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선생님이 알려주는 역사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 이야기’는 어디서 왔을까요?”
단군신화, 주몽 이야기, 알영 탄생 설화…
이 익숙한 이야기들, 실은 『삼국유사』에서 온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삼국사기』는 딱딱하고 엄격한 느낌의 역사책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 두 책은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책’과 ‘공식 연대기’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은 고등학교 한국사 수업에서 자주 다루는 이 두 책의 차이를,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삼국사기』는 1145년,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라는 문신이 왕명에 따라 편찬했습니다.
반면 『삼국유사』는 약 150년 후, 일연이라는 승려가 불교적 시각에서 서술한 책입니다.
두 저자는 시대가 달랐고, 관점도 달랐습니다.
김부식은 유교적 질서를 중시한 보수적 정치가였고,
일연은 몽골 침입 이후의 혼란한 시대를 살며 불교의 힘으로 정신적 정체성을 붙들려 했던 승려였습니다.
즉,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각각 "국가 중심의 공식 역사" 와 "민간과 불교, 신화가 어우러진 문화사" 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연도, 왕의 이름, 전쟁, 정치, 법 등 객관적 사실과 연대기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본기’와 ‘열전’이라는 구조를 따릅니다. 마치 조선왕조실록처럼, 역사의 흐름을 시대별로 정리하죠.
『삼국유사』는 훨씬 자유롭고 풍부한 이야기 중심입니다.
단군신화, 김유신 검 이야기, 선덕여왕의 예지력, 처용 설화 등 구전되던 설화, 민간 전설, 불교 일화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사기’가 기록하지 못한 감성의 역사, 말하자면 ‘마음의 역사’를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철저히 유교적 시각으로 역사를 정리합니다.
불교 이야기는 축소하거나 생략하고, 전쟁, 왕권, 예법 중심의 합리적 서술을 선호하죠.
때문에 단군신화조차도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삼국유사는 불교적 기적, 신화, 초자연적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담아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왕,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인물들… 이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당시 민중에게 위로와 정체성을 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삼국사기는 정사, 삼국유사는 야사”라고 간단히 구분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심스러운 해석이 필요합니다.
‘정사’라 해서 더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없고,
‘야사’라 해서 덜 중요하다고 치부할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가 국가 권력의 시선에서 ‘질서’를 정리했다면,
삼국유사는 민중과 불교의 시선에서 ‘의미’를 복원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두 책은 상호 보완적인 텍스트입니다. 하나의 렌즈로는 결코 역사의 진면목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과거를 기록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와 기억을 담으려 했고,
그 둘 모두가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사실이냐’는 질문 못지않게,
‘왜 이 이야기를 지금 전하려 했을까?’라는 질문도 함께 던져야 합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건 단지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일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삼국유사』 속 단군신화 외에도 우리가 자주 접하는 ‘처용 이야기’나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전설은 왜 지금까지 살아남았는가—그 이유를 곧 만나보세요.