이 알아차리게끔 잦은 빈도로 주의 깊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아리 에스터 감독은 '영화 속 모든 카메라 앵글과 쇼트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카메라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객관적 관찰자의 위치에서 모든 공포를 조망하게 된다.     

 

관객들은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가 아닌 영화 전반에 깔린 공포에 몰입하게 된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사운드에 대한 활용도 능수능란하다. 금방이라도 사건이 발생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로테스크한 음악과 유난히 부각되는 특정 음향은 삽입되는 족족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사운드를 극대화시켰다가 일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스니크 아웃'같은 기술적 효과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와 같은 섬세한 사운드 활용은 시각적으로 공포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청각만으로 공포를 이끌어낸다. 음향을 얼마나 리얼하게 부각하냐면 극 중 파리가 날아가는 소리가 실제로 내 정수리 위를 날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플레이팅이 아무리 잘돼도 음식이 맛이 없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법이다. <유전>의 연출이 꾸미고 있는 스토리는 어떤 맛일까. 시식평을 해보자면 플레이팅에 비하면 심심한 맛이었으나 새로운 종류의 음식을 먹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식당을 나올 수 있는 딱 그 정도. 아리 에스터 감독은 오컬트라는 소재에 몽유병, 정신착란, 가족 간의 불화와 같은 요소들을 결합해 하나의 스토리로 묶음으로써 인물들의 불안 증세를 노련하게 고조시킨다. 


소재와 연출이 스토리 대신 영화를 장악한다

 

 다만, 다루고 있는 소재 자체가 많은 이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는지 아리 에스터 감독은 관객들이 후반부에 있을 반전과 극적인 연출을 납득할 수 있도록 많은 씬들을 설명을 하는데 할애한다. <유전>의 러닝타임은 127분. 일반적으로 공포영화는 아무리 길어도 140분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 영화가 길어지면 긴장감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전>에서 공포 씬의 비율이 일반적인 공포영화에 높은 것도 아니다. 서사가 공포를 대체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화의 중반부가 일시적으로 루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유전>은 순도 100%의 공포 장르라기보다는 서스펜스와 미스터리 역시 포함하고 있는 복합장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일반적인 공포 영화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시각적인 요소에 국한되는 일차원적 공포에서 벗어나 연이은 상황 자체에서 오는 다각화된 공포를 보여준다. 긴장감을 일목요연하게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많은 측면에서 공포영화의 상투성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색다른 공포를 만끽하며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리뷰 원본: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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