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것은 마음이었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총망라.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오즈의 정신을 계승한 자는 단연코 고레에다 히로카즈일 것이다. 지난 10여 년 간 가족영화를 가지고 뚜렷한 성취를 거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모든 영화를 총망라 한 것 같은 이번 영화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영화의 정점이자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훔친 것은 결국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족영화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로까지 확장되어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따뜻하고도 차가운 공기를 같이 느낄 수 있다.
능수능란하게 물건을 훔치는 두 부자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음을 예고한다. 마치 야구에서 키스톤 콤비처럼 뛰어난 팀플레이를 보여주는 오사무와 쇼타는 유사 가족들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스케치한다. 오사무와 쇼타가 집으로 가는 도중 우연히 '유리(쥬리)'를 발견하게 되고 눈에 밟혀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이는 '아무도 모른다'에서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아이들이 방치되어 막내 여동생 '유키'가 죽었던 그 장면이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유리'를 발견하게 된 것도 '눈(ゆき)'이 올 것 같은 추운 겨울이니 말이다.
보통가족이 아닌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중반까지 다 보게 되면 이 가족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이윽고 깨닫게 된다. 혈연이 아님에도 지난 세월 함께 지내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친자매가 아님에도 인연을 이어 가족을 맺게 된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리고 할머니의 외롭고 아득함이 남아있는 '걸어도 걸어도'까지 장면 장면들이 그가 만든 영화들의 총합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아버지' 오사무의 성장 외에도 소년 '쇼타'의 성장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리'에서 '린'으로 바뀌고 '사키에'에서 '아키'로 바뀌게 된 것 까지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 끈끈한 유대는 비단 한 사람의 변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반부 넘어가기 전까지 이 영화는 그럼에도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잊을 수 없는 쇼트들도 여러차례 나오게 된다. 예를 들면, 노부요가 린을 끌어 안으며 사랑을 알려주는 장면이나 해변에서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그동안 고마웠어..'라며 읖조리는 할머니, 롱 쇼트로 잡은 오사무와 쇼타의 밤 장면(어둡지만 밝은 조명이 짧게 그들을 비추고 있어 더욱 진하게 남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영화에 나오는 '식구'라는 의미에서의 음식 장면 등 주옥같은 쇼트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종반부에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실종됐었다고 보도된 '유리'와 일부러 잡히게 된 '쇼타',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이 더해져 이들 가족의 존속이 어려워지게 되고 이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올곧지 않으면서 더욱 곤란해진다. 이 부분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은 가족에서 사회로 확장이 되고 진정한 가족이라고 부르는 이 사회와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진중하게 질문하게 된다.
과연 이들의 진실이 무엇인지 도통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테두리에서 보려고 한다는 점은 '세 번째 살인'이 떠올려지고, 한 사람씩 취조하는 장면에서는 '원더풀 라이프'의 쇼트들이 생각나게 한다. 더욱이 취조하는 씬에서 안도 사쿠라가 연기한 롱테이크 장면은 엄마의 의미를 물으면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복합적으로 담겨있는 눈물과 얼굴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는 '자식을 낳는다고 다 엄마가 되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지는데 반대쪽에선 '낳아야지 엄마가 되지요'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 답이 정말로 진실인가 라는 질문은 그 전 장면들을 본 관객들, 아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본 관객이라면 저 답이 백프로 진실이라고 답하기 힘들 것이다.
'아빠'라고 불려지길 원했던 오사무는 결국 쇼타의 아빠가 되지는 못한다. 비록 '아빠'라고 하지 못했지만, 버스를 타며 돌아가는 길에 차마 부르지 못했던 '아빠'를 나지막한 소리로 내어보는 '쇼타'의 얼굴에 뭉클함과 성장이 엿보인다. 쇼타를 연기한 '죠 카이리'는 '아무도 모른다'에서 '야기라 유야'의 이미지가 겹쳐지고 '유리'역시 '유키'가 자연스레 겹쳐진다. 아역들의 실감나는 연기를 볼 수 있는 것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릴리 프랭키와 키키 키린 역시 능청과 신뢰감 있는 연기로 고레에다 영화에 풍성함을 더해주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는 언제나 질문들이 남겨져 있다. 그 질문에는 정확한 답이 없다. 만국에 형용되는 질문들이기도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는 일본 사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일본 우익단체들은 이 영화를 보고 '이런 가족은 일본에 없다'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안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영화에는 어느 한 쇼트도 사회로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다만, 시야를 사회로 점점 확장 할 뿐. '유리'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이제 관객들에게 남겨둔채 영화는 조용히 막을 내린다.
정교한 쇼트들과 장면들이 관객들 마음을 훔치며 쇼타의 손가락 주문처럼 영화도 주문을 외는 것 같다. 가족이 가족을 만드는 것인가. 사회가 가족을 만드는 것인가. 부족한 인간들이 만드는 가족은 가족으로 볼 수 없는 것일까. 완벽해 보이는 가족은 정말로 완벽한 가족인 것일까.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가족의 의미를 계속 되새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조금씩 인간이 부족하기에 채워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의 탄생'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