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영 Sep 07. 2017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연의 상처, 흔적이 남더라도.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화창한 어느 날 세 남자가 바다 위에 낚시를 하고 있다. 시시한 농담으로 조카를 놀리는 삼촌이나 그의 아빠는 철부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여느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은 화목한 가정으로 보인다. 흘러가는 바다 위에 몸을 싣고 둥둥 떠다니는 배는 그 물결에 의해 이동하는 듯하다. 그 바다의 깊이와 심연이 어느 정도인지는 본인도 알지 못한다.



케네스 로너건이 각본, 연출하고 케이시 애플랙, 미셸 윌리엄스, 루카스 헤지스 등이 출연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2월 15일) 상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인서트들로 보이는 '리'의 무뚝뚝한 행동과 말투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어느 날 지병이 있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으로 맨체스터에 가게 된 '리'는 형의 유언에 따라 조카인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되면서 맨체스터에서 일주일 간 머물게 된다.


케네스 로너건의 데뷔작 '유 캔 카운트 온 미'의 유전자를 많이 닮은 영화이다. 서로의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설정 또한 남매에서 형제 조카로 바뀌어진 점, 주변의 가족들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었다는 점 등 유사 지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 캔 카운트 온 미'에서의 조카와 삼촌의 관계를 10년 후로 가져온 스핀오프 같기도 하다.

데뷔작에서도 그랬지만 '맨체스터~' 역시 각본과 연출이 뛰어나다. 경제성을 살리면서도 '생략'과 '비약'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케네스 로너건은 낭비가 거의 없다.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초래하고 뜬금없이 찾아오기도 하며 실수로 인해 죽음이라는 불씨를 불러오기도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조차도 참기 힘든데 우연적으로 발생한 삶의 마침표에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유 캔 카운트~'와 '맨체스터~'는 그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떠나는 사람과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지 컨트롤할 수 없으니 제어 불능으로 놔둬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철부지 없는 조카는 아빠가 죽었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소 일상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보낸다. 심지어는 집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자거나 또 다른 여자 친구의 집에서 잠자리를 어떻게 가질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아빠의 죽음에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던 '패트릭'은 삼촌과 함께 유언과 장례의 절차를 위해 함께 동행하던 중 아빠의 무덤 안치에 대해 '냉동고 같은 곳에 놔둘 수 없다'라고 넌지시 얘기한다.



이 영화의 풍경이 그러하듯 인물들의 마음 또한 냉동고처럼 얼려 있다. '리'는 자기 주위로부터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 채 스스로가 그 안에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패트릭'은 시선을 분산시켜 스스로를 제어하려는 듯 보인다. 그리고 '리'의 전처인 '랜디'는 또 다른 생명으로 마음을 달래려 한다.

인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했던가. 형의 주치의가 임신을 해 쌍둥이를 가졌다는 얘기는 형의 죽음과 자신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어떤 사건과 대비되며 아이러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자칫 편의적인 플래시 백처럼 보이는 케네스 로너건의 연출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기능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리'의 상황과 심경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적인 어투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리'의 가슴속 깊은 추억과 상흔을 끄집어내기 위해선 과거를 불러 들일수밖에 없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도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얼마나 대비되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감정이 얼마나 추락하였는지 보여줌으로써 '리'의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설리'에서 보았던 플래시 백의 유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반강제적으로 소환시켰다고 해서 '리'에게 불평을 가하거나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리'에게서 일어난 어떤 사건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는 무척이나 뛰어나다. '케이시 애플렉'은 형이 배트맨으로 고난 아닌 고난을 겪고 있을 때 훌륭한 내면 연기로 상이란 상은 휩쓸고 있다. 다재다능하면 중구난방으로 퍼질 수 있는 점을 동생인 '케이시 애플렉'은 하나만 집중해서 밀도 높은 연기로 영화 내내 관객들 마음을 흔들고 있다. 엄청난 테크닉이 없는데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호들갑 떨지 않고 천천히 가라앉은 톤과 불안정한 행동이 혼재된 '케이시 애플랙'의 좋은 연기가 큰 신뢰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루카스 헤지스'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다운 연기로 삼촌 '리'와 함께 대조를 이루며 입체감 있게 연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말미에 나오는 '미셸 윌리엄스'는 감정을 예민하게 다뤄 영화가 끝나면 결단코 잊을 수 없는 잔상을 남게 한다. 



어떤 영화들은 감동의 포인트를 끝내 화합하고 봉합해서 이야기의 매듭을 묶듯 상처 또한 묶어 해결해야지만 감동이 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슬픔을 주체할 수 없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경우는 정반대를 택하고 있다. 어떤 상처와 상흔은 지울 수 없을 만큼 아프고 살아가는 내내 힘들게 한다. 바꾸어 말하면 본인이 죽을 때까지 끌고 안아야 할 숙명 같은 부분이다. 그 인물의 상처를 입 밖으로 내어 설명해야지만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입 밖으로 내어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있고 설령 입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케네스 로너건의 연출 또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다.)


'유 캔 카운트 온 미'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해결할 수 없는 상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본인이 평생 짊어져야 할 상처를 어떻게 안고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영화이다. '리'가 계속 맨체스터를 떠나려 하는 이유, '패트릭'이 맨체스터에 남으려고 하는 이유가 그러한 것이다. (같이 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형식과 내용이 그렇게 일치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신뢰감과 여운이 더욱더 진하게 남는다.  



'리'와 '패트릭'이 종결부에 공을 주고받는 장면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말미에 두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 또한 많은 것을 의미하며 숙고하게 된다. 삼촌과 조카는 어렸을 적 시시한 상어 농담이나 하던 그날을 기억하며 낚싯대를 잡고 있다. 화창했던 그날의 기억은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추억이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으며 지내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연 속 상처는 끝내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 흔적이 남더라도 인간은 살아가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흘러가는 바다 위에 배를 몰면 그 뒤에 물살이 계속 퍼지듯 언제나 따라갈 것이다.




★★★★☆




정보 : 네이버 영화

사진 : 네이버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